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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정유라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

  • 입력 2016.10.20 10:53
  • 기자명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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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이기붕 전 부통령의 아들 이강석은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가 되며 온갖 특혜를 누렸다. 하지만 4·19 혁명 후 입지가 불안해지자 이기붕 등 가족을 권총으로 죽인 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시대는 다르지만 비슷한 인생을 살았던 두 사람이 있습니다. 둘은 대통령의 핏줄은 아니었지만, 최고 권력자의 피붙이로 법을 무시할 정도의 특혜를 받고 권력을 누렸습니다. 바로 이강석과 정유라입니다.

1.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 최순실의 딸 정유라

이강석은 이기붕 전 부통령의 아들입니다. 이기붕은 이승만의 최측근으로 돈암장 비서와 대통령비서실장, 서울시장, 국방장관, 국무의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당시 이기붕이 살던 집을 가리켜 ‘서대문 경무대'(청와대의 옛 이름)라 부를 정도로 그의 권력은 막강했습니다. 이승만 정권의 최고 실세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최순실은 전경련이 수 백 억을 걷어 만든 미르, K 스포츠재단의 숨은 권력이었습니다. 박관천 전 경정은 “우리나라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 씨가 1위, 정윤회 씨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라며 말한 바 있습니다.

2. 대통령의 양자 이강석, 최태민의 딸 최순실

원래 이승만과 부인 프란체스카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이승만은 전처와 낳은 아들이 있었지만,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이승만은 늘 죽은 아들을 그리워했습니다. 이기붕은 그런 이승만과 프란체스카에게 아들이었던 이강석을 소개하며 친분을 다졌습니다. 결국, 이승만은 8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강석을 양자로 입적합니다.

정유라는 최순실의 딸이며 최태민 목사의 손녀입니다. 그녀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이어집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잃고 난 후 최태민 목사를 만나게 됩니다. 최 목사는 그녀의 정신적 동반자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사조직인) 대한구국선교단의 총재였습니다. 최순실은 이미 대학생 시절부터 새마음봉사단(전 구국선교단) 등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기붕이 자기 아들을 양자로 보내 최고 권력을 굳혔다면, 최태민은 최순실을 보내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어갔습니다.

3. 서울대 부정편입학 이강석, 이화여대 부정 입학 정유라

이강석은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된 1957년 서울대 법대에 편입학을 신청합니다. 학교에서는 특례 조항을 만들 수 없다며 거부했습니다. 대신 새로 시험에 응시해 입학하라고 통보합니다. 그러나 이강석은 시험도 보지 않고 편입을 요구했고 서울대학교는 청강생으로 허가하겠다고 결정합니다. 그러나 입학 요구가 계속되자 서울대학교 학장회와 법대 교수회에서는 만장일치로 이강석의 서울대 법대 편입학을 허가합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2014년 9월 시행된 2015학년도 수시전형에서 이화여대에 체육특기자로 지원해 합격합니다. 당시 그녀가 입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천아시아게임에서 금메달을 땄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금메달은 ‘2011년 9월 16일부터 2014년 9월 15일까지의 개인전 입상 실적 반영’이라는 입시 요강에 어긋났습니다. 금메달을 딴 시점도 9월 20일이었고, 개인전도 아닌 단체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화여대는 학칙을 어기면서도 그녀를 입학시켰습니다.

이강석과 정유라의 공통적인 특징은 대학입학 특혜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대학입학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놓는 한국 교육풍토로 본다면 최고 권력자의 피붙이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혜를 입은 셈입니다.

4. 서울대생 동맹휴학, 이화여대 시위

이강석의 서울대 법대 부정 편입학 소식이 알려지자 남재희, 이강혁, 김종호 등 법과대학 학생 200여 명이 학생 총회를 개최했습니다. 법대생들은 학교 당국에 이강석의 편입학 취소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반발한 법대생들은 동맹 휴학에 들어갔습니다. 학교와 학생들 사이에서는 절충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타협안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퇴장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이강석은 서울대 학생이 됩니다.

정유라는 승마특기생으로 입학한 후 학사경고를 받을 정도로 수업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베낀 엉터리 리포트를 제출했지만, 교수의 자상한 배려로 높은 학점을 받았습니다. 이에 이화여대생들은 교내 곳곳에 대자보를 붙이고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강석은 서울대 법대 편입학이 허용됐지만,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이 있자 휴학을 신청했습니다. 정유라도 부정입학과 학사 특혜 의혹이 제기되면서 휴학을 선택했습니다.

5. 1957년, 2016년, ‘특혜 없다’는 변명

이강석의 편입학이 문제가 되자 당시 문교부 장관은 “애국지사의 양자를 ‘스페셜 케이스’로 입학시켰다고 해서 무엇이 잘못인가”라고 반발했습니다. 또한, 문교부 차관은 “입학의 권한은 총장의 자유재량에 속한 권한이다. 총장의 권한 행사를 학생들이 침해한다는 것은 불법이다”라며 도리어 학생들의 동맹 휴학을 비난했습니다.

이화여대생들의 정유라 부정 입학과 특혜 항의 시위가 벌어지자 최경희 총장은 입학과 학사관리 특혜 의혹에 관해 해명했습니다. 이대 측은 “입학처장은 특기자 전형의 취지에 부합하므로 (면접평가에 메달 획득 사실을) 반영하는 게 옳지만, 반영 여부는 면접위원의 재량이라는 점을 당시 분명히 했다”고 말했습니다. 최경희 총장은 기자들에게 “(정유라에 대한) 특혜는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 4.19 혁명이 벌어지고 4월 28일 이강석은 아버지 이기붕 등 가족을 권총으로 죽인 듯 자살했다. ⓒ 동아일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권력 등에 올라탄 이기붕과 아들 이강석은 핏줄보다 더 심한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를 자행했습니다. 자식이 없으니 부정도 없다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최태민의 딸 최순실 의혹과 정유라의 부정 입학, 특혜 등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2016년 정유라 사태를 1957년 이강석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후퇴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길든 짧든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역사의 또 다른 오점을 남기는 일은 멈춰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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