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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더 많은 무질서가 필요하다

  • 입력 2017.01.06 12:04
  • 기자명 북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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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런 걸 꿈꾸며 새 다이어리를 사지만.....

새해가 밝았다. 새 달력을 거는 순간 우리는 우리는 연례행사처럼 금연, 다이어트, 어학공부 같은 것들을 결심한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듯. 여기에 한술 더 떠, 두어 달 쓰고 말 시스템다이어리나 플래너를 장만해 지키지 못 할 연간계획을 빼곡히 적어 넣기도 한다. 이처럼 매 해의 첫 달은 정리정돈과 계획을 위한 시간이 되는데, 이건 반드시 필요한 일일까?

어쩌면 생각보다, 정리는 별로 중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최근 출간된 <메시 – 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의 저자 팀 하포드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무질서의 마법을 설파한다.

먼저 자기계발의 아이콘이 된 벤자민 프랭클린을 보자. 그는 1726년 런던에서 필라델피아로 향하는 긴 여행길에서 자기계발의 결과를 체계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다이어리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프랭클린이 추구한 덕목은 13가지로, 여기에는 절약, 질서, 정의, 청결 등이 있었다. 한 주 동안 한 가지 덕목에 집중해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다이어리에 기록했다. 지금까지 애용되는 ‘프랭클린 플래너’는 이렇게 탄생했다.

벤자민 프랭클린

하지만 정작 벤자민 프랭클린은 ‘질서’에 취약했다고 한다. 프랭클린은 그의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덕목 중 질서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이 덕목에 대한 과오는 늘 나를 뒤쫓으며 성가시게 했고 수정하고 개선해도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너무나 자주 수렁에 빠지고 말아 나는 이 덕목을 언제든 쉽게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고백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의 집을 방문한 존 맥마스터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프랭클린을 처음 만나러 온 사람들에게, 중요한 서류들이 책상과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모습은 정말 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역사상 가장 결단력 있는 사람으로 손꼽히는 벤자민 프랭클린. 하지만 그런 그조차 60년 동안 온갖 노력을 쏟아붓고도 자신의 집과 다이어리는 통제하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이 문제를 두고, 팀 하포드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질서를 찬양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그는 무질서 속에서 좋은 것이 탄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무질서가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프랭클린은 마음먹은 일이라면 끝까지 해내는 인물로 유명했다. 그럼에도 유독 ‘질서’에서만 계속 실패한 이유는, 무질서함이 자신의 성공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만드는 과정을 상상해보자. 첫 번째 주문이 들어오고, 식빵에 마요네즈를 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손님이 밀려 들어오는 점심시간이 닥쳤다.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샌드위치 주문이 더 들어왔는지 확인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 아닐까? 확인해보니 샌드위치 주문이 두 개 더 들어와 있다. 이제 고민이 시작된다. 이 일들을 어떻게 조직화하는 것이 좋을까? 주문이 들어온 순서대로 하면 될까? 아니면 샌드위치를 메뉴별로 구분해서?

아니다. 팀 하포드 식으로 하면, 그냥 뿌리던 마요네즈를 마저 뿌리는 게 낫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할 일을 조직화하는 데에도 시간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그 시간에 일을 해치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며, 일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조직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삶에도 적용된다. 일상을 더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체계화할 수 있다면 삶이 더 나아지고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프랭클린의 믿음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다초점 렌즈를 발명하고 번개를 잡고 신문을 발행하고 독립선언서에 사인을 하느라 일상을 깔끔하게 정리할 여유가 없었다.

또한, 때로는 예상치 못한 혼돈에서 극적인 결과가 탄생하기도 한다. 1975년 1월 27일, 피아니스트 키스 재럿은 독일의 쾰른 오페라하우스 리허설 무대에 섰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가 요구한 그랜드 피아노 대신 조율도 되지 않고 검은 건반과 페달은 눌러지지 않는, 한마디로 연주가 불가능한 피아노가 놓여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억수같이 내리는 비로 다른 피아노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공연기획자는 사색이 되어 키스 재럿에게 제발 무대에 서달라고 간청했다.

키스 재럿

재럿은 비에 흠뻑 젖은 채 애원하는 공연기획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잊지 마. 오늘 공연은 순전히 너 때문에 하는 거야.

키스 재럿은 피아노를 한 음씩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역동적으로 휘몰아치는 부분과 열기를 진정시키는 듯한 나른한 부분을 계속 오가면서 연주는 빠른 속도로 다채로워졌다. 아름다우면서도 기묘했다. 바로 이 연주가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쾰른 콘서트>다. 이 앨범은 350만 장이 팔려나갔다. 그 어떤 솔로재즈 앨범도, 어떤 피아노 앨범도 이만큼 팔려나간 적이 없었다.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피아노 덕분에 재럿은 깽깽거리는 고음부 대신 중간 톤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다. 피아노의 부족한 공명을 보완하기 위해 그의 왼손은 투덜거리듯 반복적인 베이스 리프를 유지했다. 그 결과 이날 연주는 거의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놀라운 효과를 만들어냈다. 재럿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연주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사실 ‘연주할 수 없는’ 피아노였다.

이처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수용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상상 이상의 결과가 있음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정확하고 완벽한 시스템과 질서정연함에 굴복하고 마는 건 아닐까. 팀 하포드가 5년에 걸쳐 쓴 <메시 – 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에는 벤자민 프랭클린과 키스 재럿의 사례 외에도 트럼프의 선거 전략,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 회의, 마틴 루터 킹의 연설 일화 등이 담겨 있다.

우리가 꿈꾸는 성공은 대개 혼란과 무질서라는 토대에서 세워진다. 일단 성공하고 나면 모든 혼란과 무질서가 사라지고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만이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가 잘 알기 어려울 뿐이다. 그러니, 이제 완벽히 정리된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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