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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합법의 극단에 서다

  • 입력 2016.10.18 14:17
  • 수정 2016.10.19 10:08
  • 기자명 비더슈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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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구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알 때, 과연 그것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

- 요제프 괴벨스, 나치 선전장관 -

시대가 차오르고 있다

2013년 2월 25일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3년 반이나 흘러갔다. 임기는 이제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퇴임까지는 이제 500일도 남지 않았다. 시간이 이쯤 되면, 어느 정권이든 레임덕이 오기 마련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당내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반발 여론이 나오기 시작하며, 측근들의 이탈도 시작된다. 흔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심하다. 박근혜 정권은 어떤 정권이었는가. 돌이켜 보자. 여당의 대표가 개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에게 사과해야 하는 정권이었다. 300명의 시민을 국가가 구해내지 못하는 최악의 참사를 겪고도 개각 한 번 없이, 총리조차 유임시켰던 정권이었다. 대통령의 발언 하나에 개성공단이라는 거대한 상징이 문을 닫아야 하던 정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총선에선 참패했으며,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의 폭로도 계속되고 있다. 당내에서도 대통령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조차 대통령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지지율은 20%대로 크게 떨어졌다. 보수 지지층의 이탈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직접적으로 ‘탄핵’ 언급까지 나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두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런 정도의 사건이 서구에서 일어났다면 어떤 대통령도, 어떤 내각도 사임할 일”이라며, “이런 야만적 불법행위와 권력남용을 자행하는 현 정부와 대통령은 탄핵대상”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까지 참석하는 서울특별시장이 직접 ‘탄핵’을 언급한 것이다. 어쩌면 단발적인 사건일 수 있지만, 어쩌면 거대한 논의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이다. 당장 주변에서도 ‘탄핵’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 정권 아래에서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3년 반이라는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다. 정권과 직·간접적으로 이어진 그간의 일들을 떠올려 보자.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만 적어봐도 한참이나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건들이, 민주주의가 제시하고 있는 원칙에 위배되는 방식으로 벌어졌다. 법치주의. 삼권분립. 영장주의.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등. 수많은 민주주의적 원칙과 헌법적 가치가 파괴되고 무시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지점이 있다. 이 수많은 사건들이, 명시적으로 법률을 어기지 않은 채 벌어졌다는 것이다.(관련기사 : '합법'을 악용하는 박근혜 정부)

대표적으로 몇 가지 사건만 살펴보자.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은 어떨까. 법무부의 제청으로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판결했다. 정당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정당의 해산은 사회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은, 사건의 핵심인 이석기 전 의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 이루어졌다. 판결 자체도 졸속이었다. 최종변론을 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제출한 증거를 모두 검토했다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시점에 판결이 나왔다.

정당이 빈약한 근거로 해산됐다는 사실 자체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헌법재판관의 구성부터가 문제였다. 헌법재판관 9인 중 3인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3인은 대법원장이 임명하고, 나머지 3인은 국회에서 임명한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국회 선출 3인은 통상 여당 1명, 야당 1명, 합의 1명으로 결정된다. 정권에 가까운 인사가 7인 이상을 점유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뭐 어떤가. 이 모든 일들은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아래서 결정되었다. 정부가 정당의 해산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권을 가진다는 것, 정권과 가까운 인사가 헌법재판관의 대부분을 맡게 된다는 것, 모두 헌법과 법률에 적시되어 있는 절차다.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에서 정당민주주의의 원칙, 삼권분립의 원칙 등 수많은 ‘원칙’이 사라졌지만, 누구도 법을 어기지 않았다. 우리의 체제는 이 모든 것을 용인하고 있다.

한 가지 사례만 더 살펴보자. 국회법 파동과 유승민 원내대표 축출 사건은 어떨까. 여야의 합의 하에 국회법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고, 합의를 이끌어낸 유승민 원내대표를 지목해 “투표로 심판해 달라”고 주문했다.

결국 새누리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권고했고, 유 원내대표는 이를 수용해 물러났다. 그리고 그는 지난 4.13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고, 결국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배신의 정치”라는 말이 유령처럼 떠돌았다. 대통령이 자당의 원내대표를 축출한 것이나 다름없는 사건이었다. 국회에 대한 월권행위였다. 삼권분립의 원칙과, 정당민주주의는 다시 한 번 실종됐다.

하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권리다. 대통령은 이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무어라 발언하든, 그것을 규제할 수 있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의원총회’라는 의사결정 기구를 통해 원내대표의 사퇴를 권고했으며, 유승민 원내대표는 그것을 따랐을 뿐이었다.

