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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을 악용하는 박근혜 정부

  • 입력 2016.10.04 11:59
  • 기자명 비더슈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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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이후 집권여당 대표가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진행했던 단식이 일주일 만에 종료됐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사퇴하지 않았으며 이정현 대표의 리더십은 흔들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가 결의한 김재수 장관 해임안을 거부했다.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 논란이 일고 있다. 검경이 신청한 부검 영장을 법원이 조건부로 발부했다. 한때 병원 영안실 앞까지 경찰이 진을 쳤다.

미르재단-K 스포츠재단의 비리 의혹이 최순실 비선 논란으로 확장되고 있다. 창조경제 사업 전체가 거대한 비리 구조였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국방부는 사드 배치 후보지를 변경해 성주의 한 골프장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했다. 성주군과 인근 지역 김천시의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성주를 지역구로 하는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은 사드 반대 세력을 좌파 종북 세력으로 규정해 논란이 됐다.

수많은 사건이 뉴스를 뒤덮고 있다. 사실 요즈음만 그런 것도 아니다. 박근혜 정권 수립 후 조용했던 날은 많지 않았다.

취임 초 인선 논란부터 철도 민영화 논란, 윤창중 대변인 성추행, 통합진보당 해산, 역사교과서 국정화, 기초노령연금 공약파기, 누리과정 공약파기, 개성공단 폐쇄, 담뱃세 인상, 국가정보원 댓글 공작, 국가정보원 간첩 조작,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산케이신문 기자 고소, 총리 인선 실패와 정홍원 총리 유임, 메르스, 국회법 사건, 정윤회 문건 파동과 비선 실세 의혹, 성완종 게이트, 카카오톡 사찰, 스마트폰 해킹 사건, 국가정보원 과장 의문의 자살, 테러방지법과 필리버스터, 한일위안부합의, 민중총궐기 과잉진압, 그리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세월호 참사까지.

수많은 사건이 지난 3년 반의 시간을 장악하고 있다. 잊을 수 없는, 거대한 사건들이 지난 시간을 점령하고 있었다. 마치 슬픔과 분노의 거대한 연쇄고리 같은 나날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 사건들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각해 보자. 이 수많은 사건 가운데, 과연 ‘불법적인 것’은 얼마나 되는가?

물론, 불법 행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개성공단 폐쇄와 같은 일은 명백한 불법 행위였다. 정부가 나서 사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한 행위다. 개성공단의 가동을 중지하려면 통일부 장관의 요청으로 한 청문을 통과하거나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긴급명령권을 발동해야 한다. 정부는 이 중 어떠한 조치도 실행하지 않았다. 명백한 불법행위다.

민중총궐기 과잉진압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스스로 정한 지침을 수시로 위반하며 시위대를 진압했다. 사람에게 물대포를 직사 살수하는 건 위법이다. 차 벽을 치고 시민의 출입을 통제한 것, 역시 위법이다.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은 국회법 위반이다. 정의화 의장은 정부와 협의해 국가비상사태라며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지만, 정작 정부는 국가비상사태에 맞는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 따라 국가비상사태에 의무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는 비상근무령조차 없었다.

박원석 전 의원이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발언을 마친 후 동료 의원들에게 격려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 밖의 일들은 법의 울타리를 넘지 않는다.

수많은 인선 논란이 있었지만, 정부는 이들을 합법적으로 임용했다. 국무위원의 경우 청문만 거치면 국회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임명을 단행할 수 있다.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었다. 국무총리의 경우 모두 청문과 국회의 동의 절차를 밟았다. 야당이 반대했을지라도 법적으론 문제가 없었다.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은 어땠을까.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정당 해산을 청구할 수 있다. 헌법에 명시된 권한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심리해 통합진보당이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해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정당을 해산시켰다. 법적 문제는 없었다.

헌법재판관의 여당 편향에 대한 비판도 그렇다. 대통령은 재판관 9명 중 3명을 임명할 수 있다. 다른 3명은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지명한다. 그리고 나머지 3명은 국회에서 임명하지만, 여당에서 1명, 야당에서 1명, 여야 합의 1명으로 정착돼있다. 여당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이는 헌법에 적시된 정당한 절차다. 그리고 이에 따라 판결이 내려졌다. 누구도 법을 어기지 않았다.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명령 이후 주요 언론 보도

기초노령연금 공약파기, 누리과정 예산안 사건 등도 마찬가지다. 선거 공약은 최대한 지켜져야 하는 게 맞지만,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경되거나 파기될 수 있다. 파기 과정에서 민주적인 합의의 부재는 분명한 문제이지만, 어떤 법률도 그 민주적 합의를 강제하고 있지 않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건은 어떨까? 국가 행정부는 국민의 교육을 담당한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다. 역사교육을 어떻게 진행할지는 행정부가 결정하는 일이다. 대통령의 권한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역사만이 교육되리라는 사실은 결코 부정할 수 없지만, 어떤 법도 이를 규제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국회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어땠을까? 대통령은 양당이 합의한 국회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회를 노골적으로 모욕했다. 자당의 원내대표를 향해선 “투표로 심판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삼권분립의 원칙을 위반한 행위지만, 대통령의 거부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였다. 그리고 대통령이 국회를 비판하는 것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이 언론보도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하지만 그를 법적으로 처벌할 순 없다. 그는 그 직후 당 대표 선거에 나서 당선됐으며, 지금까지 직을 이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

수많은 일이 그랬다. 많은 일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졌다. 그렇기에 누구도 정권의 폭주에 제재를 가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거부했다.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회의 해임건의안을 반드시 받아들일 의무가 없는 사안이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의 해임건의안 거부는 합법이다.

