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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순실의 시대 : 최순실이 살린 사람들

  • 입력 2016.11.03 10:43
  • 수정 2016.11.03 11:10
  • 기자명 유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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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대 순실의 시대다. 대한민국 곳곳에 순실의 손이 안 닿은 데가 없는 만큼 특종거리도 끝이 없었으니… 취재를 할 줄 아는 이나 할 줄 모르는 이나 모두 순실의 소식을 전하고 듣기에 여념이 없었다. 궁지에 몰린 순실은 모 일간지와 눈물 젖은 인터뷰를 했으나, 사상초유의 국정 농단에 빡친 국민들에게는 이조차 어이없는 눈물쇼로만 보였다.

하지만 음지 뒤에 양지 있고 망하는 놈 있으면 흥하는 놈 있다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일가의 날개 없는 추락이 시작된 지금, 그 덕에 경각에 달린 목숨을 건져낸 이들이 있다. 이른바 '최순실이 살려낸 사람들'이다.

1. 이재용

아이폰 7의 대항마로 내놓은 신상 휴대용 화기휴대폰 ‘갤럭시 노트 7’이 연쇄 폭발하면서, 이재용 체제의 삼성전자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처했다. 간신히 개척한 미국 시장에서의 이미지가 폭망한 것도 문제지만, 국내와 해외 구매자 보상 대책에 차등을 둔 점에 배신감을 느낀 한국 소비자들이 삼성을 외면하기 시작한 게 더 골치 아픈 일이었다. 삼성전자는 부랴부랴 상품 생산을 중단하고 전량 리콜을 시행했으나 한번 터진 불만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갤럭시 노트 7 구매자들이 집단 소송에 나서고 수십 년 간 이어져 온 ‘삼성 신화’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막 고개를 쳐들려는 찰나….순실이 등장했다.

그녀의 타블렛 PC는 폭발하지 않았지만 그 파괴력은 갤럭시 노트 7의 불량 배터리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모든 불만이 사라진 건 아니고, 이제 막 삼성의 경영권을 쥐어잡으려는 이재용의 앞에는 여전히 수많은 난제가 쌓여 있으나, 그래도 순실 덕에 그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벌게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2. 신동빈

롯데의 수난시대(?)는 길고 길었다. 경영권 분쟁으로 콩가루 집안 인증을 하더니, 국적 논란에 직원 및 협력업체 착취 논란과 기업주 일가의 배임-횡령 혐의까지. 아마 신동빈 회장 이하 롯데 임원진에게 지난 2년은 떠올리기도 싫은 악몽일 터다.

간신히 회장이 구속되는 사태는 막았지만, 망가진 경영 체제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했다. 게다가 기업 이미지는 이미 더 떨어질 데도 없을 만큼 바닥인데, 롯데의 못된 행태를 폭로하는 에피소드와 기사는 하루가 다르게 쏟아졌다. 신동빈 회장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아마도 앞장서 매를 맞는 심정으로)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그런데…순실이 등장했다. 심지어 신동빈 회장이 사과한 날 박근혜 대통령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과는 타이밍 폭죽과 핵폭탄이 동시에 터진 셈이다. 물론 폭죽이 롯데다.

이후는…이재용과 삼성전자가 탄 테크와 비슷하다. 순실의 등장이 롯데그룹의 이미지를 올려주진 않겠으나, 롯데를 앞장서 비판하던 이들의 시선조차 청와대와 독일로 쏠려 있는 상황이니 롯데와 신동빈 회장은 최소한 매 맞은 상처에 약 바를 틈은 얻게 됐다.

3. 진경준 / 김정주

돈 몇 억은 우습게 오가는 세기의 베프. 소위 ‘진경준 게이트’, ‘넥슨 게이트’로도 불리는 이들의 부당거래 사건은 순실의 시대를 연 밑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사건으로 진경준 검사장이 구속되면서 대한민국 검찰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당연히 이들의 유착관계와 비윤리적 사생활을 나노단위로 파헤치는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순실이 등장했다.

