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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라인 넘었으니 죽어도 된다고?

  • 입력 2016.09.27 10:08
  • 수정 2016.09.27 10:29
  • 기자명 백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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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선생에 대한 추모를 '시체팔이'라 명명해 논란이 된 뉴데일리의 기고글. 유가족이 부검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의심스럽다는 내용의 이 글은, 뉴스타파가 공개한 사고 당시 영상을 두고 '빨간 우비를 입은 신원불명의 남성이 백남기 씨를 때렸다'고 단정하며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 미선이 효순이, 세월호, 그리고 백남기. 또. '시체팔이'가 시작됐다."고 했다.

이상한 말들이 나돈다. 그 죽음에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다. 야속할 만큼 잔인한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 내뱉는 독설들은 그 자체로 화가 나고 슬프지만, 이들이 지탱하고 있는 그 독설의 이유들이 내가 삶에서 늘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는 것들이라 나는 조금 더 화가 난다.

나는 규칙을 좋아하며 ‘정해지지 않은 것들’을 불안해하는 사람이다. 법적 용어로는 예견가능성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헌법을 공부하던 때가 즐거웠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고 충분히 합리적이었던 헌법이라는 규칙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이대로만 작용한다면 사람들 사이를 충분히 조정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나는 스스로를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위를 ‘승인된 폭력’으로 배웠다. 시위는 폭력적이며 불편을 끼치는 것이 맞다. 권력과 폭력을 독점한 국가로부터 대항하기 위해, 즉 시위는 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이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스스로의 민주성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그 정도의 폭력은 허용한다고 배웠다.

물론, 어떤 권리도 그렇지 않겠냐마는 한계는 있다. 그래서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배운 그 제한의 기준은 폴리스라인 따위가 아니었다. 시위대의 폭력이 사회의 평온을 현저히 해치고 주어진 권리 행사 범위를 넘어섰을 때는 제한이 가능했다. 그것은 폴리스라인 같이 자의적인 선 하나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합의되어온 과잉금지의 원칙이나 비례의 원칙 같은 헌법 규칙들에 의한 엄격한 심사에 따라 규정됐다. 선 하나가 아니라 그 선을 두고 둘러싼 양상과 내용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만 비로소 결론내려질 수 있는 내용이었다.

더군다나 그 시위의 일차적 불법 폭력은 바로 그 폴리스라인, 차벽에서부터 있었다. 경찰력은 시민들의 집회시위권을 온전히 보장하지 않았다. 되지도 않은 우려로 정당한 이유 없이 ‘사전 진압’을 실시했다. 명백한 권리 침해이자 공권력의 남용이었다. 그날은 죽창도 화염병도, 어떠한 인명살상 도구도 없었다. 그저 물병 몇 개와 얇은 밧줄 몇 개가 있었을 뿐이었다. 집회시위권을 과잉 제한하는 경찰력에 대한 법원의 불법 선언은 과거부터 있었다. 바뀌는 건 없었다. 이따금 불법을 피해 탈법을 찾아다닌 걸 조금 나아진 걸로 볼 수는 있겠다.

제1차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의 진압 장면. ⓒ민중의소리

그날 얇은 밧줄 몇 개로 차벽과 씨름하던 사람들은 캡사이신 섞은 물대포를 직사로 맞았다. 그 살인적인 물대포는 얇은 몸을 이끌고 나온 한 노인의 몸을 집중 사격했다. 쓰러진 지 한참이 지나서도 물줄기는 끊이지 않았다. 고작 얇은 줄로 차벽을 무너뜨리려 시도한 대가로 일년에 가까운 사투 끝에 죽음을 맞이했다. 물대포를 집중 사격해서 사람 하나를 죽일 정도로 중요한 것이 차벽 너머에 있었나? 시민들이 탈취를 시도할 만한 무기고라도 있었나? 아마 시민들을 적으로 규정한 어떤 존재들의 자존심은 있었을 거다.

그렇게까지 막아야 할 이유가 없는 선이었다. 무너지면 즉각적으로 도시가 위험에 빠질 만한 선이 아니었다. 그냥 임의대로 그은 선이었다. 여기까지가 너희들에게 허용된 범위라고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그어버린 선이었다. 넘을 시도를 했다고 그렇게 무자비하게 물대포를 쏘아댈 만큼 중요한 선이 아니었다.

그 선은 아무것도 아니다. 니들이 마음대로 그은 그 선을 넘으려 했다고 사람을 죽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헌법은 당신들에게 그 선을 지키라고 명하지 않았다. 헌법은 당신들에게 시민들의 집회시위권을 보장하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라고 명령했다. 그게 내가 배운 헌법의 규칙이다.

사람이 죽었다.

사람이 죽었다. 고작 그 선 하나 넘어서 자기 불만, 자기 처지 설명해 보려고 했던 사람이 죽었다. 한 사람은 죽었고, 내가 아는 수십의 사람은 자기 몇 달치 월급만큼의 벌금이 나왔다. 내가 배운 규칙은 이런 게 아니다. 내가 배운 규칙은 분명히 합리적인 내용이 있었다. 그 문자 그대로 살아서 시민을 괴롭히라고 규정된 게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나는 내가 보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며 합의된 가치와 규칙이지 문자 몇 개로 사람을 괴롭히고 그걸 근거랍시고 물대포를 쏘아대는 이상한 광경이 아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시민의 집회시위권과 공권력의 시위에 대한 제한을 적절하게 가르는 합리적인 기준이지 그깟 폴리스라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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