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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개혁, 모든 것 다 넣은 못 먹을 ‘잡탕’?

  • 입력 2014.02.21 16:32
  • 수정 2014.02.21 16:36
  • 기자명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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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는 박근혜 정권. 정상화의 첫 타킷으로 선택한 게 공공기관이다. 과감한 개혁을 하겠다며 이에 저항하는 노조와는 정면 승부를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정말 이런 호언에 진정성이 있는 걸까. 밀어붙인다면 실효성은 얼마나 될까.


낙하산 근절, 대통령 결심 한방이면 된다

공공기관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로 ‘낙하산 인사’를 꼽는데 주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낙하산 인사는 심각한 질병으로 인식돼 왔다. 왜 그럴까.

인사권 파행이 가장 큰 이유다. 공기업 인사권은 관련 부처 장관에 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관례적으로 청와대 비서실이 행사해왔다. 청와대가 천거하면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전문성과 능력 등과 관계없이 그대로 자리가 마련됐다.

이러니 선거 캠프에서 활동한 인사들이 대거 공공기관의 장이나 이사, 감사로 내려가는 보은인사가 손쉽게 이뤄지는 거다. 정권과 관계가 깊은 이들이 패거리 지어 사장, 감사, 이사진까지 장악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경영을 감독하고 견제해야 할 감사와 사외이사가 사장과 한패이니 경영진의 거수기 역할이나 하며 짬짜미가 이뤄질 수밖에. 청와대와 여당은 ‘귀족노조’ 운운하며 과다한 복지가 공기업 방만경영을 부추기고 있다고 핏대를 세운다. 하지만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주무부처가 아닌 청와대 비서실이 인사권 행사

해결책은 제 손안에 있다.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으면 된다. 박 대통령도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터. 대통령 인수위를 꾸린 직후 그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 사기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는 새정부에 없을 것(2013.1.30)”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이 약속이 지켜졌을까. 아니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당시 302개 공공기관장 중 180명을 새로 임명했으며 이중 78명이 낙하산(43.3%)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7개월 동안 임명한 기관장 중 34명(44.2%)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 임기가 만료되거나 공석인 기관이 많아 이대로라면 낙하산 비율은 훨씬 더 높아질 전망이다.

공공기관 전체 부채 증가규모 92.3%(2012년)를 차지하고 있는 상위 12개 공기업의 낙하산 실태는 경악스러울 정도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2008년부터 2013년까지 12개 기관의 낙하산 인사 비율은 80%를 상회한다.

더 심해진 낙하산, 종박(從朴)끼리 벌이는 파티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낙하산 인사는 그 어느 정권보다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종박(從朴)끼리 ‘낙하산 파티’가 한창이다.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던 박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은 이미 깨졌다. 한손으로는 개혁의 고삐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낙하산 부대를 투하시키는 황당한 ‘원맨쇼’가 벌어지고 있다니 이율배반도 유분수다. 공기업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청와대라는 게 국민이 체감하는 바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또 다시 공공기관 방만경영을 바로잡겠다고 큰소리다. 20일 경제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과거 정부도 공공기관 방만경영 해소를 위해 개혁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원칙을 지키지 못한 데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라지는 것 어렵지 않다. 대통령이 결심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낙하산 근절을 지시하면 이게 바로 성공이 보장된 개혁의 시작이 된다.

땟국 질질 흐르는데 다른 이에게 청결 강조할 텐가

“정부가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가 아니다. 왜 핵심을 피해가나. 청와대가 파행적으로 인사권 행사 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대통령이 ‘비서실에 공공기관 인사권 원래 부처로 돌려주고 청와대는 공정인사 여부만 감독해라’고 지시한다면 공공기업 개혁의 절반 이상이 손쉽게 가능할 수 있다. 그만큼 낙하산 인사의 폐해가 크다는 얘기다.

낙하산 투하로 여론이 좋지 않은데도 대통령은 공기업 개혁을 강조한다. 땟국 질질 흐르는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청결을 강조하는 꼴이다. 비난 여론을 의식해서 일까. 기획재정부가 공기업 낙하산을 차단하는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나섰다.

기재부는 20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공기업 임원 직위별 세부 자격요건을 마련해 낙하산을 방지하겠다”고 말했다.

뒷북이 요란하다더니 보수언론들은 이 ‘낙하산 방치책’을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기재부의 이같은 조치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식이다. 자격기준을 마련한다고 해서 실효성이 있겠는가. 청와대가 여전히 인사권을 행사하는 한 기재부가 힘쓸 여지는 없을 게 뻔하다.

기재부 ‘낙하산 방지대책’? 여론 무마용 꼼수

기재부가 만들겠다는 세부 자격조건 또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일정기간 이상 관련 분야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임원이 될 수 있도록 못박겠다고 말하면서도 뒤로는 예외적인 상황을 인정하겠단다.

“정치인도 되느냐, 군인도 되는 거냐”고 기자가 묻자 기재부 관계자는 “국회 국토위에 있던 정치인이라면...대규모 조직 운영한 경험 있는 군이나 경찰 출신이라면...”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기재부의 조치는 일종의 여론 무마용으로 보는 게 맞을 듯하다.

낙하산 인사의 또 다른 폐단은 편향성이다. 공기업인 만큼 일정수준의 중립성이 요구되지만 ‘낙하산’의 경우 전혀 그렇지 않다. 좋은 사례가 있다.

공공기관 정치편향 심각, '낙하산 패거리' 때문

지난해 12월 한국투자공사 사장에 취임한 안홍철.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특별직능단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사실상 선거운동을 했다. ‘독다방디제이’라는 아이디로 9740개의 트윗을 직접 올리거나 리트윗했다. 그 내용이 가관이다.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뿐만 아니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포함해 야권인사들에게 혹독한 비난을 쏟아냈다. 안철수 의원을 ‘후랑켄철수', 노 전 대통령을 “주관도 없는 아바타”라고 했고 진보진영을 향해서는 “진보는 바보”라고 비아냥댔다.

반면 문재인 의원과 맞붙었던 손수조에 대해서는 “부산이 낳은 큰 정치인 그릇”이라며 “15년후 대통령 후보”라고 칭찬했다. 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늘 어려운 사람들 곁에 있어서 참 좋은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철저하게 한쪽으로 치우친 정권의 아바타가 공공기관에 투입되고 있다. 전문성과 능력 검증은 이뤄지지 않는다. 이러면서도 박 대통령과 여당은 공공기관 경영방만 운운하며 개혁을 말한다.

‘공공기관 개혁’ 냄비, 잡동사니 많아 못먹을 ‘잡탕’

하늘 까맣게 낙하산 투하하면서 노조나 이해관계자들에게 개혁의 불편함을 감수하라고 하면 설득력이 있겠는가. 반발만 불어올 뿐이다. 똥 묻을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저질 쇼를 보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부 공공기관 개혁’이라는 냄비. 이것저것 죄다 들어있다. 개혁, 낙하산, 효율경영, 노조와의 전쟁, 방만경영, 정치편향, 공약 깨기, 눈 가리고 아웅...

식재료 선택이 적절하고 질이 좋아야 맛있는 요리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공공기관 개혁 냄비’에는 없어야 될 것들과 잡동사니가 너무 많다. 아무도 먹지 못할 ‘잡탕’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공공기관 개혁에 목청 높이는 진짜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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