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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의 일상화 : 권력은 주먹이 아니다

  • 입력 2016.09.30 11:40
  • 수정 2016.09.30 11:44
  • 기자명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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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진은 글 중의 특정 내용과 손톱만큼 관계가 있긴 하지만 뭐 그리 중요한 관계는 아닙니다.

치약에서 독성 물질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환불하고 회수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또한 정상적이지 못한 해프닝인데, 어떤 제품의 위험성 문제는 그렇게 쉽게 가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 이 문제를 얘기하려던 것은 아니니 대충 넘어가자. 대신 대중의 변덕에 의해 각종 사회적 기준이 흔들리는 것은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니고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불안/공포 마케팅은 의도적으로라도 억제되어야 한다는 점은 꼭 말해 두기로 하자.

하여간 그렇게 위험물질로 인식된 치약을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무더기로 선물한 주민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봤다. 쓰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제품을 선물로 준다? 도대체 이게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인가 싶어 아침부터 암울해졌다. 왜들 그러는 걸까?

권력 경험

권력을 쥐고 그걸 마구 휘두르는 건 매우 특이한 경험이며, 아주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일이다. 평생 남들을 지휘하는 입장에 서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극히 적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누군가에게 마음 내키는 대로 험한 소리를 하고 괴롭혀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느낌은 마치 자신이 매우 중요한 인물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유발하기도 한다.

대충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 같다(...)

제대로 된 권력은 결코 자의적으로 집행해서는 안된다. 정해진 룰이 있어야 하고, 룰 이전에도 그런 모든 권력행위에 대한 책임을 권력자 본인이 져야 한다. 그러므로 정당한 권력을 쥔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권력이라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 하며 결코 쓰고 싶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기 마련이고, 그게 정상이다.

그러나 평생 군 시절 육군 병장 계급장을 단 것 이외의 권력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주 조그마한 권력이라도 잡게 되면 난리가 난다. 드디어 권력을 빙자한 가학적 쾌감을 맛볼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알량한 권력을 잡았다는 기쁨 하나로 가학적으로 돌변해 사람들을 괴롭히지는 않는다.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의 경우 최소한 거기에 아주 작은 논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아파트 주민이 경비나 관리소장을 괴롭히는 경우에는 나름의 명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 명분은 바로 '진상의 일상화'라는 개념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진상의 일상화

현대 사회는 무수히 많은 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하나 사는 관계도 공급자와 소비자간의 계약행위고, 회사에서 직원을 고용하는 경우도 엄연한 '고용계약'에 따른 계약행위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 계약이 등등한 것이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어느 한 쪽이 권력을 갖고 다른 쪽이 그 권력에 예속된 상태에서 맺어지는 계약은 결코 동등할 수 없다. 이렇게 동등하지 못한 계약이 횡행하게 되면 자본주의 자체가 위험해진다. 구성원들이 체제에 동의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한말에서 일제를 거쳐 갑자기 근대적인 공화국 시스템을 맞이하게 된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아직도 '동등한 계약관계'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계약을 맺어 놓고도 항상 내가 속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상대를 의심하거나 불평하고, 규정 외의 방법으로 추가적인 혜택을 얻어 내고자 노력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자산인 '상호 신뢰'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소비자는 공급자를 의심하고 노동자는 사용자를 의심한다. 마찬가지로 공급자는 소비자를 경멸하며, 사용자는 노동자를 '틈만 나면 일을 소홀히 하려 하는 게으름뱅이'들로 간주한다.

그러다보니, 계약 외적인 방법들이 난무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진상'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나마 거래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 즉 물건을 구매했는데 불량품이 왔다거나 해서 클레임을 제기했는데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화가 나서 진상을 부리는 것은 양반이다.

그러나 진상은 이제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수준을 넘어섰다. 아예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은 거래 초기단계부터 진상을 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건 '나는 이렇게 진상을 부릴 줄 아는 소비자' 라는 점을 사전에 고지해 공급자로 하여금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강요하는(혹은 그렇다고 믿는) 기능을 하게 된다.

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 "너무 맛있어서, 먹다 보니 이런 비싼 고기는 내 분수에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환불해달라"며 반 넘게 먹던 고기를 들고 오는 진상 고객 ⓒJTBC

그러다 보니 진상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모든 거래에 선행되는 일반적인 행위가 되기 시작했다. 이를 나는 '진상의 일상화'라는 개념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그런 경우, 진상들은 "그렇게 진상을 부려야 '제대로 된 서비스'가 나온다"고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게 된다.

