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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 훼손 뒤에 숨은 초라한 광기

  • 입력 2014.02.24 09:40
  • 수정 2014.02.24 10:00
  • 기자명 내가 꿈꾸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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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고자질쟁이다
-안네의 일기 훼손 뒤에 숨은 초라한 광기-


반성하지 않는 인간의 말로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사건이 일본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안네의 일기'가 일본의 공립도서관 곳곳에서 누군가에 의해 찢기거나 칼로 잘라냈다는 것. 이렇게 훼손된 책은 현재까지 도쿄의 39개 공립도서관에서 305권이 발견됐다고 한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유대인 단체에서는 충격과 우려를 표시했고, 일본의 관방장관은 "극히 유감스러운 일이자 창피한 일"이라며 적극 수사 의지를 표명했다. 또 이를 바라보는 일반의 시선은 베스트셀러 안네의 일기가 훼손된 이유에 대해서 '극우주의자의 소행'으로 보고있다. 일본 내부에는 히틀러를 추종하는 세력이 적지않다는 것.

관련 소식을 접하자마자 극우주의자 내지 안네의 일기를 훼손한 특정인의 정신상태는 어떨까 싶은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안네의 일기가 훼손된 곳은 주로 일본의 공립도서관이다. 대개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해 공부를 하거나 소양을 쌓는 사람들은 주로 학생일 것. 그들 중에 포함된 극우주의자 내지 지식인들은 아베 신조가 부르짖는 우경화에 동조하거나, 자기 나라의 과거사에 대해 불만을 품었을 개연성이 다분해 보인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오히려 책을 훼손할 가능성이 적어보인다. 2차대전 당시 극동 아시아 지역 등지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러온 일본이나, 같은 시기 나치 독일이 수 백만명 정도의 유대인을 홀로코스트(Holocaust)를 통해 학살한 점을 비교하면 '오십보백보에' 해당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엽기적인 살인의 배경을 보면, 2차대전 당시 일본이나 나치 독일이나 같거나 비슷한 입장일 것. 극우주의자들의 광기를 참조하면 오히려 당시의 사건을 다룬 안네의 일기를 통해서 책을 찢기는 커녕 묘한 흥분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안네의 일기 배경에는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Holocaust,유대인대학살)를 통해 유대인을 전멸 시키고자 했던 역사적인 사건이 깔려있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 외에도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집시, 정신지체 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소련의 전쟁포로, 여호와의 증인과 프리메이슨 등 여러 '원치 않는 부류'를 유대인과 함께 학살했다. 이들은 대부분 집단수용소에 옮겨져 조직적으로 학살되었으며, 장애인의 경우는 의사에 의해 안락사시키는 방법으로 5만명이나 학살했다고 전해진다.

나치가 광분하던 그 시각 안네의 일기를 쓴 안네 프랭크(Anne Frank)는 다락방에 숨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 안네는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며 전쟁을 일으키자, 가족과 함께 독일을 떠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정착하게 된다. 나치의 유대인 검거와 처형이 더욱 심해지자 안네의 가족과 연인 피터의 가족, 뒤셀 등은 미리 준비해둔 은신처로 옮겨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그러나 은둔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2년이 넘는 은둔생활 중 마침내 게슈타포(Gestapo,나치 독일의 비밀 국가 경찰)에 의해 발각되고 이들은 폴란드의 유태인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그 다음해 안네의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독일이 패망한 후 안네의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들이 독일군의 눈을 피해 숨어 지냈던 다락방에서 안네의 일기장을 발견하게 된다.

*안네 프랭크의 모습(구글 이미지)

안네의 일기에 따르면 안네는 1929년 독일의 상업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대인 은행가 오토 프랭크(Otto Frank)와 어머니 에디트 홀랜더(Edith Holländer) 사이에서 태어났다. 에디트는 독실한 개혁파 유대교 신자여서, 큰 딸 마르고트와 작은 딸 안네도 어려서부터 시나고그에서의 유대교 예배에 참여하여 유대교 신앙을 배웠다. 1933년에 나치당의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잡으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교육, 교통, 거주지 등에서의 인종차별이 실시됐다.

1938년 17세 소년 헤어쉘 그린츠판이 거주의 자유 박탈에 항의하다 파리주재 독일대사관 3등서기관 에른스트 폼 라트를 살해한 사건을 구실로, 유대인들에 대한 집단 테러를 가한 범죄인 '수정의 밤 사건'을 시작으로 홀로코스트가 일어나자, 삼촌들은 미국으로 망명하였으며,안네 프랑크의 가족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했다.

당시 대다수의 유럽국가들은 히틀러가 유대인 정책을 강제 추방에서 강제수용소 수용 및 학살로 바꿀만큼 유대인들의 망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영국의 경우 재정후원이 있는 경우에만 어린이의 망명을 허락했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홀로코스트를 묵인한 공범이라는 비난을 받게 됐다. 안네는 몬테소리 학교에서 개별 자유 수업을 받았으며, 중학교는 유대인 중학교에 진학하였다. 그 이유는 1938년 이후 유대인들을 유럽사회에서 소외시키려는 나치의 인종차별 실시로, 학교 진학에서도 차별을 받았기 때문이다.

