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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 특검은 누가 막았나

  • 입력 2017.01.23 15:31
  • 수정 2017.01.23 16:24
  • 기자명 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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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22일 ‘삼성X파일’이 보도되자 노무현 대통령은 3일 후 국정원의 신속하고 철저한 조사를 지시한다. (관련 기사: 삼성X파일 특검, 문재인이 막았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은 즉각 특검 수사를 요구하고, 검찰은 참여연대 등의 고발로 수사에 착수했다. 또한 7월 27일, 이상호 당시 MBC 기자에게 ‘삼성X파일’ 테이프를 건넨 재미교포 박인회 씨와 안기부의 특수도청팀 미림팀장이었던 공운영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8월 10일, 한나라당 등 야 4당의 공동 특검안과 열린우리당의 도청 기록물 공개를 위한 특별법안이 동시 제출됐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이틀 뒤인 12일 자신들이 제출한 특검법안의 위헌성을 제기했다. 테이프에 수록된 내용을 수사, 공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논리였다.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한나라당은 헌법적 가치를 매우 충실히 지키는 정당인 만큼 (특검법의) 위헌성 논란에 대해 대표로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특검법안을 두고 여러 위헌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05년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한나라당이 자신들이 낸 법안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9월 28일, 법안을 다루는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가 처음 열려 특검법안의 내용을 정리했다. 미림팀이 도청활동을 시작한 1993년 이후의 국정원의 모든 도청행위와 국정 책임자의 관여, 테이프에 수록된 내용에 대한 수사와 공개,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도 기소는 못 해도 수사하여 공개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특검법은 소위에서 보고만 되고 논의는 진척되지 못했다. 법사위 내부 비공개회의에서도 간간히 특검법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던 중 12월 14일, 검찰은 X파일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학수, 김인주 등 삼성 관계자와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 등은 사실입증 불가능, 공소시효 만료 등의 이유로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삼성 'X파일'에 혐의없음이라는 검찰 수사 결과에 항의하는 시민연대모임. ⓒ참여연대

열린우리당은 "검찰 수사 후 미진하면 특검"이라는 원래의 입장대로 검찰 수사 발표 후 특검에 적극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절묘한 시점에 사학법 개정안 처리에 반발하며 장외투쟁을 시작했다. 국회는 계속 공전했다.

한나라당, X파일 특검법 합의를 뒤집다

2006년 2월 15일, 한나라당은 몇 달 만에 다시 법사위 소위에 참석했다. 최재천 소위 위원장은 "한나라당 안을 그대로 받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합의를 뒤집는 발언이 쏟아졌다. 특히 한나라당 간사인 장윤석 의원의 ‘태클’이 시작됐다.

장윤석 의원은 "다른 문제는 검찰 수사를 통해 클리어됐고, 검찰 수사에서 미진한 부분을 특검이 수사한다는 원칙에 따라 이제부터 특검이 수사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도청 내용이 당시 국정원장과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느냐, 또 하나는 현 정부에서도 도청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라고 주장했다. 이에 최재천 위원장, 노회찬 의원을 비롯한 다른 의원들은 일제히 "그 내용 모두 다 법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장윤석: 그래도 수사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기해야 한다.

노회찬: 구체적인 수사 대상을 명기하려면 다른 대상들도 다 명기해야 한다. 포괄적으로 다 포함되어 있는데 왜 굳이 명기하려고 하나.

장윤석: 다른 것은 수사할 게 없다. 검찰 수사에서 다 밝혀지지 않았느냐.

의원들: 다 밝혀졌는지 안 밝혀졌는지를 당신이 어떻게 아냐. 전체적으로 수사가 미진하다는 판단이므로 특검을 하자는 거고, 특검이 검찰 수사기록을 보고 어떤 점이 미진한지를 파악해서 수사를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장윤석: 뭐가 미진하냐, 검찰에서 수사 다 했는데.

의원들: 무슨 소리냐. 공소시효 지난 거(이학수, 김인주, 홍석현 등 수사), 테이프 내용에 기반을 둔 수사는 하나도 안 돼 있다.

장윤석: 공소시효 지난 거랑 테이프 내용에 있는 거는 수사하면 안 된다.

의원들: 뭔 소리냐. 공소시효 지난 것도 수사해서 발표하고, 테이프 내용 중 불법적인 것은 수사한다는 게 특검법안의 가장 중요한 내용인데.

장윤석: 공소시효 지난 것 수사하는 것은 위헌이다. 불법을 통해 수집된 내용을 공개하는 것도 위헌이다. 독수독과 원칙*도 모르냐.

의원들: 그럼 특검하지 말자는 소리 아니냐.

장윤석: 아니지. 특검은 해야지. YS 정권 때 도청한 건 공소시효도 지났고 검찰에서 다 수사했으니까 할 필요 없지만, DJ 정권 때 도청은 조사해야지.

의원들: 미쳤어?

장윤석: 좋다. DJ 때 것도 하지 말자. 그런데 현 정부 수사는 반드시 해야 한다.

의원들: 그러니까 현 정부에 대한 도청 여부만 수사하자는 거냐?

장윤석: 그렇다.

*독수독과 원칙

정당한 법적 절차를 거쳐 수집한 증거라도, 증거를 얻게 된 실마리가 위법하게 얻은 증거에 있다면 그 증거를 통해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얻은 증거의 증거 능력까지 모두 무효화시킨다는 개념.

2005년 9월,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당시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과 박근혜 대표. ⓒ오마이뉴스

결국 합의는 불발됐다. 그 이후 회의에서도 논의는 계속됐으나 장윤석을 비롯한 한나라당이 계속 도망 다니고, 딴청 피우면서 합의를 해주지 않은 탓에 특검안은 국회를 표류하다가 결국 흐지부지됐다.

삼성이 검찰 떡값 준 것에 대해 특검을 하지 않아 분통 터지는 사람들은 애먼 사람 잡을 게 아니다. 잡아다가 묻고 따져야 할 사람은 장윤석 전 의원이며, 수장이었던 당시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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