이건 경비원이나 관리소장에게 진상을 떠는 아파트 주민들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그렇게 해야 이 사람들이 게으름을 안 피우고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거나 인간은 채찍질을 가해 일깨워 줘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건 끊어져야만 할 악순환이다.

실수와 개선

애초에 실수는 이미 벌어졌다. 기업들이 고객은 왕이라고 외치기 시작했을 때부터. '고객은 왕'이라는 말은 리츠칼튼 호텔의 창업자 세자르 리츠가 한 말로, 그 의미는 우리가 보통 쓰는 의미와 사뭇 달랐다고 전해진다. 리츠가 실제로 상대하는 주 고객은 왕이나 귀족들이었고, 그는 그 말을 “왕처럼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은 그게 누구든 왕처럼 대접받아야 한다” 라는 의미로 썼다고 한다.

이런 호텔을 전세계 곳곳에 만드신 분이다.

이건 정상적인 계약을 강조하는 말이다. 비싼 가격에 서비스를 사는 사람에게는 최고 수준의 서비스가 가야 한다. 돈을 적게 내고 저렴하게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는 가격에 해당하는 서비스가 가면 된다. 이게 정상적인 계약관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들어온 '고객은 왕이다'는 말은 천원짜리 사탕을 하나 산 고객조차 매장에 드러누워 진상을 부리면 이런 저런 사은품을 받아가고 우쭈쭈 접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진상의 일상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크나큰 실수였다. 경쟁에서 앞서고자 하는 몇몇 기업들의 그릇된 마케팅이 상거래 질서 전반을 문란케 하고 말았던 것이다.

바로잡는 방법은 간단하다. 진상을 부려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추가적인 육체노동, 감정노동을 유발하는 소비자에게는 페널티를 물리면 된다. 물론 정당한 클레임, 즉 하자가 발생한 것에 대한 항의는 정상적인 절차에 입거한 처리를 해줘야 한다. 그러나 말도 안되는 불만은 단호히 거절해야 하며 정당한 업무 진행에 이의를 제기하고 진상을 부리는 하는 경우는 엄격하게 법적으로 조치하는 게 맞다는 얘기다.

일찍이 오은영 선생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SBS

이제는 그렇게 조치하는 기업들이 '소비자를 무시하는 악덕 기업'으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업 직원들, 종사자들을 존중하고 제대로 된 계약관계를 존중하는 좋은 기업으로 칭찬받아야 한다.

호텔 직원들이 “우리에게는 서비스를 거절할 권리가 있습니다” 라고 외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고, 항공기 승무원들이 무리하게 추가적인 서비스를 요구하는 승객들에게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건 친절의 문제가 아니다. 제한된 자원을 일상적으로 진상 부리는 고객들에게 우선 제공하다 보면 정중하고 합리적인 일반 고객들이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이는 용납되기 힘든 일이다.

실수가 벌어졌다면 개선해야 한다. 진상의 일상화를 차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상 고객들에게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이다.

마무리

아파트 주민들이,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르니 자신은 결코 먹거나 쓰지 않을 먹거리나 상품을 경비원이나 관리소장에게 줘버리는 것. 이건 인간으로서 용납하기 힘든 사악한 행동이다. 그런 행동의 배경에는 쥐꼬리만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한 쾌감, 거기에 진상을 부려야 일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유아기 수준의 잘못된 계약 개념 등이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우리 사회도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 70년이 넘어간다.

이제 권력은 멋대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과 룰에 의해 집행되어야 하는 힘이고, 권력자는 시스템에 의해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는 직책일 뿐이지 권력을 휘두르는 쾌감을 느끼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는 아니라는 점 정도에는 모두 동의를 할 때가 됐다.

또한 모든 거래는 정상적인 계약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계약은 양측이 동등해야 한다는 점 역시 동의가 필요하다. 누가 위에 있고 누가 아래에 있는게 아니며, 계약은 계약 조건에 의해 집행되어야 하지 진상을 부려서 조건을 바꿀 수 없다는 점도 함께 동의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 진상을 부려서 뭔가를 더 얻어가면 정중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가는 정의롭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건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문제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촛점은 하나로 맞출 수 있겠다.

정상적인 클레임과 항의가 아닌, 모든 '진상'들에게 페널티와 불이익을 가하라는 것이다. 기업 이미지에 손상이 올 것을 두려워한다고? 블랙 컨슈머 무서운 줄 모른다고? 오히려 진상들을 응징하는 기업에게 사회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이제 우리 수준이 그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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