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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의 공감 능력

  • 입력 2016.12.07 12:24
  • 기자명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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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흘린 눈물의 의미는 희생된 아이들에 대한 슬픔이었을까. 자신의 곤경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까.

박근혜 정부의 지난 4년을 돌이켜보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황당한 장면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그의 태도다. 나중에 기지회견에서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지만, 그게 온전히 연민과 슬픔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걸 믿기 힘들 정도다.

그것은 결코 상상을 뛰어넘는 끔찍한 비극, 305명이 눈을 번연히 뜬 채 심해로 가라앉아야 했던 기막힌 현실을 성찰한 이의 모습이 아니다. 고교생 250명을 포함한 305명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던 국정의 최고 책임자의 모습과도 거리가 멀다.

남의 고통을 내 것으로 이해하는 힘, 공감 능력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분노했는가. 그것은 상대의 불행과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했던 슬픔이고 분노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뒤바꿔 이해하는 힘, 그걸 우리는 공감 능력이라고 부른다.

최근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그의 진면목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이 같은 공감 능력의 심각한 결여가 아닌가 싶다. 그것은 국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야 마땅한 정치 지도자로서는 치명적인 결격 사유다.

미국의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Dacher Keltner)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자들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여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하거나 이기적이라고 한다. 부유하거나 성공한 사람일수록 고립적, 이기적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들은 남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살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의 마음을 읽고 공감해야 할 필요가 없다.

반대의 경우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친 사회적이다. 당연히 동정심도 더 많다. 배움이 짧을수록 공감 정확도가 더 높아서 저학력자가 고학력자보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더 잘 읽어낸다. 가난한 사람은 생존을 위해 타인에게 의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의 삶, 공감 능력 떨어질 수밖에

박근혜는 10살 때 청와대에 들어가 27살 때까지 18년을 살았다. 자아가 형성되고 가치관이 정립되는 가장 결정적인 시기를 절대 권력의 성채에서 보냈다. 만인지상이었던 부친 박정희조차 이기지 못하는 딸자식이었으니 그는 절대 권력자 위에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는 그를 돌보아 주는 숱한 아랫사람을 거느리고 어떤 불편도 없이 살았다. 부친이 비명에 가고 청와대를 나와 살 때도 그는 별 어려움을 겪지 않은 듯 보인다. 여전히 그의 주변에는 그를 보살펴주는 ‘아랫것’들이 있었다. 최순실 일가와 뒤에 비서로 일하게 되는 문고리 3인방이 그들이다.

그는 일평생 동안 생계를 위해 일해 본 적도, 보통사람들이 삶 속에서 부대껴야 하는 일상도 경험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어 34년 만에 청와대에 귀환했다.

그리고 4년, 자신이 ‘아랫것’이라고 여겼던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이 드러남으로써 그는 마침내 탄핵을 눈앞에 두게 되기에 이르렀다. 그 아랫것들이 자신보다 우위에 있었던 권력자들이었다.

▲ 자신은 전혀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역지사지의 정서와 배려는 지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지난 4년간 박근혜가 보여준 소통은 사실상 모르쇠에 가까운 불통이었다. 늘 그는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했고 자신을 찬양하거나 보위하기 위해 막말을 서슴지 않는 자들만 주변에 기용함으로써 스스로 정한 믿음의 기준을 가지런히 했다.

모든 상황에서 기준은 자신이다. 그는 역지사지의 정서와 배려 따위를 지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불통의 고통은 상대의 것일 뿐 자신과는 무관하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감이 필요하지 않아 불통이 됐다

세월호 참사가 빚은 슬픔 앞에 가슴이 먹먹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 먹먹함이란 아이를 잃은 부모의 눈물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공감의 증거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눈물은 마치 가공의 정서처럼 낯설고 불편하다. 그는 아이들의 희생이 가슴 아파서가 아니라 사고의 수습책임을 추궁당하는 자신이 가여워서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른다.

세월호의 비극보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질책과 책임 추궁되는 상황이 그에게는 더 괴로웠던 모양이다. 아니, 그런 상황에 그는 분노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눈물 이후에 펼쳐진 정부의 대응이 유족들에게 어깃장을 놓고 이들의 진상 규명 요구에 비협조와 방해로 일관한 이유는 그런 권력의 심기를 살핀 결과다.

정부 여당은 유족들의 슬픔과 아픔을 어루만지는 것보다 대통령 1인의 심기를 살피고 그에 따르는 게 훨씬 편하고 손쉬웠을 것이다. 그가 부재한 7시간에 대한 침묵도 진상규명이 아니라 그를 보호하기 위한 강제된 침묵이었다.

박근혜가 세월호 문제에 대해 보여주는 비정하고 무심한 태도는 유족들의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체감하려는 공감 능력의 결여로 보는 것이 훨씬 진실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는 '담담히 가겠다'고 한다

이른바 비선 실세들에 의한 국정농단이 드러난 뒤에 행한 세 차례의 담화가 국민의 분노에 불을 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국민의 분노 따위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자신의 무죄를 확신하는 독특한 멘탈리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국민의 분노를 헤아리지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지난 3일엔 박정희의 고향인 구미에서도 촛불이 밝혀졌다. 사람들은 분노는 더 높아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박근혜 청와대가 연출한 엽기는 날마다 새롭게 갱신되고 있다. 4월 16일 당일, 315명이 배 안에 갇혀 있을 때 그는 단골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만지는데 시간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탄핵이 가결되더라도 담담히 가겠다’고 한다.

더는 공감을 이야기할 수조차 없다. 문제는 그런 그를 우리가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탄핵이 가결되더라도 쉽사리 물러나지 않겠다고 한다. 이게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선택은 짧고 그 후과는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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