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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경선 룰을 보고 싶다

  • 입력 2017.01.11 11:18
  • 기자명 임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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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 후보 논의를 시작하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인용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면서 주요 정당들도 조기 대선 가능성을 넓게 열어놓고 있다. 국정 농단 사태의 주범인 새누리당이나 종범인 바른정당과 달리 책임을 추궁하는 입장인 민주당이나 국민의당 등은 본격적으로 대선 경선 논의를 시작했다.

줄곧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을 비롯한 이재명, 박원순, 안희정, 김부겸 등 차기 대선주자가 대거 포진한 민주당의 경우 경선 룰을 둘러싼 논쟁이 특히 치열하다.

민주당 당헌은 공직후보자의 경선을 국민경선 또는 국민참여경선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만을 규정한다. 총선 및 지방선거의 경우 당원을 50% 이하, 일반 유권자를 50% 이상 반영하는 국민참여경선으로 하고 있으나, 대선은 이런 규정도 없다.

여기에서 국민경선은 국민(비당원)과 당원이 구분 없이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국민참여경선은 국민(비당원)과 당원의 참여 비율을 나누어 경선을 치르는 제도를 말한다. 어느 쪽이든 당원이 아닌 사람의 경선 참여 기회를 폭넓게 보장하는 것인데 사실 민주당의 경선 룰 시비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경선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으나 명문화된 룰은 매우 모호하기 때문이다.

현 후보자들의 입장은?

현재 민주당의 주요 대선후보들은 대체로 지도부가 정하는 경선 방식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나, 물밑에서는 서로 다른 계산을 벌이고 있다.

‘뜨겁다 뜨거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룰 토론회 현장, 미디어오늘

ⓒJTBC

1위 주자인 문재인은 경선 룰에 대해 특별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않으며 이미 지도부가 정하는 경선 방식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다만, 친문의 당 장악력이 높다는 점에서 당원 참여 비중이 높을수록 젊은 세대의 지지가 높고 기존 모바일 선거에서 득표력이 증명됐다는 점에서 모바일 및 온라인 경선 등을 열어놓을수록 유리하다는 셈법이 깔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한 발 뒤처져 달리고 있는 주자들은 경선 룰에 대해 갑론을박을 이어가고 있다. 문재인에게 유리한 당원 비율 및 모바일 경선 비율을 최대한 낮추는 것은 물론, 비문 연대를 이끌 수 있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 등이 후발주자들의 주된 요구.

이런 비문 주자들의 요구는 일부에서는 긍정적인, 일부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받고 있다. 국민경선제도는 온 국민이 참여하는 대선이라는 선거의 예비전으로서 경선의 문호를 넓게 열어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결선투표제 역시 유권자들의 최고의 선택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좋은 제도다.

그에 대한 비판은 이렇다. 결선투표제는 본래 장점이 많은 제도이지만, 가치와 정책에 기반을 두지 않은 비문연대라는 연횡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또한,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태 때 온라인 당원의 참여를 크게 늘려 새로운 당원 중심 정당의 가능성을 열었음에도 후보자들 간의 유불리만을 따져 온라인 및 모바일 투표를 제한한다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같은 이유로 비당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을 열어두되, 당원의 비중도 어느 정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비문 주자들이 후발주자에 대한 배려를 일찌감치 요구하는 데 대해서는 대선 본선에서도 후발주자에 대한 배려를 요구할 것이냐는 비판이 따라붙기도 한다.

배심원제 요구, 꼼수인가 묘수인가

최근 박원순과 이재명이 주장해 거센 논란을 낳고 있는 제안은 경선에 배심원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미리 구성된 배심원단이 토론 및 연설을 방청한 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준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방식이다.

무슨 이상한 방식인가 싶지만, 사실 전례가 없진 않다. 2011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박원순이 민주당 박영선 후보, 민주노동당 최창엽 후보와 함께 치렀던 경선이 바로 그것으로, 당시 경선은 여론조사, 배심원단 투표, 국민경선을 혼합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는 조직력이 현저히 다른, 서로 다른 정당의 후보들이 (심지어 박원순 후보는 무소속이었던 상황에서) 참여하는 독특한 방식의 경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안철수의 후보 양보 등으로 인기가 크게 높아졌던 박원순과의 후보 단일화를 위한 꼼수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편, 2012년 대선 때도 비슷한 방식이 제안된 바 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간의 후보 단일화 협상 때 안철수 후보 측이 제안한 ‘공론조사’ 방식이 그것으로, 당시 안철수 측은 민주당 대의원과 안철수 펀드 가입자를 동수로 배심원단을 구성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지금 다시 봐도 노골적으로 안철수 측에 유리한 주장이었다.

경선을 이런 배심원의 공론조사로 하는 것은 일견 ‘동원선거’를 막는 순작용이 있어 보이지만, 이 배심원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부터 온갖 암초가 깔려있다. 또한, 배심원제를 통한 경선이 국민의 뜻을 반영하기에 정녕 적합한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선의 문호를 오히려 좁히는 방식일 뿐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단순한 선동가를 뽑게 될 수도 있다. 지난 미국 대선 경선 때도 도널드 트럼프는 늘 토론회 승자로 꼽혔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경선 룰을 보고 싶다

사실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 있다. 2012년의 대선 경선 룰을 준용하는 것이다. 룰은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최대한 많은 이해를 반영해, 정당이라는 조직의 정체성을 고려해 ‘이미’ 만들어졌다. 상황이 변했단 이유만으로 게임 직전에 룰을 제멋대로 바꾸면 그게 어떻게 룰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당시 민주당은 여론조사를 통한 예비경선으로 5명의 후보를 추린 뒤, 국민경선 방식으로 선거인단을 모집해 전국 순회 경선을 치렀다. 결선투표제도 도입됐으나, 당시 문재인이 56%의 지지를 얻어 대선 후보로 선출됨으로써 실제 결선투표가 치러지진 않았다. 이를 준용해 시대적 변화와 요구에 발맞춰 어떻게 변용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물론 2007년 대선 경선과 같이 큰 실패가 있었다면 당연히 보완이 필요할 것이지만, 기초가 그렇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당원의 비중을 (굳이 높은 숫자가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 보장함으로써 당원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당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지만, 조기 대선이 가시화된 마당에 너무 욕심일지도.

매번 경선을 앞두고 경선 룰을 정하자며 다투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경선 직전에서야 논의가 이뤄지는 바람에 대선 주자마다 유불리를 따져가며 목소리를 보태니 더욱 그렇다.

때로는 가장 보수적인 선택지가 정답일 수도 있다. 우리의 문제, 진보에서부터 심지어 일베마저 동의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뢰할 수 있는 룰이 없는, 언제든지 수틀리면 룰을 갈아엎을 수 있는, 각자도생의 사회라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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