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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변단체: 김대중-노무현도 건드리지 못한 존재들

  • 입력 2016.10.21 10:10
  • 기자명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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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변단체는 일제강점기의 산물이다. 일제가 식민지배를 강화할 목적으로 조직한 것이 관변단체다. 해방 후에도 관변단체는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독재정권의 육성정책 덕분이다. 일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은 관변단체를 권력 유지 및 국민 통제와 감시의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일제의 산물 관변단체, 독재정권이 육성

이승만 정권의 반공연맹에서 비롯된 자유총연맹, 박정희 정권의 유산인 새마을운동중앙회, 전두환 정권의 사회정화위원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등이 ‘빅3’로 꼽힌다. 이들 모두 조직육성을 보장한 법률에 의해 설립된 관변단체들로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출연금이나 보조금을 받는다. 일반 시민단체에 비하면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다.

2015년 이들 3개 단체가 중앙정부로부터 직접 수령한 보조금은 21억 원. 16개 광역지자체가 제공한 지원금은 194억 원에 달한다. 사업비뿐만 아니라 운영비까지 지원했다. 매년 수백억 원의 혈세가 이들 3개 단체에게 흘러들어가는 셈이다.

막대한 보조금 때문일까? 이들 단체들의 성향은 친정부적이다. 관변단체가 정부 정책에 반하는 입장에 서는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보수-권위주의 정권이 집권하면 이들은 정부의 입장을 강하게 대변하는 친위대 역할을 한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제대로 지키는 관변단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야당까지 이들을 어쩌지 못하나?

이들의 정치 편향은 오래전부터 논란이 돼 왔다. 17대 국회 때는 진보세력을 중심으로 관변단체 폐지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보수성향의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진보성향의 열린우리당 의원들 사이에도 반대 목소리가 적지 않아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이들을 건드리지 못한 채 그냥 넘겨버린 것이다.

보수여당이 관변단체들을 비호하는 건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왜 야당까지 이들을 어쩌지 못하고 지켜만 보는 걸까? 선거 때가 되면 몇 표조차 아쉬운 이들이 지역 정치인들이다. 그러니 조직력을 갖춘 단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야당 정치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대처할 뿐이다. 단체의 회원 태반이 지역 사정에 밝은 터줏대감이고, 단체 간부들은 이 골목 저 골목을 연결하는 ‘관계망’을 쥐고 있다. 이런 단체에게 찍힐 경우 선거운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 야당 정치인까지 몸을 사리는 것이다.

야당 정치인들이 관변단체와 척을 지지 않으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권이 바뀌어 우리가 여당이 되면 저 단체는 내 수하조직이 될 수도 있는데’라는 꿍꿍이 때문이다. 단체장에 당선된 야당 정치인이 관례라는 명분 아래 관변단체 지역지부에 섭섭하지 않을 정도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수여당 출신이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지자체의 경우 보조금 규모는 커진다. 보수의 ‘안방’이라고 불리는 TK지역이 대표적인 사례다. 관변단체에 가장 많은 보조금을 뿌리는 지자체는 경상북도. 2015년의 경우 새마을운동 역량강화 사업으로 139억 원(국비 55억 원 포함)을 지원했다. 새마을운동중앙회 경북본부에 지원된 예산만 22억 원. 이 단체의 모든 비용을 경북도가 대준 셈이다.

주민자치센터, 관변단체 회원 모집에 나서기도

관변단체가 동네 주민자치센터를 자신들의 ‘앞마당’처럼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관변단체들이 동네 주민자치센터와 어느 정도 유착돼 있다는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예 노골적으로 관계를 과시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수년 전에는 인천시 만수1동 주민자치센터가 자유총연맹 등 관변단체 4곳의 회원모집 운동에 적극 나서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동장은 회원 모집 안내문을 만들어 이를 통장과 반장을 동원해 아파트 현관 안내판에 부착했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났다. 관변단체가 주민자치센터의 행정력을 이용해 회원모집에 나서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대전광역시 서구 A동. 대전에서는 ‘정치1번지’로 알려진 지역이다. 이 지역의 B아파트 단지 입구에 수 주일 전부터 이런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A 3동 바르게살기 회원모집... 문의 A 3동 주민센터 4XX-7XXX.'

대선 앞두고 골목 민심까지 침투할 수 있어

안내된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안녕하십니까? A 3동 주민자치센처 000입니다’라는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주민센터 직원이다. 공무원이 관변단체 회원모집 전화를 대신 받아주다니, 주민자치센터와 관변단체가 얼마나 밀착돼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장이 관변단체와 거리를 두고 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주민자치센터와 관변단체가 유착관계라면 산하 통반장의 태반도 관변단체의 영향 아래 있다고 봐야 한다. 통반장의 거반 이상이 동장의 추천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이다. 회원모집에 행정력까지 동원하는 걸 보면 관변단체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관변단체가 누리는 파워는 정권이 하사한 특혜다.

관변단체와 주민자치센터의 유착관계는 각종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유착관계가 형성되면 통반장 등 행정력 최하부 말초 조직까지 관변단체의 영향력 아래 놓일 수밖에 없게 된다. 관변단체를 주무르는 보수 집권세력에게는 큰 보탬이 되는 일이다. 민심의 말단부까지 영향력을 침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이러한 유착이 또 한 번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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