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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촛불집회 비하 칼럼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 입력 2016.12.05 10:51
  • 기자명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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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열 작가는 이 232만 촛불도 다시 포퓰리즘과 불장난이라고 폄훼하게 될까. 12월 3일 촛불집회 ⓒSBS

촛불만 켜지면 두드러기가 나는 작가 이문열(69)의 알레르기 증상은 여전한 모양이다. 이 씨가 지난 2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이라는 칼럼이 새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도진 이문열의 '촛불' 알레르기

필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그의 알레르기 현상을 다룬 글을 써온지라 이번에는 구경만 하려 했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속이 거북해진다. 그의 이번 칼럼은 그가 기대온 보수가 기실은 수구의 참칭임을 거듭 확인해 준 듯하다.

이문열이 촛불집회를 ‘위대한 포퓰리즘’, ‘불장난’이라 폄하하고 ‘의병’ 운운하던 2008년 6월에 나는 그에 관한 첫 번째 글을 썼다. [기사: 이문열, 찢을까 살라버릴까] 이듬해 2009년 1월, MB악법 저지를 위해 싸우는 야당과 권력의 방송 장악을 저지하기 위해 파업에 나선 언론노동자들의 싸움을 ‘한통속’이라고 비난했을 때 쓴 글이 두 번째였다. [기사: 이문열, 다시 ‘홍위병’을 불러내다]

2010년 1월, 이문열이 강기갑 국회 폭력 무죄, PD수첩 명예훼손 무죄 등 일련의 재판 결과에 대해 우울한 심정을 토로하면서 “말을 아끼면서 황당하고 울적하다는 말을 거듭했다”고 했을 때 나는 세 번째 글을 썼다. [기사: 이문열의 ‘황당과 우울’은 계속되어야 한다]

같은 해 9월, 인사청문회-유명환 딸 특채 파동 등으로 보수가 몰리는 상황이 이어지자 그는 “정말 험한 꼴을 못 봐서 그렇다”고 개탄하고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수십만 부가 팔리는 데 대해 대한민국은 없거나 있다 해도 절명 직전이라며 국가 없는 정의를 근심할 때 나는 네 번째 글을 썼다. [기사: 이문열, 그도 그 ‘험한 꼴’의 일부가 아닌가?]

2010년 이후, 이른바 보수 우익의 백기사 이문열은 언론 지면에 잘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MB의 집권 중반기와 박근혜의 집권으로 이어지는 국내 상황이 고무적으로 전개되면서 험한 꼴을 더는 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일까.


▲ 조선일보 12월 3일 자 1면에 실린 작가의 칼럼 ⓒ조선일보 PDF 갈무리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그가 일찍이 우려했던 험한 꼴은 상상 이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그에게는 박근혜가 집권하는 동안 뚜렷이 한 일이 전혀 없는 권력의 실정과 농단은 잘 보이지 않은 대신 전국에서 밝히는 촛불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구태·수구를 답습하는 작가의 견강부회

이 상상을 초월하는 대통령의 범죄 행위의 어떤 부분이 보수와 이어지는지, 지지율 4%로 떨어진 여론의 어떤 부분의 진보인가. 현 상황을 보수의 위기라고 규정한 조선일보의 진단은 가외로 치더라도 이 보수 논객을 필진으로 부른 조선일보의 처방은 헛발질일 듯하다.

왜냐하면 이 위기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기 위해 소환된 이문열의 발언은 여전히 일찍이 그가 보여주었던 구태와 수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의 질문("'보수의 길', 왜 이문열에게 묻나?")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촛불에 대한 그의 관점과 해석은 그가 일찍이 소설을 통해서 으스대 왔던 현학과 박학의 어떤 부분으로도 덮을 수 없을 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견강부회의 극치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매스컴이 스스럼없이 ‘국민의 뜻’과 혼용하는 광장의 백만 촛불도 마찬가지다. 지난번에 문재인 후보를 찍은 적극적 반대표만도 1,500만 표에 가까웠고, 대통령 지지율 4%가 정확한 여론조사였다면 이 나라에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유권자만도 3,000만이 훨씬 넘는다. 아니,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친다면 4,500만도 넘는다.

하지만 그중에 100만이 나왔다고, 4,500만 중에 3%가 한군데 모여 있다고, 추운 겨울밤에 밤새 몰려다녔다고 바로 탄핵이나 하야가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는가. 그것도 1,500 단체가 불러내고, 매스컴이 일주일 내 목표 숫자까지 암시하며 바람을 잡아 불러 모은 숫자가, 초등학생 중학생에 유모차에 탄 아기며 들락날락한 사람까지 모두 헤아려 만든 주최 측 주장 인원수가.”

