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대통령님, 창피해 하실 필요 없어요

  • 입력 2016.09.07 10:32
  • 기자명 북클라우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8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이라며 건국절 논란에 불을 지폈다. 박 대통령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유언을 남겼다며 얼토당토않은 실언까지 했다. 그 밖에도 핵과 미사일 전쟁에 대한 공포를 걷어내야 한다며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역설했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제시했으며, 대한민국을 세계경제의 선도국가로 도약시킬 ‘창조경제’를 위해 노동개혁의 물꼬를 트는 데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러한 박근혜 대통령의 호소를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은 매우 감명 깊게 들었나 보다. 그는 지난 5일 G20 정상회의 중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한국의 유명한 지도자인 김구 선생님께서 저장(浙江)성에서 투쟁하셨고, 중국 국민이 김구 선생님을 위해 보호를 제공했다."

이어 시 주석은 김구 선생의 아들인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 1996년 항저우 인근 저장성 하이옌(海鹽)을 찾았을 때 ‘음수사원 한중우의’라는 글자를 남겼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급한 마음에 전자결재까지 하며 중국에 갔는데, 시진핑 주석이 환대는커녕 면전에서 비아냥거리니 얼마나 무안했을까. 하지만, 쪽팔릴 것 하나 없다. 이제라도 제대로 역사공부를 하면 된다. 마침 중국에 갔으니 상하이에 가서 임시정부 청사도 둘러보고,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누구 총에 맞아 쓰러졌는지,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 의사는 왜 순국했는지 체험학습을 하면 된다. 더군다나 훌륭한 여행가이드 시진핑 주석이 있지 않은가.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할 사람들은 또 있다. 지난 8월 22일 새누리당 전희경 의원실이 주최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건국과 그 의미를 찾아서’ 토론회에서 류석춘 연세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부 이상한 사람들이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는데 3·1운동 이후 한성·상해·블라디보스톡에 임시정부가 생기고 4월 10일 상해 임시정부로 통합이 되는 것인데 이 상해임시정부는 시민·주권·영토 등을 갖춘 것이 없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구 선생은 중국 국적, 안창호 선생은 미국 국적의 외국인이라는 황당한 얘기도 나왔다.

대한민국 임시헌장

과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저들의 주장처럼 정부가 아니고, 외국인들이 세운 흠인 걸까. ‘심용환 역사&교육연구소’의 심용환 소장은 최근 펴낸 <단박에 한국사 : 근대편>에서 임시정부는 ‘정부가 맞다’며 건국절 주장 세력의 논리를 일축한다. 심 소장은 그 근거로 1919년 4월 11일 공포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들고 있다.

“임시헌장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응당 갖추어야 하는 자유권(4조)과 선거권(5조) 등이 포함되었으며, 의회가 국가 운영의 주체임을 명시(2조)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민족 구성원의 신분적, 경제적 ‘일체 평등(3조)’을 강조합니다.”

또한 이 헌장에는 반포일이 ‘대한민국 원년’으로 표기되어 있고,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로 한다’이다. 이 표현은 당대의 기준으로 매우 독창적인 것으로, 서양 국가들의 헌법에서도 그리고 먼저 만들어진 중화민국의 헌법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표현이었다. 이는 계몽 사상가 몽테스키외가 제시한 ‘민주 공화제’와 미국식 공화정 모델에 대한 이해가 축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7조에는 오늘날 UN(국제연합)의 전신인 ‘국제연맹’에 가입한다는 내용도 있어 눈길을 끈다.

시진핑 주석이 말한 김구 선생의 일화는 어떤 걸까. 1932년 4월 29일 일본이 상하이 전승 기념식을 거행하던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일본 최고위 인물들 다수가 폭사했다. 이 의거에 당시 중국의 지배자 장제스는 중국군 수십만이 하지 못한 일을 한 명의 조선인이 해냈다며 감격한다. 이를 계기로 장제스는 임시정부를 주목하며, 난징 중앙육군군사간부학교 교정에서 김구와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백범 김구(왼쪽)와 중국 장제스 총통(오른쪽)

이 둘의 만남은 임시정부의 국제사회 영향력 행사로 이어진다. 중국국민당은 한국 문제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부조조선복국운동 지도 방안’을 확정하고 실시하는데, 이는 중국이 임시정부를 먼저 승인하며 광복군을 중국군사위원회에서 운용할 것을 담은 내용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1943년 열린 카이로회담에서 장제스가 제안한 ‘한국의 자유로운 독립’과 루스벨트의 ‘적당한 시기’가 타협을 이루어서 ‘적당한 시기에 한국이 자유롭게 독립하게 될 것’을 영국·미국·중국이 결의하게 된다.

임시정부는 중국을 통한 외교·군사적인 노력 외에도 국민의 기본 권리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1941년 11월 25일 임시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의 내용을 살펴보면 매우 혁신적이다. 노동권, 파업권과 사회 각종 조직에 가입할 권리까지 규정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이 정치·경제·문화·사회생활 모든 면에서 남자와 평등한 권리를 갖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왜곡된 경제구조와 자본의 횡포에 대응할 수 있는 과감한 개혁 방안까지 고민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감회를 심용환 소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사회상이나 여러 가지 정치·사회 이슈를 검토해 본다면 이 정도 수준의 건국구상은 혁신적이다 못해 대안적이며 미래적이기까지 합니다. 혹독한 독립운동의 일상을 감내해야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일상 그리고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본 제국주의, 또한 1920년대 이후 전 세계를 뒤흔들어놓은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생각에 대한 반응까지. 독립운동가들은 여러 한계에 부닥쳤음에도 이 모든 것을 상대하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건국을 이룩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7일, ASEAN에 참석하기 위해 라오스로 떠난단다. 전자결재도 하는 마당에 전용기에서 전자책으로 <단박에 한국사 : 근대편>을 읽고 가길 권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라는데, 또 무슨 쪽팔림을 겪을까 노파심에서 하는 소리다. 전자책 시장이 창조경제의 성은을 입어 활황을 타면 더욱 좋고!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