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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아이를 낳았다

  • 입력 2017.01.14 09:54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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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가 출산했다. 제왕절개였다.

친구는 임신 기간 내내 자연분만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아이가 질을 통과하면서 엄마 몸속에 있는 좋은 균들로 샤워를 하고 나오면 면역력이 강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자연분만을 해야 하는 이유는 넘쳐났다. 그는 자연분만을 위해 요가와 호흡법을 열심히 연습했다. 예정된 극심한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아이를 위한 축복이라는 생각으로 이겨냈다.

그런데 예정일이 한참 지나도 진통이 시작되지 않았다.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에 의사는 유도분만을 권유했다. 촉진제를 맞자 진통이 시작했다. 아이는 내려오지 않았다. 다음 날 다시 촉진제를 맞고 진통을 참으며 아이를 기다렸지만, 결국 친구는 수술실에 들어가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다.

이틀 후 회복실에 있는 친구를 방문했다. 그는 자신이 자연분만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담당 의사가 웬만하면 제왕절개를 안 해주는 일명 ‘자연주의 의사’라고, 간호사들도 다른 의사 같았으면 벌써 제왕절개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그런 의사가 제왕절개를 하자고 했을 정도니 정말이지 자연분만은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제왕절개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은 그에게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친구의 어머니는 나보다 먼저 친구와 아이를 보고 갔다. 그의 어머니는 오자마자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다고 한소리를 했다고 한다. 의사들이 돈 벌려고 제왕절개를 추천하는 것이고, 아이가 내려오기 싫다면 그런 줄 알고 기다려 줘야 하는데, 자연분만이 얼마나 아이한테 좋은데 그걸 좀 못 참고 수술을 했다고, 회복실에 누워있는 친구를 꾸중했다. 어머니는 간호사에게 “둘째는 자연분만 못 하는 건가요?”라고 물으며 친구의 계획에도 없는 둘째의 출산을 걱정했다. 한동안 의료진들에게 왜 애를 제왕절개 시켰냐고 따지고 나서야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갔다.

자연분만에 대한 산모 가족들의 염원이 친구에게만 일어난 아주 별난 일은 아니었다. 친구는 옆 침대에 있던 산모도 제왕절개를 했는데 남편이 아쉬워하는 눈치더라고 말했다. 그 남편은 산모를 극진히 보살피는 애처가라고 했다. 칫솔을 들고 아내의 이를 닦아주기까지 했다고, 산모가 손 하나 까닥하는 것을 못 견뎌 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회복실에 와 간호사에게 가장 먼저 물었던 것은 역시나 “둘째는 자연분만 못 하는 건가요?”였다고 한다.

2.

완모(모유 외에는 아무것도 먹이지 않는 완전한 모유 수유) 또한 친구가 임신 기간에 다짐했던 것 중 하나였다. 모유가 아이에게 주는 영양분과 정서적 안정감은 분유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유 수유는 상당히 고된 일이다. 밤에 아이가 배고파 울면 일어나서 달랠 수 있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 세 시간 간격으로 수유해야 하므로 깊게 잠자리에 들 수 없다. 모유가 부족한 엄마는 초조함과 미안함을 느끼고, 모유가 많이 도는 엄마는 젖몸살로 고통받는다. 가슴은 짓무르고 허리는 칼로 쑤시듯 아프다. 모유 수유로 가슴의 모양이 변해 우울함이 덮치기도 한다. 그런데도 친구는 아이에게 꼭 모유를 먹이고 싶어 했다. 아이에게 더 좋다고 하니까.

그렇지만 친구는 애를 키우고 보니 어느 정도는 분유를 쓸 수밖에 없겠더라고 말했다. 장을 보려면, 은행 업무를 보려면, 관공서에 가서 서류를 떼려면, 누구라도 만나려면 친구는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해야 한다. 하지만 바깥에서 아이에게 모유를 주는 것은 쉽지 않다. 수유실은 대형 상점이나 백화점, 혹은 몇몇 지하철역에 가야만 찾을 수 있다. 수유실이 아닌 바깥 공간에서 수유했다가는 끈질긴 시선과 무례한 숙덕거림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친구는 외출할 때는 분유를 쓰겠다고 결심했다.

친구가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기 위해 분유통을 찬장에서 꺼내면, “아이에게 가장 좋은 식품은 모유입니다”라는 문구를 읽게 될 것이다. 국내의 분유에는 이 같은 문구가 의무적으로 기재된다. 분유를 쓰려는 양육자는 자신이 아이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있지 않다는 주의, 혹은 경고를 받는다.