1942년 6월 12일, 안네는 13살 생일에 아버지로부터 ('안네의 일기'라고 부르게 된)붉은 체크 무늬 일기장을 선물로 받았다. 안네는 일기장에게 '키티(Kitty)'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시작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다락방에서 은둔생활을 통해 숨 죽이며 기록한 일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44년 8월 4일 밤, 익명의 밀고를 받은 나치의 게슈타포가 은신처를 급습해 8명 전원을 체포하고 안네의 가족을 나치 강제 수용소로 이송했다. 안네의 일기는 1944년 8월 1일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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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각, 일본은 아시아에서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와 맞먹는 대학살을 자행하고 있었다. 중일전쟁 도중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에 의해 이른바 '아시아 홀로코스트'라 불리우는 남경대학살이 자행된 것. 이 학살은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2월까지 6주간에 걸쳐 이뤄졌으며,1939년 4월에는 '1644 부대'가 신설되어 생체실험 등이 자행됐다. 남경대학살에서 학살된 중국인은 30만 명 이상으로 알려졌고 중국에서는 이 학살을 '난징대도살'이라고 부를 정도로 잔인했다.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이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전쟁놀음에 광분하며 학살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 이런 역사를 극우주의자들이 안네의 일기 등을 통해서 요즘의 처지와 비교하면 오늘날 자기들의 처지가 초라해 보일 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과거사를 그리워 하며 광분하고 있는 게 아베 신조의 우경화 노력일 것. 그게 안네의 일기를 훼손한 배경이란 추측이 가능할까.

필자가 서두에 '자기 나라의 과거사에 대해 불만을 품었을 개연성'을 언급한 건, 전쟁으로 패망한 나치 독일의 과거사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나치 독일의 만행에 대해서 독일은 이미 세계인들 앞에서 머리 숙여 사과를 했다. 독일은 비록 뼈아픈 역사의 가해자였지만, 한 때 저지른 실수를 세계인들 앞에 진심으로 사과하면서 전쟁이 가져다 준 아픈 기억을 상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달랐다. 2차대전의 패망을 여전히 억울해 하는 듯한 행실 등을 보면, 과거사에 대해 전혀 반성의 기미가 안 보이는 것. 오히려 반성은 커녕 신사참배 등을 통해 욱일승천기의 몰락을 그리워 하고 있는 게 오늘날의 일본 모습이다. 패망한 지 63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과거를 그리워하며 반성하지 않는 나라가 일본이었던 것. 사정이 이러하면 이들 전범의 후손들이 도서관에 앉아 역사를 뒤적이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 난징 외곽 양자강에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 일본군. 일본군은 백기를 들고 항복한 국민당군은 물론, "패잔병을 '처리'한다"는 명목으로 '모자를 오래 쓴 흔적이 있거나 손에 굳은살이 박힌 젊은 남자' 모두를 닥치는대로 끌어모아 기관총으로 양자강에 쓸어넣었다.(자료=위키백과)

자기 선조들이 저지른 전과 때문에 자각있는 일부 후손들은 시쳇말로 '돌아버릴 지경'일 것. 자기도 모르게 책을 뜯는 등 역사를 부정하고 싶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안네의 일기를 읽다가 그들의 과거사가 떠오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역사의 기록이 두려움으로 다가올 건 뻔한 이치. 그러나 책 몇 권을 찢거나 태우는 등 훼손 방법으로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없는 법이다. 역사는 고자질쟁이라서 곧이 곧대로 기록으로 대답하는 것.

이런 일은 비단 바다 건너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일제가 패망 직후 한국사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이른바 '친일파' 후손들의 태도도 별로 다르지 않은 것. 이들은 비민주 반민족적 행위를 통해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암적 존재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들 또한 과거사를 얼렁뚱땅 덮어버리며 오히려 민족적이자 민주적인 인사 등에 대해 '좌빨종북'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국가기관에 의한 부정선거 모습이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의혹 사건은 대표적인 예이다.

뿐만 아니다. 금수강산을 초토화 시킨 4대강 사업의 핵심 당사자는 대놓고 '친일'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참담한 나라가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이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을 야금야금 암약하고 있는 세력이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 안네의 일기를 통해서 다시금 학습하게 만든 게 이들의 실체이다. 불과 6년 전부터 시작된 이들의 역사 왜곡 놀음은 잠시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안네의 일기 훼손 사건 뒤에 숨은 초라한 광기를 대입해 보면, 부정을 저지른 '인간의 말로'가 절로 느껴진다. 반성하지 않거나 못한 인간의 말로는 초라함을 넘어 비극을 연출하는 게 역사의 기록이다. 그 당사자들은 가까운 장래에 역사의 기록을 쥐어 뜯어며 괴로워 할 날이 반드시 다가 올 것이란 건, 필자의 예언이 아니라 역사의 산 증언. 안네의 일기 훼손 사건이 전해준 찐~한 메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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