이후 이들의 이름은 순실 게이트가 터진 계기로서 등장하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지면에서 사라졌다. 사라졌다기보다는 설 자리를 잃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여죄야 이어질 재판에서 밝혀지겠지만, 어쨌든 당분간이나마 여론의 화살은 피하게 된 셈이다.

4. 이은재

MS워드를 왜 MS에서 구매하냐고 묻는 역발상의 귀재. 국정감사에서 조희연 교육감과 MS의 유착관계를 의심하며 ‘사퇴하세요’를 외쳐대다 본인이 사퇴할 뻔 했다. 이 의원은 ‘디스켓 복사 사건’을 일으킨 정형근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후 새로운 IT계 국회의원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런데…순실이 등장했다.

자료 복사의 신 지평을 연 이분의 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이후 이 의원의 트레이드마크 ‘사퇴하세요!’는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영상에 유용한 소스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녀를 향했던 분노가 고스란히 대통령과 순실에게로 옮겨간 건 보너스. 아마 순실에게 남몰래 감사를 표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 중 하나는 이은재 의원이 아닐까.

5. 문화예술계 성폭력 혐의자들

순실이 혜성처럼 나타나기 직전, 트위터 등 SNS에서 가장 주목 받았던 이슈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성폭력 추문이었다. ‘#000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피해사례가 쏟아져나오면서 그간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저질러 온 성폭력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 혐의를 받은 이들 중에는 작가 박범신 등 사회적으로 존경 받아 온 유명인사들도 있어 충격이 더 컸다. 이후 박범신은 ‘나이가 많아 실수를 했다’는 투의 짧은 사과문을 썼으나 그 무성의함에 더 큰 질타를 받기도 했다.

폭로가 이어지고 언론이 이 사건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권력을 무기로 저질러지는 성범죄에 대한 성토가 시작되려는데…순실이 나타났다. SNS 타임라인과 언론의 지면은 순식간에 청와대와 최순실 일가의 이야기로 가득 찼다.

그 후 일주일…여전히 성폭력 사태에 시선을 두고 있는 이들이 있지만 그 수는 확연히 줄었다. 때로 이 문제에 각성을 촉구하는 이들에게 ‘지금 그게 중요하냐’는 핀잔을 던지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어쨌든 이 분위기 속에서, 득을 본 건 비난의 화살을 맞던 혐의자들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성폭력 가해자들 뿐이다.

+ (번외) 최순실 게이트가 살려낸 것들

1. 국정 역사교과서

지난 27일, 교육부는 새로 펴낼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의 해’로 기술할 것이라고 확정 발표했다. 이는 1948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해’로 기술해온 기존 교과서들과 입장을 달리하는 것으로,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 주장하는 뉴라이트 사학의 시선과 일치한다. 사학계에서는 이 같은 해석을 두고 “48년 정부수립 이전의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채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전에… 순실이 등장했다. 그 결과 수많은 원성은 사그라들었다. 국정교과서는 이번 달 말 '조용히' 공개될 예정이다.

2. 아라리요 평창…?

‘아라리요, 평창’은 평창 동계올림픽 UCC 콘테스트를 홍보하기 위해 문체부에서 제작한 영상이다. 3억여 원의 세금을 들인 영상이지만 ‘평창 올림픽 홍보물에는 아리랑과 아이돌을 뒤범벅할 거다’는 네티즌의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데다, 올림픽 홍보라는 애초의 목적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내용이 엉망인 탓에 공개 후 어마어마한 욕을 먹었다. 여기에 문체부의 페이스북 반응 조작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비난 여론이 심상찮을 정도로 커졌다.

그런데…(다들 아시다시피) 순실이 등장했다. 이후 다른 이슈들처럼 그냥 묻히는 듯…했는데 해당 영상의 총 감독인 재키 곽과 ‘최순실 게이트’ 핵심인물 중 하나인 차은택의 친분 관계가 드러나면서 이 영상의 제작 배경 의혹에 다시금 불이 붙었다. 어쩌면 ‘아라리요, 평창’에는 허접한 시나리오 이상의 비밀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김준현과 정성호, 효린의 흑역사가 한 줄 추가된 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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