백남기 씨에 대한 부검영장 청구는 어떤가. 백남기 씨는 경찰의 명백한 과잉진압 때문에 쓰러졌고 317일 입원 끝에 숨을 거뒀다. 이런 상황에서 가해자인 경찰이 피해자의 시신을 부검하겠다는 것은 도의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검경은 법적인 절차를 통해 부검 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조건을 달아 발부했다. 경찰이 시신을 부검한다고 해도 법원이 명시한 조건만 충족시키면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경찰이 백남기 농민 장례식이 열린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을 봉쇄하고 있다.

수많은 비리 의혹에도 끝끝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은 어떨까? 우병우 수석은 이제까지 아무런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 그가 앉아있는 자리가 정부인사를 검증하고 사정 정국을 지휘하는 자리라는 것도 도의적인 판단에는 몰라도 법적으론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비선 실세 의혹도 마찬가지다. 국회의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 공식적인 국무위원과 달리 비선 실세는 아무런 검증 작업을 거치지 않고 정국을 휘두른다. 이는 민주주의적 국가운영원리에 배치되는 일이다. 하지만 비선 실세가 있다고 해서 그 사실만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박근혜 정권 아래 수많은 불법적인 일들이 자행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합법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오히려 정국을 뒤흔들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무너뜨린 일들은 ‘합법적인’ 일이었다.

정권의 폭주는 불법이 아니다. 오히려 ‘합법의 극단’이다. 이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지금의 체제가 나아갈 수 있는 극단의 모습이다. 그 경계의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수많은 일이 불법으로 인해 벌어졌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법체계만으로도 이들을 처벌할 수 있고, 다시 그 법체계를 복구할 수 있다. 명확한 처벌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누군가가 권력으로 그 불법을 감추고 있는 거라면 선거로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러면 누가 불법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진 절차에 따라 그들을 처벌하면 된다. 어려울 것은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합법의 극단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문제는 어려워진다. 대통령의 극단적인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비민주적인 국정운영을 없애고,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선 법적인 처벌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조금만 염치없어지면 이 모든 일을 아무렇지 않게 벌일 수 있는 세상에서는, 그리고 그것에 대한 명백한 규제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처벌하고 정권을 바꾼다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범법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법치주의자들이다. 법을 지나치게 잘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들의 삶은 도덕적이진 않을지라도 합법적이다. 단순히 법정의 망치만으로 그 모든 것을 막아 세울 수는 없다.

세상은 선거 한 번으로 바뀌지 않는다. 여소야대 국회가 열리고 심지어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그 ‘합법’의 유혹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별반 다르지 않다.

때문에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는 것은 중요하다. 상식적인 정치관을 가진 시민이 유권자의 다수를 점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국가가 무리 없이 운영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국가는 언제나 최악에 대응해야 한다. 200년 넘게 민주주의 기틀을 잡아온 미국도 지금은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일삼는 도널드 트럼프를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고 있다. 최악의 지도자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곁에 다가온다.

최악의 지도자가 등장했을 때 최소한의 피해만 끼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다. 제도의 힘이다. 그것이 이 ‘합법의 극단’을 보고 있는 우리가 논의해야 할 핵심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선택을 기반으로 한다. 고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자가 누구든 국가의 수반이 될 수 있다. 그가 파시스트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민중은 때때로 역사에 오점을 남긴다. 히틀러는 국민의 선거로 선출된 총통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더라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함부로 손댈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누구도 원칙을 파괴할 수 없게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당장 선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논의다.

우리에게는 파시스트를 막아 세울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사회에서 독재의 출현을 제도만으로 막을 순 없다. 어찌 됐든 제도는 변할 수 있다. 그것이 모든 사회 구성원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오직 한 사람의 독재자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제도는 그것을 판단하지 못한다.

하지만 ‘법치주의자의 사회’에서는 제도를 손대지 않고도 독재자가 출현할 수 있다. 그것은 총칼로 무장한 과거의 독재와는 다르다. 그들은 법전을 들고 나아간다. 법전만으로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위협한다. 우리의 제도는 법전을 든 악마의 독재를 용인한다. 우리는 바로 그것을 목도하고 있다.

물론, 민중은 언제나 최후의 보루가 돼준다. 하지만 말 그대로 최후의 보루이며 많은 경우 최후로 후퇴하기까지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때로는 그 보루로 후퇴하기 전에 모든 것이 끝나기도 했다. 히틀러는 연합군의 진격으로 인해 자살했으며 유신 정권은 측근의 총탄으로 무너졌다.

그 후퇴 전까지 우리가 붙들 수 있는 더 많은 보루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더 앞으로 진보해야 한다.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적 원칙에 따라 국가의 근본을 움직이는 것이 쉬운 일일 수는 없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는 이미 수많은 보루를 쌓아뒀으며, 그 축성이 오직 민중의 힘만으로 가능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오늘의 체제는 지금보다 더 근본적인 진보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진보를 정착시키는 제도의 힘이 필요하다.

그것이 ‘합법의 극단’을 달리고 있는 이 정권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교훈이다.

이 정권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이 정권이 임기를 끝마치고 나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야 할 것이다.

단순히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하거나 선거를 통해 누군가를 낙선시키는 일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시대의 극단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더 본질적인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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