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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길 원하는가

  • 입력 2016.09.28 10:43
  • 수정 2016.09.28 11:56
  • 기자명 임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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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트럼프를 막을 후보다

도널드 트럼프는 악질적인 포퓰리스트이며 재앙이다. 그를 막아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힐러리 클린턴이 다음 미국 대통령이 되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어떤 사람들은 힐러리 클린턴 역시 역대 비호감도가 가장 높은 후보 중 하나이며 이번 대선은 최악과 최악의 대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설령 클린턴이 그토록 나쁜 후보라 해도 결코 트럼프와 같지는 않다.

미국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그녀는 트럼프를 막을 후보, 그 이상이다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이 그리 나쁜 후보인 것 같지도 않다. 내 말은 설득력이 없을 테니 슬그머니 타인의 권위에 의지해보자면뉴욕타임스는 오바마와 클린턴이 맞붙었던 2008년 대선 경선 때에 이어 샌더스와 겨룬 이번 경선에서도 클린턴을 지지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도널드 트럼프와 맞붙은 대선 본선에서도 클린턴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미국 대통령으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다.”, 뉴스페퍼민트

많은 언론인이 세계 최고의 신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뉴욕타임스가 이토록 일관된 지지를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지난 40여 년의 공직 생활을 통해 증명된 클린턴의 독보적인 역량 때문이다. 그는 복지에서 안보, 외교에 이르기까지 정치가 포괄하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제로 작동하는 정책을 만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강력한 추진력을 가짐과 동시에 초당적인 협력을 끌어내는 협상력까지 갖추고 있다. 이런 정치인은 쉬이 만나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클린턴을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세간의 인식이 상당히왜곡되었다고 말한다. 동감한다. 물론 40여 년의 공직 생활 동안 정책적인 패착도 있었고 분명한 실수도 있었지만, 비판의 칼날이 유독그녀에게만 거세다는 감상을 지울 수 없다.

사람들은 힐러리 클린턴을 왜 그렇게 싫어할까?

힐러리 클린턴의 비호감 이미지는 연구대상이다. 슬레이트는 장문의 기사를 통해 힐러리 클린턴의 비호감 이미지가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파고들었지만, 사실 여러 가설이 존재할 뿐이다. 기사가 말하듯이끊임없이 해명하고 물리쳐도 클린턴을 둘러싼 각종스캔들은 잦아들 기미가 없다.” 대부분 거짓이거나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들은 힐러리 클린턴을 왜 그렇게 싫어할까? (1), 뉴스페퍼민트

사람들은 힐러리 클린턴을 왜 그렇게 싫어할까? (2), 뉴스페퍼민트

내 생각일 뿐이지만, 슬레이트가 지적하듯 젠더 문제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선출직도 아니면서 권력을 휘두르는 영부인,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정치적인 카드로 이용하는 비겁자, 권력에 집착하고 지나치게 냉철해 인간미 없는 여성 등 남성이라면 짊어지지 않아도 될 이미지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리천장은 여전히 있다

슬레이트의 기사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스탠포드대의 마리앤 쿠퍼는 클린턴이 일단 노골적으로 권력욕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가면 그녀에 대한 반감도 줄어들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이는 퓨 리서치 센터의 설문조사 결과도 어느 정도 뒷받침하는 가설인데 그녀가 상원의원이나 대통령 후보에 도전할 때는 비호감도가 높아졌다가도 실제로 의정 활동을 하는 중에나 국무장관을 지내던 시절에는 비호감도가 낮아졌습니다.

여성이 최초로 주류 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지만, 여성의 정치 참여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미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4%에 지나지 않는다. (2016, index.go.kr)

한국의 경우에는 수치가 더 낮아서 17.0%에 지나지 않는데(같은 자료),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차별 또한 심각하다. 새누리당의 최고위원이었던 김을동은 총선 여성 예비후보자들에게우리나라 정서에 여자가 너무 똑똑하게 굴면 밉상을 산다고 조언해 물의를 일으켰다. 같은 당 김무성 의원은 대표 시절 여성 정치인 확대를 위한 토론회에 참가해 여성 정치인의 수가 적은 것은 여성들 책임이며 떼쓰지 말고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이 좋은 김무성과 김을동(...)

힐러리 클린턴의 행보는 그 자체로 진보적이다

모든 진보적 변화는 벽에 가로막힌다. 기득권자들은 진보적 변화를 자신들의 권리가 부당하게 빼앗기는 것이라 여기곤 한다. 심지어 기득권자가 아닌 사람들도 기성 질서가 파괴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며 이에 반발하곤 한다.

영부인, 상원의원, 국무장관, 그리고 대통령 후보에 이르기까지 뚜벅뚜벅 전진하고 계단을 밟아 올라갔던 힐러리 클린턴의 행보는 사실 그 자체로 진보적이다. 거의 모든 사회 분야에 여전히 두껍게 자리 잡은 유리 천장을 하나하나 깨나가고 있다. 그래서 그의 행보가 마치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는 것처럼 느껴지고 질서가 파괴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보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문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일단 클린턴이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면 그에 대한 반발과 비호감도는 가라앉았다. 이건 클린턴 개인의 능력이 그만큼 출중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일단 진보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그것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으면 그에 대한 반발심도 옅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어느 쪽이든 여성 대통령 클린턴도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클린턴이 연설에서 말했듯 세상에서 가장 높은 유리천장이 일부나마 깨지게 되는 셈이다. 한 번 깨진 유리천장은 예전만큼 공고하진 않을 것이고 제 2, 3의 힐러리 클린턴들은 지금의 그녀처럼 날 선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은 결코 미국이란 하나의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태평양 너머 멀고 먼 땅에서 다음 대통령의 성별이 굳이 여성이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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