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나라의 입법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 입력 2017.02.07 09:41
  • 수정 2017.02.07 09:49
  • 기자명 소준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4년 10월 21일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보안법폐지법률안」에 대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2005년 5월 검토보고한다.

언뜻 봐서는 문제가 없는 듯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국회 공무원에게 검토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문제이다. 앞서 말한 법제사법의원회 수석전문의원이 바로 국회 공무원 중에서 임명된다.

과연 국회 공무원인 수석전문위원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논할 능력과 자격이 있을까? 국회 전문위원은 국민이 선출해 자격을 부여한 대표도 아니다. 국회 사무처 조직에서 오랫동안 순환 근무하고 연공서열 순위에 의해 승진한 국회 공무원일 뿐이다.

또 예를 들어, 「비정규직법안」 관련 검토보고서에 있어서도 여러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는 “이 법안은 무엇이 문제다”, “저 법안은 무엇이 문제다”하면서 검토가 아니라 판결을 한다. 결국 검토보고서는 사실상 판결문에 가깝다.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진행하는 심사보고서는 거의 대부분 국회 전문위원이 작성한 검토보고서와 완전히 동일하다.

결국 국회의원이 국회 관료를 통제할 수단과 장치는 별로 존재하지 않은 채 사실상 국회의원이 전문위원 검토보고의 결정을 기다리는 하위의 위상에 놓이게 된다. 국회의원이 자신이 제안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거꾸로 전문위원에게 치열하게 로비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현재 국회의원에게 입법권은 그저 명분만 존재할 뿐이다.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는 유신의 적폐

국회법 제58조 제1항은 “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의 검토보고라고 하면 당연히 국회의원이 그 책임 주체가 돼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 소속 공무원이 검토보고의 준비와 그 발언까지 모두 담당한다. 즉, 국회 상임위원회에서의 검토보고는 법률안의 심사 과정 중 전체 위원회에서 법률안의 제안 설명이 끝난 뒤 전문위원이 낭독하게 돼있다.

그 결과 채택되는 소위원회의 수정안 내용도 전문위원의 검토 내용과 대개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에서 지적되지 않은 문제점은 위원회 심사과정에서 대체로 거론되지도 않는 성향을 보인다. 예산안에 대한 예비심사 검토보고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예산에 대한 검토보고는 법안 검토보고서보다 더욱 커다란 힘을 발휘한다.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는 위원회 심사의 대강의 범위와 차원을 제시해주며 논의의 초점과 방향을 정립해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뿐만 아니라 실제 심의 결과 채택되는 소위원회의 수정내용 구성에서도 매우 큰 영향력이 발휘된다.

미국의 경우 모든 상임위원회의 스태프들은 정당에 소속된다. 위원회에 상정된 안건은 산하 소위원회에 회부되는데 이때 위원회 스태프들은 의원들을 보좌해 자기가 소속된 정당의 입장에서 연구, 조사 및 분석 업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구두 또는 서면으로 위원장 및 간사 그리고 자기 당 소속 의원들에게 보고한다.

전두환 ‘국보위’에서 법률 요건화한 검토보고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규정한 이 조항이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을 듣고”라고 해 검토보고의 주체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한 뒤 소위 국보위(국가보위입법회의)의 ‘선거법등 정치관계법 특별위원회’가 1981년 1월 22일 개최된 회의에서 국회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제56조 (위원회의 심사) 조항을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개정함으로써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명문 규정으로 전환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구 정치질서’를 극도로 혐오한 신군부 측이 국회를 허수아비로 만드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추진한 것이다.

유신에 의해 국회의원의 전문위원 선발권 뺏겨

현재 국회 전문위원 임명권은 사실상 국회 사무총장이 갖고 있다. 하지만 본래 국회 전문위원은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선발했었다. 그러던 것이 유신에 의하여 뒤바뀌었다.

1972년 12월 27일 이른바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 체제의 근거를 만든 유신정권은 곧이어 1973년 2월 7일 국회법을 개정했다. 그 개정에서 특히 “전문위원은 당해 상임위원회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국회법 제42조 제2항 규정을 “전문위원은 사무총장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규정으로 바꿔놓았다.

이렇게 해 상임위원회 활동에 필요한 전문적인 인물을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논의해 선임하던 것을 여당 임명직인 국회 사무총장이 임명하도록 했다. 이는 사실상 국회 전문위원에 대한 의원의 선출권을 없애고 여당에 의한 입법권 장악을 제도화한 것이다. 동시에 전문위원으로는 대부분 행정부 관료로 충원함으로써 국회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한 것이다.

이는 이후 1981년 국보위에 의한 전문위원 검토보고제 규정과 결합돼 전문위원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결국 의원들의 입법권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셈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