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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영화 제목에 담긴 마침표의 의미는?

  • 입력 2017.01.18 10:33
  • 수정 2017.07.17 15:57
  • 기자명 양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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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주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일곱 번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지난 4일부터 한국 관객을 만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흥행수입 200억엔, 관객 수 1700만 명 이상을 동원하며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 2위에 오른 작품이다. 1위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308억엔)이다.

<너의 이름은.>은 제목부터 독특하다. 물음표나 말줄임표 대신 마침표가 있다. (일본어 원제도 한국어 제목과 같다.) 제목의 마침표는 주의를 환기한다. 마침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그 존재만으로도 계속 신경을 쓰게 되니 말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마침표를 찍은 이유에 대해 제목이 의문형이든 서술형이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하려고"라고 밝힌 적 있다. 본문의 마침표는 문장을 끝맺지만, 제목의 마침표는 그 의외성으로 인해 끝이 아니라 도돌이표 기능을 한다. 마침표에 잠시 멈춰 서서 그 문장이 갖는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경우엔 '이름'보다는 그 이름의 '의미'에 더 주목하게 한다.

영화는 이름의 실체를 찾아 나선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다. 애초 소년과 소녀가 서로의 이름을 몰랐던 건 아니다. 시골 마을에 사는 소녀의 이름은 미츠하, 도쿄에 사는 소년의 이름은 타키. 몸이 서로 뒤바뀐 것을 알게 된 소년과 소녀는 휴대전화에 일기를 쓰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곤 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일어난 순간, 서로의 이름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이름이 그 사람의 전부일 때가 있다. 실체가 사라졌을 때 우리는 상징으로 그 실체를 기억한다. 뉴스에 사람이 등장하면 자막으로 그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하지만 자막에 이름이 나오지만 화면에 등장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를 오직 이름으로 기억한다. 대형 재난사고가 벌어졌을 때 실종자로 표기된 자막에 등장하는 이름은 때론 그 사람의 모든 것이다. 제3자인 우리는 TV 같은 미디어를 통해 재난 사고를 접하고, 이때 사고 피해자의 이름은 아주 잠시 뿐일지라도 그의 존재를 인지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상징이다.

우연한 시공간의 끈은 타키와 미츠하를 연결했다. 두 사람은 절실하게 서로의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쓴다. 이름을 잃는 것은 사실상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이 없는 자는 누군가에게 불리지 못하고, 불리지 않으면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소년과 소녀는 살아남기 위해,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망각에 저항한다. <너의 이름은.>의 마침표는 이름 그 이상의 실체가, 한 사람의 인생과 우주가 담겨 있다.

<너의 이름은.>을 보며 떠오르는 영화는 많다. 남성과 여성의 몸이 서로 바뀌는 <전학생>(1982), <체인지>(1997) 혹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2011) 같은 가벼운 코미디부터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랑을 주고받는 <동감>(2000), <시월애>(2000), <프리퀀시>(2000) 같은 휴먼 드라마까지. 그러나 이 영화의 놀라운 힘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교감하는 후반부에서 나온다.

내가 알게 된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아무도 믿지 않는 상황을 사람들에게 이해시켜야 하는 절박함, 실패가 두렵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필사적 노력, 무엇보다 나와 가족, 친구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마을 전체를 생각하는 더 큰 연대감이 영화의 후반부를 감동으로 이끈다.

마을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평생 산사에서 무녀로 살아온 할머니가 미츠하에게 말하는 ‘시간의 혜안’ 속에 영화의 숨은 메시지가 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끈(무스비) 중 하나는 '시간'이다. 시간은 뒤틀리거나 얽히다가도 다시 돌아와 이어진다. 유성 폭발과 같은 참사로 마을이 사라진다고 해도 사람의 영혼은 실타래로 이어져 있어 다시 만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황혼 녘에 메시지를 극적으로 그려낸다.

<너의 이름은.>이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둔 이유 중 하나는 미츠하와 타키가 이룬 기적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참사를 겪은 일본인들을 위로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세월호 트라우마를 가진 우리에게도 커다란 치유의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도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안내방송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한국 내 일본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 기록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301만 명)이다.

영화는 추리 서사 구조를 차용해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발랄한 전반부와 애절한 후반부 사이의 다소 이질적인 톤은 세련된 교차편집이 균형을 맞춘다. <초속 5센티미터>(2007), <언어의 정원>(2013) 등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따스한 빛의 느낌과 섬세한 배경, 서정적인 분위기는 이번에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의 영화가 주로 '나'의 감정을 극대화해 관객과 교감하는데 천착했다면 이번에는 '나'를 통해 '우리'를 환기하는 이야기로 확장한다. 나를 넘어선 우리, 아마도 그것이 감독이 영화 제목에 마침표를 붙인 이유일 것이다.

너의 이름은. ★★★★

다시 만나기 위해 부르는 이름, 힘이 되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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