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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후원모금 광고가 불편합니다"

  • 입력 2016.10.14 11:42
  • 수정 2016.10.14 11:43
  • 기자명 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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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NGO에서 제작한 후원모금 광고 배너 이미지

며칠 전, 모 온라인 언론사 페이지에 걸린 후원모금 광고배너를 보게 됐습니다. 국내의 한 대형 NGO가 <10.16 세계 식량의 날>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캠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는 이 광고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평소에도 늘 생각해 오던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분들과 의견을 나눠보고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1. 광고 속 아동의 권리,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일단 저 광고 속 아동의 사진이 언제 어디서 찍혔는지, 본인 또는 부모님에게 이와 같은 형태와 내용의 모금을 위해 사진을 사용하겠다는 초상권 사용 동의를 받았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만약 동의를 받지 않았다고 전제했을 때 아동과 부모님이 이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면 과연 자녀의 사진이 이렇게 사용 되는 것에 대해서 동의할 수 있을까요? 식량난으로 기아에 시달리는 아동들을 돕기 위한 모금 광고라는 선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아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요?

한 아동의 인격과 권리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더 많은 아동들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요? NGO의 모금 홍보는 어제오늘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사용되는 사진인 만큼,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촬영 단계에서부터 초상권자 또는 보호자에게 사용 목적에 대한 동의를 받고 아동 인권보호 또는 미디어 가이드라인에 따른 원칙과 절차를 지켜 촬영을 진행해야 합니다. 또, 사진을 사용할 시에는 촬영 일시, 장소, 동의 여부 등에 대한 정보를 밝히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실무자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2. 모금 광고가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편견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언론사 웹페이지 광고에 등장하는 겁에 질린 흑인 아동(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프리카 국가 출신 아동이라고 생각하는) 사진이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많은 사람들은 그 지역 대부분의 아동들이 사진과 같이 기아로 굶주리고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될 때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일반화와 편견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사람들의 돕고자 하는 마음은 소중한 것이나 아프리카를 '항상 도움이 필요한 무능력한 곳'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발생되는 여러 부작용도 적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식량이 부족한 지역의 객관적인 데이터, 예를 들어 필요한 식량의 양과 공급되고 있는 양의 차이를 표시해 주거나, 식량 부족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땅이나 곡식 상태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등 다른 이미지 또는 대안적인 방법을 통해서도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후원을 요청하는 자극적인 방식

'불쌍해 보이는' 아동의 사진과 함께 하단에 표기된 "오늘 [점심 포기]를 약속합니다"라는 문구는 이 광고를 보는 일반인, 잠재 후원자의 측은한 마음을 이용하여 포기(기부)를 감정적으로 강요하는 폭력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이것은 마치 내가 한 끼를 포기하지 않으면 그 대가로 아동들이 굶게 되고 그것이 내 책임이 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눔을 위해서 내가 꼭 무엇을 포기해야만, 즉 내가 포기한 것을 사용해서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오늘 [관심/기부/나눔]을 약속합니다"와 같이 보다 사람들의 공감과 자발성에 기초하여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순화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4. 빈곤과 기아에 대한 단편적인 접근

"일상 속 기아체험"이라는 문구는, 오랜 기간 동안 굶주리며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기아'에 대한 인식을 협소하게 만듭니다. 식량이 풍족한 나라에서 한 끼를 굶는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배고픔 체험'을 하는 방식으론 '기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으며, 이 같은 단편적인 체험은 지속적인 실천을 이끌어내기 어렵습니다. 즉, 아픔에 대한 진정한 공감대 확산과 동참이 아닌 감정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회성 참여에 그치기 쉽다는 뜻입니다. 결국, 우리의 피상적 '체험'은 오히려 서로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안타깝지만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로 느껴지게 해 오히려 이 사안에 대한 무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한국에서 기아를 체험한다는 표현이나 접근 방식보다는, 굶주림과 기아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여러 환경과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배움의 기회를 확대해야 합니다.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와 공감이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글은 특정 NGO의 광고를 비판하기 위한 목적의 글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사실 무척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고 제가 너무 예민하거나, 또 잘못 이해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개발협력 업계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저는 여러 선배 NGO 실무자, 활동가 분들께서 오랜 시간 얼마나 많은 곳에서 사람들을 살리고 돕는 귀한 일을 해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앞서서 이 일을 해오신 분들의 노력과 헌신을 늘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이런 귀한 일이 더 발전하고 지속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모금 광고 중 일부는 실적과 모금액을 높여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원칙 및 핵심가치와 상충되거나 모순되는 점이 있더라도 목적에 의해 쉽게 정당화, 합리화되곤 합니다. 더 자극적인 내용을 통해 경쟁하듯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모금 방식이 사람들을 점차 감정적으로 지치게 하고 나아가 빈곤과 기아를 돕기 위한 모금 참여자들이 마음의 문을 닫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누가 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까요? 변화의 주체는 결국 현재 여러 NGO에서 일하고 계시는 홍보, 모금 담당자 및 의사 결정자분들과 각 NGO를 후원하는 후원자 한 분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면서 단계에 맞게 풀어나갈 때 모금을 위한 광고의 방식이 개선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일이 너무나 중요한 이유는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실존하고, 모금을 통한 후원은 그런 이들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 살리는 중요한 일이기에 과정 과정마다 더 깊은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더 제대로, 그리고 오랫동안, 이 의미 있는 일을 지속해 갈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제 짧은 생각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셨거나 언짢은 분이 계시다면 미리 양해를 구하고,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관련된 내용과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은 언제든 의견 개진을 부탁드립니다. 함께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 글이 더욱 건강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모금을 진행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원문 : 기린님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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