- 이문열, 조선일보 칼럼 중에서

자기 이름으로 된 천만 부가 넘는 책을 판 베스트셀러 작가의 글치고는 그 논리가 구차하고 민망하다. 이런 글을 “생각이나 주장을 무리하게 내세우거나, 잘 안 될 일이나 해서는 안 될 일을 기어이 해내려는 고집”, 즉 억지라고 한다.

▲ 작가 이문열

그는 숫자의 마술을 통해 박근혜에 대한 여론이 한 줌밖에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그는 한때 콘크리트로 비유될 정도의 맹목적 지지를 포함하여 40%를 넘나들었던 대통령의 지지율이 4%까지 빠져버리는 저간의 과정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그리고 지지율 폭락의 원인이 점잖은 표현으로 국정농단이지 그야말로 조폭의 행태에 비겨지는 권력의 범죄행위라는 사실도 외면한다.

비선에다 국정을 맡겨놓고 70년대의 정경유착이 서러울 정도의 방식으로 재벌과 부당거래를 일삼아 온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계속할 만큼 착한 백성은 더 이상 없다. 늘 짠한 마음으로 비극적으로 부모를 잃은 대통령을 지켜본 너그럽고 어진 백성들도 그가 즐겨 쓴 배신의 정치에 학을 떼버린 꼴이라는 걸 왜 이 유명작가는 아직도 모르고 있는가.

현 정국을 바라보는 노작가의 노회한 문장은 ‘여성 대통령의 미용이나 섭생까지 깐죽거리며 모욕과 비하를 일삼’고 ‘삼류 도색 잡지도 다루기 낯간지러운 사생활에 대한 억측과 풍문’을 ‘뉴스로 쏟아내는 매스컴’을 나무라고 있다.

그러나 본질을 피하고 지엽에 주먹을 들이대는 그의 스탠스는 여전하다. 언론이 여성 대통령의 미용과 섭생을, 사생활을 다루는 것은 말초적 흥미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이 마땅히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방기했기 때문이라는 걸 왜 모르는가.

‘입 냄새도 안 나는지 저쪽에서 무슨 소리를 해도 입 꼭 다물고 앉은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의 논객들’의 침묵을 염려하는 그의 충정은 안타깝다. 그러나 왜 그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지는 그가 경멸해 마지않는 시정의 소시민들도 아는 일이다. 그러나 그의 억지는 마침내 가지 말아야 할 데까지 이르고 만다.

“심하게는 그 촛불 시위의 정연한 질서와 일사불란한 통제 상태에서 ‘아리랑 축전’에서와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의 분위기까지 느껴지더라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지난 주말 시위 마지막 순간의, 기계로 조작해도 어려울 만큼 정연한 촛불 끄기 장면과 그것을 시간 맞춰 잡은 화면에서는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고도 했다.”

- 이문열, 조선일보 칼럼 중에서

비록 전언의 방식으로 전하고 있지만, 이 칼럼에서 그는 촛불을 폄훼하는 놀라운 안목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의 광장으로 나온 백만 시민들의 모습에서 느꼈다는 일사불란한 통제와 아리랑 축전에서와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의 분위기와 으스스한 느낌은 보통사람으로서는 느끼기 어려우니 말이다.

민의를 바라보는 뒤틀린 시선

그는 자신의 세계관으로 바라본 세계를 독자들에게 이야기로 전하는 소설가다. 문학작품에서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든 그것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상식으로 바라보면 수긍할 수밖에 없는 현실, 촛불의 민의를 자신만의 뒤틀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폄훼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은 용렬하고 서글프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마련이다. 그러나 보수의 위기를 처방하는 유명 작가가 소시민의 그것을 답습하며 억지 논리를 펴는 것은 작가 자신의 위기일 뿐이다. 그것은 어쩌면 이런 한심한 논리를 동원해야 할 만큼 보수의 위기가 깊다는 방증일까.

이탈리아 극본과 16세기 수피즘의 시인 술탄 바후의 노래, 마호메트의 금언까지 동원한 현학으로도 이 작가가 개진하는 논리의 저열함을 덮을 수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인터넷의 바다 한 귀퉁이에서 옹알이나 거듭하고 있는 무명 블로거마저 쪽팔리게 한다.

그는 이번 글로 보수가 아니라 수구○○임을 커밍아웃한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운 이유다. 바라건대, 작가 이문열은 이제 더는 우익의 백기사를 자임하지 말고 보통사람의 소박한 일상을 위로할 수 있는 보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노후를 넉넉히 보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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