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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우리 안에 있다

  • 입력 2016.09.29 13:35
  • 수정 2016.09.29 13:36
  • 기자명 309동1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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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강남구 모 아파트 관리소장의 아들이라고 밝힌 이가, 지금 거실에 치약이 가득하다는 내용의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아버지가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특정 브랜드의 치약 선물을 잔뜩 받아왔다고 했다. 그 치약에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들어 있다는 기사가 나간 지 하루만의 일이다. 평소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음식을 두고 가던 그들이, 이번에는 치약을 두고 갔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그 아파트의 일부 입주민들이 어떤 마음으로 치약을 선물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대신 버려달라는 의미였을까, 아니면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베푸는 자선쯤이었을까. 어느 편이든 나는 그들에게 분노한다.

영화 <부산행>을 보면서 나는 공유와 마동석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보다는 김의성과, 그의 뒤에서 “빨리 건너편 열차로 가요.”하고 작게 힘주어 외치는 이들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왜냐하면, 그곳이 자신을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믿는 이들이 가장 자주 서게 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김의성과 그 주변인들에 이입해 영화를 봤다. 그 말을 하자, 주변에서는 “너 같은 사람이 어디 있어! 이런 악인 같으니!”하는 장난스러운 반응이 돌아왔다.

모두가 그를 악인으로 규정했지만, 우리는 그와 얼마나 다를까? ⓒNEW

내가 김의성에 이입한 다른 이유는, 영화와 같은 재난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김의성과 그 주변인에게 누구보다도 분노했다. 그러면서 그 분노를 남이 아닌 나에게 돌리려고 애썼다.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김의성의 뒤에 섰을 테니. 그동안 나는 여러 차례 그의 뒤에 서 왔고, 그러면서 이쪽이 정의이고 상식이라고 그렇게 합리화 해왔다. 그래서 <부산행>에 대한 철지난 나의 감상은 "잘못했습니다"였다.

나는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치약을 주고 간 이들이, <부산행>을 보며 김의성의 악행에 누구보다 분노했을 것으로 믿는다. 그들은 사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내 주변의 흔한 사람들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사실 모두 여기저기에 별 쓸모도 없는 '치약'을 선물하면서 산다. 그러면서 생색도 낸다.

나의 아내도 ‘치약 선물’을 제의 받은 일이 있다. 어느 아이 엄마가 “우리 아이는 독일 분유가 아니면 잘 안 먹어서 국산 분유 받은 걸 개밥으로 주고 있어요. 혹시 먹이려면 가져가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날 아내는 집에 와서 한동안 화를 가라앉히지 못 했고, 전해들은 나도 마음이 아팠다. 자신의 아이가 특이체질인 것이야 그들의 사정이지만, 개밥 운운하며 선물하겠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도 치약을 선물하는 입주민들의 감정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상대방에 대한 동정, 하지만 거기에는 ‘공감’이 수반되지 않았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한 번이라도 사유해 보았다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다.

앞서 말한 아파트 관리소장 아들의 이야기는 이제 ‘기-승-전’이다. ‘결’은 치약을 아무 마트에서나 환불/반품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이 “내 치약을 다시 돌려달라.”고 찾아오는 데서 마무리 될 것 같다. 설마 싶지만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는 상대방의 처지에서 ‘공감’하는 법을 이미 잊었다. 그 누구도 ‘내 안의 김의성’을 고발하거나 고백하지 않고, 공유와 마동석의 희생에만 열광한다. ‘살균 치약’과 ‘개밥 분유’는 우리 주변에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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