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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노트북 금지령 내린 박근혜 기자간담회

  • 입력 2017.01.02 10:31
  • 수정 2017.01.02 12:03
  • 기자명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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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일 새해 첫날,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이 갑자기 신년 기자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국민은 물론이고 언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행보였습니다.

원래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과의 오찬 행사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한 실장과의 오찬 행사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이 긴급하게 대통령 기자 간담회 일정을 알렸고, 기자들은 황급히 간담회에 참석했습니다.

카메라, 노트북, 휴대폰 금지, 근접 사진 한 장도 없어

대통령이 직무 정지됐다고 기자들을 못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탄핵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 등산을 갔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비보도’가 전제였고, 박근혜씨는 ‘보도’를 전제로 기자들과 만났습니다.

보도 전제 간담회이면서도 카메라, 노트북, 휴대폰을 지참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수첩과 볼펜 정도만 허용됐습니다. 기자들을 불러 놓고는 취재를 할 수 없도록 손, 발을 묶어 놓았다는 점은 철저히 청와대가 제공하는 자료만 가지고 기사를 작성하게 하는 지능적 수법입니다.

▲보통의 청와대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망원렌즈 등으로 촬영한 근접 사진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청와대가 제공한 사진 6장에는 근접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과 기자들이 가진 간담회는 43분간 열렸는데, 언론에 공개된 사진은 청와대 전속사진사가 촬영한 6장이 전부였습니다. 청와대가 제공한 사진에는 근접 사진이 한 장도 없었습니다.

보통의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개되는 사진만 봐도 망원렌즈를 이용해 촬영한 근접 사진이 있었던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성형수술 의혹을 사전에 막으려는 방편으로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이라 기자간담회를 했다기 보다는, 1월 3일로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탄핵 첫 변론기일 때문으로 예상됩니다. 언론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고, 탄핵 기각 여론을 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 삼성합병 뇌물 의혹에 "완전히 나를 엮은 것"

보도를 전제로 기자를 만났다는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첫 발언으로도 짐작 가능합니다. 박 대통령은 “암만해도 이쪽에 오시게 되면 소식도 더 많이 들으시고 이해를 더 하실 수도 있게 돼서”라며 “한 식구같이 생각한다”는 말로 기자들에게 친근감을 내비쳤습니다.

이후 박 대통령은 철저히 자기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서는 “나는 정상적으로 이 사건이 터졌다는 것을 보고 받으면서 계속 체크를 하고 있었다”라며 관저에서 지시하고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중앙대책본부에 늦게 도착한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어디 간다고 그러면 확 가는 것이 아니고, 경호하는 데는 필수시간이 필요하다”라며 경호 때문에 늦었다고 변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경호실은 당시 일지 등을 아직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지시 의혹에 대해서는 “완전히 나를 엮은 것”이라며 “누구를 봐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고, 제 머릿속에서도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부회장 독대 자리에서 ‘삼성의 승마협회 지원이 왜 늦어지느냐’라며 화를 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회장은 독대 후 서둘러 회의를 소집해 승마협회 지원이 재빠르게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백옥, 태반 주사와 미용 시술 의혹에 대해서는 ‘사적 영역에 있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순방 때는 시차 적응과 피로 때문에 영양주사도 놔줄 수 있다”며 큰 죄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변명은 그간 청와대와 변호인단의 ‘개인 사생활’ 주장과 비슷합니다.

지난 11월 4일 대국민담화에서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다"며

"앞으로는 사사로운 인연을 끊고 살겠다"던 박 대통령. ⓒYTN 캡처

최순실씨의 비선개입 의혹이나 특혜 의혹 등에서도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대국민간담회에서는 ‘앞으로는 사사로운 인연을 끊고 살 것이다’고 말했지만, 이번 간담회에서는 “오랜 세월 아는 사람이 생길 수 있는데, 지인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대통령으로서의 책무가 있고 판단도 하는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지인이 다하고,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영재 성형외과 특혜 의혹에 대해서는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으면 받고, 그런 자격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라며 특혜가 아닌 기술력에 따른 지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은 “저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으로부터 “참 좋은 일이 아니냐고 그렇게 들었다”라며 유 전 장관이 말을 바꾸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종합해보면 박근혜씨는 신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방어로 일관했습니다. 아직도 뭐가 잘못이고,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태도였습니다.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박근혜 화법’

기자 간담회 대화는 전문 공개됐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어도 당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먼저 통문장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뭐랄까, 보도라든가 소문, 얘기, 어디 방송 나오는 것을 보면 너무나 많은 왜곡, 오보, 거기에다 허위가 그냥 남발이 되고 그래 갖고 종을 잡을 수가 없게, 어디서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또 보면 그것도 사실이 아니었어, 조금 있다 보면 아니 그것도 사실이 아니었어 이런 식으로 가서 홍보실에서 이렇게 하다가는 한도 끝도 없겠다고 그래 갖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오보 바로 잡습니다 해 갖고 했는데 그것도 다 못 잡고, 지금 있는 것만 해도 수십 개이고, 아마 다 합하면 셀 수 없이 많을 겁니다.”

이렇게 긴 글이 한 문장입니다. 끊어서 읽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박 대통령의 말을 보면 ‘그런데, 그런’이라는 말이 81번, ‘이렇게’가 34번이 나옵니다. ‘그런’은 무엇이고, ‘이렇게’는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한 내용은 박 대통령 본인 외에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모든 것이 철학과 소신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왜 정확한 워딩을 말하지 못할까요.

▲ 지난 3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제10차 촛불집회. ⓒ연합뉴스

2016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도 국민들은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전국에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간 국민들이 희망차게 시작하려는 2017년 새해 첫날, 박 대통령은 국민들의 마음에 다시금 분노의 횃불을 당겼습니다.

박 대통령은 통치 행위로서 자신의 국정 운영은 처벌이나 탄핵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통치 행위는 국민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새해 첫 날부터 민심을 읽지 못한 기자간담회 발언은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망각한 태도입니다.

최소한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지금 박근혜씨가 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는지를 보여주는 본질적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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