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과대평가된 수제노동(Hand-made)의 역사

  • 입력 2016.09.26 11:01
  • 수정 2020.12.19 20:31
  • 기자명 김바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은 노동의 가치가 굉장히 낮게 평가되는 나라다. 생산 업종도 그렇지만, 특히 서비스 업종은 지불하는 가치에 비해 고강도의 노동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서비스업에 있어서 유일하게 노동이 과대평가 되는 지점이 있는데, 바로 '수제' 혹은 '핸드메이드'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이 단어가 어찌나 마법 같은지 앞에 이 단어만 붙으면 사람들이 희한하게도 상대적으로 비싸거나 질이 떨어지는 품질을 쉽게 납득해 버린다.

실제로 주변에 수제, 핸드라는 수식어가 붙은 상품들을 쭈욱 돌이켜 생각해보라. 정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느냐 물을 때 확실히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경향이 심각해지다 보니 수제와 핸드 메이드를 붙이는 게 아주 일상화되었다. 크래프트 맥주의 경우 사람들이 수제 맥주라 부르는데 그 맥주들 중에서 실제로 사람의 손이 투입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이게 더 나아가선 원래 손으로 만드는 것도 다 수제라고 앞에 수식어를 붙여댄다. 케이크를 두고 수제 케이크란다. 케이크는 손으로 만드는 거다. 프랜차이즈 빵집의 케이크도 시트는 공장에서 구워오지만 마지막 과정은 손으로 한다. 수제 피자란 것도 있다. 원래 피자는 손으로 만든다. 프랜차이즈 피자 전문점도 피자는 손으로 만든다. 기계로 만드는 피자는 냉동 피자 정도밖에 없다. 심지어는 꽃다발을 '핸드 타이드'라 표현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언제는 꽃다발을 기계가 묶어내던가?

핸드 메이드에 대한 사람들의 고평가는 역사가 꽤나 길다. 이는 산업혁명과 초기 대량생산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대한 아주 훌륭한 설명을 한 이 분야의 개척자이자 선구자는 베블런 효과로 알려진 소스타인 베블런이다. 베블런은 그의 대표 저작이라 할 수 있는 [유한 계급론]에서 장인의 노동에 대한 유한계급의 소비성향을 꼬집어 이야기했다.

대량생산이 시작되기 전에는 모든 공업이 다 수공업이었으므로 모든 게 핸드 메이드였다. 이러다보니 생산 가능한 수공품은 그 공급 자체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제법 가격이 비쌌다. 그래서 이런 건 소비가 가능하긴 했지만 제법 까다로운 제품이었다.

그러다 대량생산체제를 맞으면서 대부분의 수공업자들은 쫄딱 망하게 생겼다. 대량생산으로 인해 표준화된 품질로 저렴하게 공급이 되니 수공업자들에게 일감이 딱 끊긴 것이다. 그래서 대량생산으로 인해 누구나 가구를 살 수 있으며 직물옷을 소비할 수 있었다. 대량생산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축복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변화된 사회상이 못마땅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베블런이 책 전체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유한계급들이었다. 그 이전까지 그들이 누리던 수공품은 함부로 구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대량생산으로 대체되면서 누구나 소비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리자 유한계급들은 미천한 노동자와 중간층의 차별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핸드 메이드'였다.

수공업자들 중에서도 최상위의 기술을 가진 수공업자들이 유한계급들의 이러한 요구를 맞출 수 있었다. 유한계급들의 섬세하고 쓸데없이 높은 취향에 따라 이들이 만드는 수공품에는 문양과 장식들이 더 강조되었다. 기계로 만드는 것이 좀 더 정교하고 정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공업자의 시간도 훨씬 오래 걸리는 결과물이 더 선호되었다.

유한계급들이 이러한 핸드 메이드를 선호한 것은 바로 '나는 이렇게 비싼 노동을 들인 상품을 소비할 여력이 있다'가 핸드 메이드 상품을 통해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이러한 핸드 메이드 상품은 해당 상품을 소비하는 사람의 경제력과 비노동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단적인 예가 바로 구두다. 구두 중에서 정말 비싼 구두는 최대한 걷지 않아야 그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고 만들어진다. 비쌀수록 걸어선 안 되게 만든 것이다. 베블런의 이론에 따르자면 이것은 그 소비자가 별로 걷지 않는다는 비노동을 드러내는 한 방식으로 쓰인다.

그러다 보니 소수의 최상위 수공예 장인의 가치는 대량생산으로 인해 오히려 급상승하게 되었다. 명품 브랜드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등장하게 된다. 명품이라 자칭하는 상품들은 하나같이 장인이 손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곤 한다. 대량 생산품의 퀄리티가 과거보다 훨씬 상승한 현재에도 핸드 메이드가 선호되는 것에는 이런 역사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살펴보았듯 핸드 메이드가 핸드 메이드로서의 가치를 지니려면 대량 생산품보다 훨씬 더 정교한 퀄리티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앞서 얘기했다시피 현재 범람하는 핸드메이드와 수제란 용어의 남발은 오히려 현재 우리나라의 핸드 메이드의 수준(소비자의 수준과 생산자의 수준 모두 포함)이 얼마나 낮은지를 증명할 수 있다 하겠다.

사람의 손이란 무엇인가? 대체 무엇이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