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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의 서울이 외롭다면 '환상수첩'을 읽자

  • 입력 2017.01.23 10:52
  • 기자명 20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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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의 나를 잡아준, 김승옥

‘무진기행’을 쓴 김승옥 작가의 근황을 알고 싶다면 소설보다 전시회를 검색하는 것이 빠르다. 2003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언어 기능을 잃은 지 10년도 지난 지금, 그는 펜 대신 붓을 들었다. 지난해 여름, 그의 전시회를 열기 위해 진행된 스토리펀딩은 두 달 만에 4천만 원이라는 큰 액수가 모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김승옥을 기억하고 있다.

서울로 상경해 공부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공부와 진로, 인간관계의 답답함 때문에 대학 생활이 참 쓸쓸했던 적이 많았다. 나의 경우는 2학년 1학기 개강 직전, 딱 이맘때가 위기였다. 주변 사람에게 실망하고, 혹은 내가 실망을 안겼던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그럴 때 나는 김승옥이 서울살이의 염증을 느끼며 썼다는 ‘환상수첩’을 마치 성경처럼 가방에 넣어 다니며 그의 세계에 의지했다. 대중 앞에서 펼치는 한 편의 연극이 끝나고, 자취방에 돌아와 가면을 벗는 순간의 적막과 공허가 견디기 힘든 당신이라면, 오늘은 당신께 술 대신 이 책을 권한다.

서울에서 잠시 도망친 ‘정우’, 그리고 나

저 많은 불빛 가운데 내가 쉴 곳은 어디일까.

20살 이후,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의식 비슷한 것이 사라지자 차원이 다른 지독한 외로움이 시작됐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대학에서의 첫 1년은 무척이나 바빴다. 하지만 대개 무의미한 바쁨의 연속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을 미워해야 했고, 그러다 보면 애꿎은 타인을 미워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마저 미워지는 곳. 내게 서울은 그런 곳이었다.

‘환상수첩’의 시작도 주인공인 정우도 결국 사람을 미워하는 법을 배우고야 말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버티다 못해 서울을 떠나기로 한다.


서울에서 나는 너무나도 욕된 생활 속을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그리고 슬프게 미쳐버렸다고나 할까,

환상과 현실과의 거리조차 잊어버려서 아무것도 구별해낼 수가 없게 되었고

사람을 미워하는 법을 배우고 말았다.

아아, 그들을 죽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떠나든지 해야겠다.

하지만 부푼 마음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온 정우의 눈에 비친 것은, 끔찍한 고향 친구들의 삶이다. ‘춘화(외설적인 그림)’를 그려 폐병 약값을 충당하는 수영, 매일 술집에서 취한 채 살아가는 윤수, 화재로 온 가족을 잃고 장님이 된 형기까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특히 수영을 바라보는 정우의 시선이 절절하다. 폐병에 걸렸다. 그러나 약값이 없다. 약값을 벌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건 춘화를 그려 파는 것뿐이다.

사는 데 필요한 포즈 같은 것들이 있다. ⓒCCTV

어느 순간 모두 조용히 깨닫고 만다. 살기 위해서는 결국 망측한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의 서울도 그러했다. 살아가다 보니, 아니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참 많은 신념을 버려야 했다. 혼자 살아보니 온갖 게 다 돈 드는 일이어서 돈이 필요했고, 공부와 병행을 하기 위해 과외를 시작했다. 교육이 부(富)를 통해 재생산되는 구조가 정말 싫었지만 별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커튼 저편에 가서 춘화를 한 뭉탱이 가지고 와서 내 앞에 던졌다.

가지각색의 자세로 찍혀 있는 그것들은 너무나 기괴망측하였다.

내가 영빈을 통하여 사 보냈던 춘화에도 그처럼 괴상한 자세는 없었다.

춘화를 만들기 위한 춘화. 너무나도 돈을 만들기 위한 춘화. 약을 사기 위한 춘화.

살기 위해서는 저처럼 망측한 자세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나는 성실한 과외 선생님이 되었다. 다 나의 선택이고 핑계다. 그러나 과외를 끝내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얼마나 더 큰 신념들을 버리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착잡하기만 했고, 그때마다 살기 위해서는 망측한 자세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슬피 부르짖은 정우의 말을 떠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꼿꼿한 자세로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 삶이었다.

고향과 부모님의 존재를 깨우치는 ‘정우’, 그리고 나

나의 서울 생활은 저 먼 곳의 희생으로 구축되는 일이었다.

나는 서울 친구들이 부모님과 맺는 병렬적 관계가 참 신기했다. 나의 경우 그리고 (아마도) 지방 출신 학생들의 많은 경우는 더욱 종속적 관계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자식을 서울에서 공부시키기 위한 희생, 서울에서 혼자 살아가는 자식에 대한 걱정이나 믿음, 금의환향까지는 아니더라도 번듯하게 돌아올 자식에 대한 기다림 같은 것들이 섞인 관계다.

그래서 나의 공부는 나의 것만이 아니고, 나의 진로 역시 내 것만은 아니다. 삶의 많은 선택에 있어 고향의 ‘부모’는 언제나 중요한 변수다. 그것은 때로는 부담이고, 때로는 힘이다. 서울 대학생활을 집어치울 작정을 하고 고향 친구들과 나태하게 살아가던 정우를 돌이키는 것도 결국 그의 부모다.

두 분은 분명히 나를 불쌍히 여기고 있었다.

어쩌면 지난날의 자신들을 향하여 응분의 주먹을 휘두르는 기분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아버지 편이 말이다.

이제 와서 나는 꼼짝달싹할 수 없음을 느꼈다.

애쓰다가 애쓰다가 안 되면 그만이라던 얼마 전까지의 내 생각은 수정을 받아야 했다.

이제는 애쓰다가 애쓰다가 안 되면

아니 그렇지만 기어코 해내어야만 되었다.

지독하게 실패하여 도피한 그에게 꽤 큰돈을 내주며 여행을 다녀오라는 부모. 그런 존재를 마주하며 정우는 꼼짝달싹할 수 없음을 느낀다. 그렇게 정우는 부모님의 믿음을 안고 술주정뱅이 친구 윤수와 남해안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다 알게 된 서커스단을 따라다니는데, 윤수는 서커스단의 한 여자와 사귀게 된다. 여행이 끝날 무렵 윤수는 드디어 술집을 끊고 제대로 살아갈 작정을 한다. 집으로 돌아온 정우 역시 한 가지 원칙 아닌 원칙을 세운다. 일단은, 살아가자는 것 말이다.

일단은 살아가리라. 그러면 끝이 나타나겠지. 그렇게 다짐하며 나는 오늘도 첫차에 올라탄다.

어김없이 다시 개강할 것이고, 나는 곧 졸업을 앞두게 된다. 그렇게 서울에 산 지도 4년째다. 여전히 조금은 쓸쓸하고, 앞으로의 모습을 생각하면 막연하다.

삶은 결국 방향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성공만이 유의미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때, 행복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행복마저 돈으로 살 수 있는 시대인 것 같고, 부끄러움과 양심이 내 안에서도 점점 실종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 나의 고민, 그리고 그것을 토해낸 나의 글이 모두 부질없이 느껴진다. 당장 짐을 싸서 터미널로 가고 싶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내야 한다는 문제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다짐한다. 우선은 살아내자.

서울은 확실히 무정한 곳이다. 하지만 우선은 열심히 살아내자.

나도. 당신도. 아무쪼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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