원칙은 다시 한 번 파괴되었지만 누구도 그것으로 인해 실질적인 처벌을 받진 않았다. 원칙이 파괴되었지만 사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듯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민중의소리

물론 정당의 해산 자체가 잘못됐다거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자체가 문제라는 주장은 아니다. 법원은 민주주의 사회 존립에 위협이 되는 세력을 정당한 절차를 통해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 유지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부는, 그 자체로 필요성을 잃는다. 거부권 행사 역시 마찬가지다. 거부권은 대통령중심제 사회에서, 대통령이 갖게 되는 권한의 하나다. ‘대통령’과 ‘국회’라는 두 개의 의사결정기구가 서로 견제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정당한 제도가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 해산권은 상대 정파를 탄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고, 거부권은 당내 반대 세력을 숙청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떤 제도적 제재도 없었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이 정당한 제도를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용하는 데, 어떤 법적 제한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헌법재판소라는 제도적 장치는 정권의 입맛에 맞게 변질되었고, 정당이라는 장치는 애초에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었다. 단 한 사람의 독주를, 누구도 제지할 수 없다.

국가기구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알 때, 과연 그것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

괴벨스의 말을, 이 시대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정권은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대통령제의 시스템이 어디까지 달려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극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원칙이 파괴된 법치주의자의 시대다. 제도가 폭력을 용인하는 시대다. 모두가 서서히 망가지고 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시대다.

요제프 괴벨스

‘만(滿)’의 시대

시대가 차오르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시스템은 이제 지난 3년 반을 통해, 그 끝을 보여주며 차오르고 있다. 여기는 극단이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모든 것이 차오른 극단이다. ‘만(滿)’의 시대다. 모든 것이 차오른 시대다.

하지만, 차오르면 기울기 마련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만(滿)’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만(晩)’의 시대이기도 하다. 극단을 경험한 우리는 이 극단을 넘어, 저무는 시대의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우리 모두는 시대가 차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대통령에게 정책 건의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장관을 보고 있으며, 기자회견장이 되어버린 국무회의를 보고 있다. 끝없이 터져나오는 비리에도, 대통령의 비호 아래 버티고 있는 수석을 보고 있다. 언론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도 여당의 대표가 된 친박계 정무수석을 보고 있으며, 대통령의 측근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현실을 보고 있다.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지지율은, 우리 모두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콘크리트 지지율’이라 불리던 선은 이미 무너졌으며, 우리는 극단의 시대에 대한 절망을 표출하고 있다. 이 체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나타나고 있으며, 대통령 한 사람의 심기에 모든 것이 걸려 있는 세상을 지겨워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들의 생각이 이렇다면, 그 뜻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민의가 모여 충돌하고 합의하다 결국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곳이 정치, 곧 ‘민의의 전당’이 아니던가. 정치에게는 이 차오르는 ‘만(滿)’의 시대를, 저물어가는 ‘만(晩)’의 시대를, 새로운 시대로 바꾸어야 할 의무가 있다.

서울특별시장에게서 ‘탄핵’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개헌’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되고 있었다. 탄핵과 개헌을 포함한 전방위적 정치개혁 논의의 필요성이 떠오르고 있다.

물론 이것은 “반드시 탄핵을 해야 한다”거나, “반드시 개헌을 해야 한다”는 류의 주장은 아니다. 이제 논의를 시작해 보자는 것일 뿐이다.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사실이 있어야 한다. 이 사실을 기반으로 국회의원의 과반수가 탄핵소추안을 발의해야 하고, 이 탄핵소추안을 국회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내리면, 대통령이 탄핵된다.

개헌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과반수가 개헌안을 발의해야 하고, 이 개헌안을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국민투표까지 거쳐 동의를 얻어내야만 개헌을 할 수 있다.

어려운 일이다. 현실 가능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국회의원 3분의 2는 20대 국회 기준으로 200명이며, 현재 ’야당’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의원은 모두 171명이다. 3분의 2를 맞추기 위해선 새누리당 의원 29명의 영입이 필요하다.

이런 현실적 어려움 외에도, 논의 과정에서 애초에 국민들이 원했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음이 드러날 수도 있다. 체제의 변화는 언제나 반동에 부딪히기 마련이며, 익숙함과 권위를 향한 갈망이 이 논의를 무산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떤가. 단순히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 뿐이다. 그 과정에서 무너질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으며, 또 시간이 흐르며 유야무야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순히 논의를 시작하는 데 대해서 그런 많은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정당 안에 정치개혁 논의를 위한 기구를 만들고, 그 기구에 힘을 실어주는 일. 가감 없이 모든 주장을 제시하는 일. 그 과정에서 최선의 대안을 찾아보는 일. 수많은 장애물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 지금 이 시점에서, 정치가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이다.

차오르는 만(滿)의 시대, 그리고 저무는 만(晩)의 시대. 끝까지 차올라 이제 저무는 일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정치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정치가 져야 할 의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대에 오히려 다시 정치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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