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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시대: 근본적 고민 없이 예산만 쏟아붓는 정부

  • 입력 2016.09.01 11:15
  • 수정 2016.09.01 11:16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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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조 원!

지난 10년 동안 정부가 출산을 장려한다는 명목으로 쏟아부은 예산이다. 워낙 단위가 커 현실감은 없지만, 굉장히 큰돈임은 틀림 없다. 그쯤 썼으면 어떤 가시적인 효과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저출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상황은 점점 더 악화하고 있다. 급기야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우하는 가장 큰 구조적 위험이며,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내용의 호소문까지 내놓았다.

되물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왜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일까? 정부가 지난 10년 동안 80조 원을 썼는데도 말이다. 물론 저출산이라는 추세는 단지 대한민국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전 세계적인 과제. 따라서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들을 고안하고 이를 위해 엄청난 예산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최소한 좀 나아졌어야 할 텐데.

ⓒ 연합뉴스

작년 12월을 떠올려보자. 정부는 '제3차 저출산 기본 계획'을 발표하며 "2016년에는 신생아가 44만 5,000명, 2020년엔 48만 명이 태어날 것"이라 자신 있게 공언했다.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진행된다. 지난 5월까지 태어난 신생아 수는 18만 2,400명에 그쳤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만 200명이 줄어든 수치다.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던 2005년보다도 7,712명이나 적은 숫자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2016년 태어날 신생아는 42만 명 수준. 이는 인구 통계가 시작된 1925년 이후 가장 적은 것이다. 당연히 정부의 계획과도 엄청난 괴리가 있는 셈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정부는 저출산 보완대책을 들고 나왔다. 지난 25일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나온 추가 정책들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한겨레

정부는 난임 시술 지원비 강화, 아빠 육아휴직수당 인상, 다자녀 지원 확대를 통해 내년 출생아 수가 2만 명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정말 그럴까? 정부는 매번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장밋빛 전망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초라했다. 그러면서 실패에 대한 책임은 없었다. 또 다시 새로운 정책이나 보완책을 내놓았다. 그렇게 80조 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물론 난임 시술 지원과 같은 정책은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난임 시술을 기피해 왔던 이들(현재 난임 부부는 21만 명으로 추산)에게 절실한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단기적으로 출산율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 밖의 대책들이 출산율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가령 한국의 기업 문화에서 여성의 육아휴직도 그림의 떡에 불과한데 남성의 육아휴직이 얼마나 현실성 있게 다가올까. 참고로 2015년 남성의 유아휴직 비율은 5.6%다.

ⓒ KBS

"저도 지금 일을 하고 있기도 하고 만일 아이를 가지게 되면 남편이나 둘 중 하나가 육아를 해야 될 텐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더라고요."

맞벌이를 하는 정유진 씨의 말을 들은 정부의 답변을 예상하면 다음과 같다. "왜죠? 그게 왜 쉽지 않다는 거죠?"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근본 원인에 접근할 의지가 없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단기적인 정책에 돈을 쏟아붓는 것뿐. 지금 거리에 나가서 지나가는 20~30대에게 물어보라.

"당신은 결혼할 생각이 있습니까?"

"당신은 자녀 출산할 계획이 있습니까?"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저출산은 보육과 사교육비에 대한 비용 부담, 고용에 대한 불안감, 주거비 상승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돼서 나타난 결과"라며 "아이를 키우는 데 1인당 수 억 원(2012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3억 896만 원)이 들어가는 사회에서 출산은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전문가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저출산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 한겨레

현재 사회적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는 결코 풀어낼 수 없다. 냉정한 현실 인식부터 선행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은 지옥 구덩이와 같은 국가의 현실을 매 순간 마주하며 그 안에서 삶을 연명해가는 사람들에게 "자기 비하와 비관, 불신과 증오는 결코 변화와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묶어버리고 우리 사회를 무너뜨리게 할 뿐"이라며 “자신감을 갖자”고 말한다.

"정부는 지금 출산을 기피하는 청년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직장인의 '빚내서 사는 인생'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 줘야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는데, 정부 정책은 이를 해소해주기는커녕 오히려 확대하는 방향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부 "출산율, 2020년 1.5명 달성"..20·30代 "글쎄"’

무분별한 긍정은 냉소를 낳는다. 출산은커녕 결혼마저 기피하는 대한민국에서 과연 누가 '아이를 낳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백종만 전북대 교수는 "저출산 문제를 풀기 위한 핵심 정책인 일자리 관련 정책 대응을 보면 임시적이고 대증적 대책들로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실제로 한쪽에선 노동시장개혁을 통해 고용불안을 키워나가면서 한쪽에선 안심하고 아이를 낳으라니.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태도인가.

ⓒ 한겨레

지난 5년간 대한민국의 합계 출산율은 평균 1.24명에 불과하다. OECD 기준으로 최하위 수준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정부는 이를 고민해야 한다. 결국, 출산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전문가가 배제된 채 꾸려지는 정책들은 현실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비껴가고 있는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늙어버린 대한민국이 내놓는 정책은 늙어버렸다. 이 늙음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단언컨대 정부의 이번 단기 대책도 실패로 귀결될 것이다. 사회를 바로잡을 생각 않고 단기적인 정책만을 제시해 출산을 종용하는 정부의 태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기만적이지 않은가? 혹시나 여기에 속아 자녀를 출산한 이들이 곧 닥칠 쓰나미 앞에 어떤 절망을 맛봐야 할지 눈에 훤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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