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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7시간 답변에서 탄핵의 결정적 증거가 드러났다

  • 입력 2017.01.11 12:26
  • 기자명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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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이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행적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가 당시 행적을 제출하라고 지시한 지 19일 만이었습니다.

10일 제출된 세월호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은 지난 11월 19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나왔던 “세월호 당일, 이것이 팩트입니다”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홈페이지(28개)보다 행적 5개 늘어났고, 설명만 조금 더 체계적이었을 뿐입니다.

화제가 됐던 “오후 3시 35분경 미용 담당자의 머리손질”이 추가됐습니다. 이 부분은 이미 언론 보도와 국조특위를 통해 알려진 바 있습니다. 자료를 보면 ‘보고서 검토’와 ‘전화 통화’ 등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적 주장에 그칩니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합니다. 결국, 헌재는 대통령 측에 통화 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 측 답변을 보면 의혹이 풀리기보단 오히려 탄핵에 결정적인 증거가 드러난 것으로 보입니다. 법정에 제출한 공식적인 해명이 어떤 문제점을 가졌는지 알아봤습니다.

① 대통령은 몇 시에 세월호 참사를 인지했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를 언제 알았을까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세월호 침몰을 처음 알게 된 시각은 오전 9시 19입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9시 24분에 안보실에서 문자로 상황을 전파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헌재에 제출된 자료를 보면 “10:00경 국가안보실로부터 08:58 세월호 침수 사고에 대해 처음 서면보고를 받았다”고 돼 있습니다. 정확히 9시 24분 문자로 사고를 인지한 것인지, 10시에 서면으로 보고받은 것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진성 헌법재판관은 “답변서에는 우선 대통령의 세월호 침몰에 대한 최초 인지 시점이 언제인지 나와 있지 않다”며 “TV 등을 통해서 (사고가) 오전 9시 조금 넘어서부터 보도됐는데, 대통령이 TV를 통해서 확인하지 않았는지를 밝혀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해경 첫 구조선인 123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9시 34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9시 24분에 사고를 제대로 인지했다면 알고도 제대로 구조 명령을 내리지 않은 셈이 됩니다. 만약 10시에 알았다면 구조를 할 수 있는 최초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 됩니다.

긴박했던 순간, 53분 동안 전화 통화 없었다

10시 서면 보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해경청장과 통화합니다. 그런데 오전 10시 30분부터 오전 11시 23분까지 53분간 박근혜 대통령의 통화 기록은 전무합니다. 대리인단은 이 시간에 서면 보고를 검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증명할 길은 없습니다. 박 대통령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합니다.

오전 10시 30분은 탑승객 470명 가운데 70명만이 구조됐던 시간입니다. 오전 11시 23분까지도 구조 인원은 161명에 불과했습니다.

국가안보실이 11시 20분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선체가 수면 아래 잠겨 있는 세월호 사진이 첨부돼있었습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배가 뒤집힌 상황에서 구조 인원이 161명에 불과하면 도대체 왜 구조를 하지 않느냐고 난리가 났어야 정상입니다. 국민의 생명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순간에 보고서만 붙잡고 있었다는 자체가 이미 탄핵 사유로 차고도 넘칩니다.

③ 서면 보고서는 누가 전달했나?

박근혜 대통령이 받았다는 서면 보고 과정은 어떻게 이뤄졌을까요? 윤전추 행정관은 오전 10시 ‘급한 서류’가 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합니다. 윤 행정관은 “당시 박 대통령은 문을 나와서 서류를 받아 갔다”고 진술했습니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12시 5분과 12시 33분 서면 보고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시각 윤전추 행정관은 관저 집무실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날 관저 출입은 당일 오전 피청구인의 구강 부분에 필요한 약(가글액)을 가져온 간호장교(신보라 대위)와 외부인사로 중대본 방문 직전 들어왔던 미용 담당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이 제출한 세월호 당일 행적)

대통령 대리인단은 세월호 참사 당일 간호장교와 미용 담당자 외에는 관저에 출입한 사람이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오전 10시에는 직접적인 서류 전달이 있었지만, 이후 서류로는 보고서가 올라가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이메일로 보고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메일을 보내고 수신했던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아직 뚜렷하게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메일로 보고서를 받았는지 아닌지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 기록이 조작됐거나 수신이 되지 않았다면 박 대통령은 제대로 사건 보고도 받지 않고 엉뚱한 짓을 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④ TV도 없었던 관저, 왜 청와대 벙커에 가지 않았나?

박근혜 대리인 측은 “청와대는 어디든 보고받고 지시·결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으며 대통령의 일상은 출퇴근의 개념이 아닌 24시간 재택근무 체제”라고 말했습니다.

수시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TV로 사고를 인지했는지는 제대로 해명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윤전추 행정관은 관저 집무실에는 TV가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벙커에 국가안보종합상황실을 설치했습니다. 상황실에는 국내 23개 주요 정부기관으로부터 실시간 전송되는 위기-재난 현장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자상황판(KNTDS 시스템)도 있었습니다.

육해공군뿐 아니라 경찰청, 산림청, 소방본부, 한전 원자력 상황실의 정보가 청와대로 연결됐습니다. 심지어 한반도 주변을 운행 중인 항공기와 선박의 정보도 나왔습니다.

달랑 노트북만 있는 관저 집무실에서 근무했다는 대통령 대리인 측의 변명은 도저히 이해될 수 없습니다. 마치 4K 영상으로 통화할 수 있는 위성 전화가 있는데 손으로 쓴 편지로 소식을 전달한 상황과 같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 측이 제출한 대통령 직무 유기와 헌법 10조 위반에 대한 반박문

탄핵 사유의 결정적 증거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 측은 “오전 10시에 세월호 사고 발생 보고를 처음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사고 상황이 전파된 9시 24분에서 무려 36분이나 지난 시각입니다. 이미 수많은 생명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 것입니다.

대리인 측이 제출한 자료는 “구조 상황을 보고받고 보고된 상황에 따른 지시를 하는 등의 대처를 하다가 15:00경 피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서술돼있습니다.

▲ 국가안보실이 11시 20분에 제출한 보고서. 474명의 승객 중 161명만 구조됐다는 정보와 함께 선체가 뒤집힌 세월호 사진이 첨부돼 있다.

국가안보실이 11시 20분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승선원 474명 구조작업 중”이라 쓰여습니다. “오전 11시 현재 161명 구조”에 선체가 뒤집힌 “세월호 현재 상태”라는 사진도 있습니다.

11시 20분 이런 보고를 받았는데 어떻게 오후 3시에 상황이 심각하다고 인지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2014년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골든타임을 놓치고, 대통령으로서 사고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등 직무를 유기했습니다. 헌법 제10조에 보장된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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