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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숙 해임, 김용판 무죄 반발여론 어르기?

  • 입력 2014.02.07 13:40
  • 수정 2014.02.07 13:46
  • 기자명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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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여당과 청와대가 긴박하게 돌아갔다. 여수 기름유출 사고에 대한 국민 여론이 크게 악화된 상태에서 전날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의 망언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2월 6일 청와대-여당 바쁘게 돌아갔다

또 오후에는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결과 축소·은폐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예정돼 있었다. 청와대와 여당은 일찌감치 김 전 청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향후 국정원 대선개입 재판에 미칠 영향이 매우 클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2월 5일 새누리당 당정협의회에서 “GS칼텍스는 1차 피해자이고 어민은 2차 피해자”라는 윤진숙 장관의 황당한 발언이 나온 직후 정부를 질타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급기야 다음날 6일 심재철 최고위원의 입에서 “윤 장관이 적합한 인물인가 회의적이다”라는 얘기가 나오게 된다.

여당내에서 처음으로 ‘윤진숙 사퇴론’이 제기된 6일 오전 국회에서는 여수 기름유출 사건을 따지는 대정부질문이 열리고 있었다. 여기에서도 ‘윤진숙 해임’이 거론됐다.

‘윤진숙 망발’과 ‘김용판 선고공판’ 묘한 오버랩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답변차 나온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윤진숙 장관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해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정 총리는 ‘해임 건의 의사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박 의원의 질문에 대해 정 총리는 “앞으로 그런 일(윤진숙 망언) 없도록 하겠다”는 답변으로 맞섰다. 해임을 건의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6일 오후 2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향후 항배를 좌우할 김용판 전 청장에 대한 선고공판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결과는 청와대와 여당의 기대를 100% 충족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재판부가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축소·은폐하고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권은희 증언 내치고 김용판 주장 받아들인 재판부

이유는 증거 불충분. 재판부는 ‘공직선거법과 경찰공무원법 위반, 형법상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뒷받침할 뚜렷한 증거가 없으며, 권은희 전 수사과장의 진술에 대해서도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권은희 전 수사과장의 내부 고발성 진술에 대해서는 신빙성을 부정한 반면, “투명하고 공정한 수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해온 김 전 청장의 입장에 손을 들어 준 셈이다.

판결문은 검찰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검찰이 유력한 증거로 내세운 ‘권은희 진술’에 대해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반면, “검찰이 짜깁기를 해서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김용판의 주장’은 그대로 인정했으니 말이다.

‘김용판 무죄’ 여론 달구자 정 총리 ‘해임 불가’에서 '건의'로 말 바꿔

6일 오후 3시. ‘김용판 무죄’ 소식은 순식간에 모든 언론매체의 메인을 장식하며 포털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네티즌들의 탄성이 이어지고 민주당은 아연실색했다. 12.19 부정선거를 반드시 단죄해야 한다고 믿어온 많은 시민들은 낭패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용판 무죄’ 소식이 세상을 달구고 있을 그 시간, 국회에서는 대정부질문이 속개됐다. 오후 5시 새누리당 김도읍 의원이 정홍원 총리에게 “윤진숙 해임을 건의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앞으로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며 해임 건의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던 정 총리에게서 확실한 태도 변화가 읽힌 게 바로 이때다. 김 의원의 질문에 “깊이 고민해서 오늘 중으로 결론을 내겠다”고 답한 것이다.

서너 시간 만에 태도를 180도 바꾼 정 총리. 뭔가 있었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윤진숙 해임’에 대한 어떤 언질을 하지 않았다면 국무총리가 이렇게 순간적으로 말을 바꿀 수는 없다.

'무죄 판결' 직후 '모래 속 진주' 포기 언질 있었나

정 총리가 “오늘 중 결론 내겠다”고 답한 지 두 시간 뒤 공영방송 현직 앵커였다가 ‘청와대의 부름’을 받아 졸지에 대변인이 된 민경욱씨가 뭔가 발표할 게 있다며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나섰다. 민 대변인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박 대통령이 윤진숙 장관을 해임 조치했다”는 것이었다.

청와대와 여당은 “윤 장관의 말이나 이 말로 인한 논란에 대한 대응 태도가 임계치를 넘었기 때문”에 해임이 불가피 했다고 밝혔다. ‘윤진숙 망언’이 민심 악화에 불을 지피자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는 얘기다.

물론 그런 점도 해임 조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뿐일까. 인사에 관해서는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불통과 독선이 강한 게 ‘박근혜 스타일’ 아닌가.

인사청문회 당시 윤 장관에 대한 반대 여론이 비등할 때도 “모래 속에서 발견한 진주” “해당 분야에 일가견 있는 드문 여성 인재”라고 추켜세우며 끝까지 임명을 고집해 왔던 박 대통령이다. 단순한 이유로 해임시켰을 리 없다.

‘윤진숙 해임’은 ‘김용판 무죄’ 반발여론 어르기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얘기다. ‘윤진숙 전격 해임’과 오버랩되는 게 바로 ‘김용판 무죄 판결’이다. 6일 하루 동안 청와대와 여당의 움직임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윤진숙 해임’이 ‘김용판 무죄판결’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직감할 수 있다.

‘김용판 무죄’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에게는 호재일 테지만, 국민 정서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판결이다. 부정선거 의혹투성이인 청와대-여당의 손을 들어준 듯한 판결. 이 때문에 여론이 들끓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때 맞춰 나온 게 ‘윤진숙 전격 해임’ 조치다. ‘김용판 무죄’가 국민 여론을 크게 자극할 것을 우려한 청와대가 ‘윤진숙 해임’ 카드를 꺼내 성난 여론을 어르려 한 게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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