국내 분유에 기재된 문구들

분유에 적힌 이 말에 멈칫하는 손을 상상한다. 아기를 데리고 외출 한번 하려고 짐을 바리바리 싸며 분유를 챙기는 친구의 손이다. 젖이 부족한 엄마의 손이다. 아파서 약을 먹고 있는 엄마의 손이다. 육아휴직을 쓸 새도 없이 직장에 복귀하는 엄마의 손이다. 그리고, 젖을 줄 수 없는 아빠의 손이다. 혹은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손이다. 분유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모유가 가장 좋은 식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불필요한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 혹은 아이는 당연히 모유를 줄 수 있는 엄마 손에 크고 있다고 단정 짓는 것?

모유를 줄 수 있는 상황에서 분유를 쓰는 양육자의 선택 또한 존중돼야 한다. 엄마는 전업주부였고 병을 앓지도 약을 먹고 있지도 않았다. 젖이 유난히 부족한 것도 아니었지만 둘째인 나는 분유를 먹여 키웠다. 첫째를 키울 때 모유 수유가 너무 힘들어서 두 번은 엄두를 못 냈다고 엄마는 설명했다. 엄마는 자신이 좀 더 편해지고자 분유를 선택했고(물론 젖병을 소독하고 말리는 노동 또한 고되다), 누구도 엄마를 그 일로 비난할 수는 없다.

모유와 분유는 개인의 선택 문제이지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분유가 아이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양육자에게 주의를 줄 이유는 없다. 희한하게도 분유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님에도 최고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주의, 경고, 억제의 대상이 된다. 비타민 영양제에 “과일이나 채소에서 비타민을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라는 문구가 붙거나, 차 음료에 “가장 좋은 차는 직접 우려낸 차입니다”라는 문구가 붙는 것은 이상하다. 분유의 문구 또한 마찬가지다.

3.

엄마는 사회가 최고라고 규범화한 것만을 아이에게 줄 것을 요구받는다. 엄마는 아이의 신체적 건강과 정서적 건강을 위해서 자연분만과 모유 수유를 해야 한다. 아기의 피부를 생각해 천 기저귀를 빨아 써야 한다. 유아기까지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아이를 키워내야 한다. 직장에 다녀도 아이의 생일에는 꼭 엄마가 손수 미역국을 차려줘야 한다. 이런 조건들은 끝도 없이 나열된다. 최고가 아닌 것을 선택한 엄마는 나쁜 엄마라고 쉽게 비난받는다.

맞벌이 부부의 아들은 자신의 생일상을 차려주지 않는 ‘엄마’에게만 서운해 한다 ⓒtvN

우리 사회에서 모성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도, 그래서도 안 되는 영역이다.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 돈이나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모성이 부족하다고 치부된다. 엄마는 아빠와 달리 몸을 이용한 노동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에 따라 자질을 평가받는다. 그러나 엄마의 사랑을 노동의 강도로 측정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자연분만, 모유, 전업주부의 육아가 제왕절개, 분유, 워킹맘의 육아보다 우수하냐 아니냐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여성이 후자를 선택하는 것에 가타부타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은 무례하고 폭력적이며 부당한 참견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오지랖이다.

친구가 두 번이나 촉진제를 맞으며 진통을 참는 동안, 젖을 물리느라 아픈 허리를 부여잡는 동안, 직장을 포기하는 동안, 그렇게 사회가 말하는 ‘최고’의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동안 남편과 사회에게는 무엇이 요구되고 있는가? 아이는 자궁과 유방, 여성의 헌신으로만 나고 자라는 것이 아니다.

여성에만 가중된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여성의 몸’이라는 자원을 최대한 이용한)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백날 출산 지도를 만들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4.

열 살 때인가, 학교에서 선생님이 모유를 먹고 큰 애들이 더 머리가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힘들어도 엄마들이 모유 수유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내가 모유를 먹고 컸는지 분유를 먹고 컸는지 물었다. 분유라는 대답에 실망했고 섭섭했다. 나만 왜 분유를 먹였냐고, 둘째라고 그렇게 차별해도 되는 거냐고 화를 냈다.

세월이 흘러 친한 친구가 출산했다. 모유 수유가 너무 힘들어 분유를 먹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동시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내가 엄마에게 더 일찍 했어야 하는 말을 전했다. 나는 분유를 먹고 잘 컸다고. 똑똑하고 건강하다고, 엄마가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이 육아에 훨씬 중요하다고. 엄마의 사랑은 그런 거로 측정하는 게 아니라고.

이 글은 친구에게 쓰는 위로문이자, 엄마에게 보내는 사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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