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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이 웃음이 되는 시대

  • 입력 2016.08.24 10:29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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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검 효과일까? 이번 주말 KBS2 <해피선데이 - 1박 2일 시즌3(이하 1박 2일)>의 시청률은 19.9%. 지난 주 14.7%에 비해 무려 5.2%나 올랐다. 박보검의 환한 웃음과 특유의 긍정 에너지가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며 호평을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시청률 상승은 박보검의 공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데려다 놓고 <1박 2일>이 준비했던 게임은 수준 이하였다. 가학적이었다.

KBS2 <해피선데이 - 1박 2일 시즌3>(위)와 MBC <무한도전>(아래)

가령 뜨거운 햇볕 아래 상대방의 자루 위에 놓인 15만 원 어치 동전을 몸에 붙여 자신의 자루로 옮긴다든지, '마시는 양=주유량'이라는 조건을 제시하고 500㎖ 잔에 담긴 이온음료를 마시게 했다. 멤버들은 뜨겁게 달궈진 동전을 몸에 붙이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들의 몸에는 동전 자국이 빨갛게 남았다. 이를 지켜본 시청자들의 낯빛도 빨개졌다. 주유비를 벌기 위해 끊임없이 음료를 마시는 멤버들의 배는 잔뜩 불러왔다. 역시 시청자들의 불편함도 잔뜩 커져만 갔다.

한편, 역사 특집 '도산을 찾아서'를 통해 스스로의 무한한 가치를 재확인한 MBC <무한도전>은 지난 회의 실착을 완벽히 만회했다. 지난 13일 <무한도전>은 지난 1월 '행운의 편지' 특집에서 정준하가 받은 벌칙을 수행하기 위해서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놀이공원을 찾았다.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정준하는 스파게티를 먹는 도전을 했다. 가장 무섭다는 4차원 롤러코스터에서는 요거트 먹기에 도전했다. 음식은 사방으로 튀었다. 이 가학적이고 안전에 무감각한 미션에 대해 적지 않은 시청자가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1박 2일>의 유일용 PD는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촬영을 쉴 때마다 동전을 덮는 등 출연자들이 안전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준비했다"며 "<1박 2일> 팀은 항상 출연자들의 안전과 재미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논란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으로 미뤄볼 때 아쉬움이 남는 게임이었다. <무한도전> 측도 매번 "협조하에 촬영 후 깨끗이 정리했습니다"라는 자막을 넣어 시청자들을 안심시키지만, 음식으로 하는 무의미한 미션을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지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JTBC <잘 먹는 소녀들>

양 방송사를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무한도전>이 눈에 띄는 가학성으로 문제가 됐다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학성을 지닌 예능 프로그램도 수두룩하다. 가령 걸그룹 멤버들을 불러 앉혀놓고 '애교를 보여달라', '춤을 춰라' 등의 거절하기 곤란한 요구를 하는 건 오래전부터 지속왔 왔던 예능 프로그램의 공식이다. (반면, 남자 연예인에게 복근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패턴도 마찬가지다.) 또, JTBC 예능프로그램 <잘 먹는 소녀들>은 아예 대놓고 걸그룹 멤버들의 '먹방'을 구경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다이어트에 갇혀 사는 걸그룹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던 제작진의 변명과는 달리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생중계했던 이 프로그램은 식사시간과 식사량이 불규칙한 그들에게 충분히 가학적이었다. 맛있고, 예쁘게, 많이 먹어야 했던 걸그룹 멤버들을 보면서 웃음 짓게 하는 이 관음적인 기획은 엽기적이기까지 했다. 시청자들의 비판에 직면했던 <잘 먹는 소녀들>은 포맷을 살짝 바꿔 <청춘식당-잘 먹겠습니다>로 돌아왔다.

tvN <삼시세끼 – 고창 편>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은 제작진의 고민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물론, 뒤편에 언급한 프로그램들은 그 고민의 깊이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웃음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박이 돼 억지스러운 장면들을 연출한다거나 출연자에게 가학적인 행위를 가하는 데 적용된다면 그 어떤 시청자도 환한 웃음으로 반응할 수 없다. 날이 갈수록 점점 자극적으로만 변해가는 대한민국 예능의 풍토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서 tvN <삼시세끼 – 고창 편>이 주는 소소한 웃음, 건강한 웃음이 더욱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나영석 PD가 만들어내는 조미료 없는 그 착한 웃음이 지니는 청량함과 위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15일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곧 마지막 회가 방송된다고 하니, 마치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혼란스러운 거리에서 홀로 그 수수함을 빛냈던 정직했던 간판이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리다. 그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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