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아들 상견례 입고 갈 옷 훔친 일용직 아버지

  • 입력 2017.01.04 16:46
  • 수정 2017.01.04 17:51
  • 기자명 프리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염치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저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살겠습니다."

아버지는 돈이 궁했다.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일용직으로 일하며 외아들을 번듯이 키워낸 50대 아버지 A 씨는 아들의 결혼식을 앞두고 양가 상견례가 부담됐다.

A 씨는 살기가 팍팍해 제 한 몸 꾸밀 겨를이 없어 낡아 빠진 옷을 걸친 자신의 초라한 행색에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직장에 취직하고, 마음 맞는 짝을 만나 결혼을 앞둔 기특한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는지 상견례를 며칠 앞두고 아버지의 두 손에 새 옷 사 입으라며 20만 원을 쥐여줬다.

ⓒ연합뉴스

A 씨는 그 돈을 들고 비교적 저렴한 옷을 파는 대형마트 의류매장을 지난달 16일 저녁 찾았다.

그 돈으로 아들에게 줄 1만여 원 상당의 화장품을 먼저 산 A 씨는 아들 이름으로 현금영수증까지 착실히 끊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초라한 행색으로 하나뿐인 아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 의류매장을 돌며 옷을 십수 번 들었다 놨다 고민했다.

아버지의 눈길은 옷의 멋스럼보다는 가격표를 향했을 것이다.

10만 원도 안 되는 9만 9천 원짜리 외투를 겨우 고른 A 씨는 의류매장 종업원에게 "다른 곳 둘러보고 이 옷을 살테니 기다려달라"며 자리를 떴다.

종업원은 외투를 스팀다리미로 다리고 한참을 기다려도 A 씨가 오지 않자 화장실을 가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마침 그때 매장을 다시 찾은 A 씨는 '한 푼이라도 아껴보자'는 순간의 잘못된 마음에 옷을 훔쳐 달아났다.

ⓒ연합뉴스

A 씨에게는 아들이 준 돈이 있었지만, 옷을 훔친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나이를 먹고, 최근 막노동 일거리도 떨어져 홀로 살던 집의 월세 15만원을 낼 길이 없던 A 씨는 최근 아들의 신혼집에 잠시 들어가 살고 있었다.

아들의 신혼집에 계속 얹혀살 수 없어 하루빨리 나오려고 발버둥 치던 A 씨에게 외투값 9만 9천 원은 큰돈이었던 셈이다.

경찰에게 붙잡힌 A 씨는 죄를 빌며 내지 않은 옷값을 치렀으나 불구속 입건됐다.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자 전국에서는 A 씨를 돕고 싶다는 문의 전화가 경찰서로 빗발쳤다.

1남 1녀 자녀들의 손주를 보는 재미에 살고 있다는 포항의 한 할아버지는 "나도 넉넉하지 않지만, 훔친 옷값을 내가 내주고 싶다"고 담당 형사팀장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옷값을 이미 치렀다"는 형사의 답변에 이 할아버지는 "상견례에 입을 옷도 없었으면 결혼식에 입을 양복도 없을 것 아니냐"며 양복 한 벌이라도 사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경기도의 한 여성은 "A 씨의 아들 결혼식에 축의금이라도 전달하고 싶다"며 "도움의 뜻을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A 씨는 "잘못을 저지른 저한테도 이런 일이 생기네요. 너무너무 고맙습니다"라며 "그러나 저보다 어려움 사람도 세상에 많은데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고 도움을 정중히 거절했다.

스스로 "염치없다"고 말한 A 씨는 "오히려 제가 저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살겠다"고 다짐해 전화기를 붙잡고 소식을 전한 형사의 눈시울을 붉어지게 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