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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폭염 사태들

  • 입력 2016.08.23 16:26
  • 수정 2017.07.30 12:16
  • 기자명 유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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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을 검색하면 첫번째 연관검색어로 ‘폭염 언제까지’가 뜬다..ㅜㅜ

덥다. 새삼 덥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만큼 덥다. 에어컨을 끄는 순간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운 공기가 밀려들어오고 한낮의 햇빛은 따가운 수준이 아니라 아플 정도로 온 몸을 찔러댄다. 점심쯤이면 날아오는 재난경보 문자는 이제 그냥 알람 같고, TV 뉴스는 매일 저녁 어느 지역의 기온이 또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는 소식을 올림픽 신기록 소식과 함께 전한다. 이 끔찍한 더위가 이번 주말에 끝난다는 건지 다음주 목요일이면 한풀 꺾인다는 건지, 전기세는 그래서 깎아준다는 건지 다 받겠다는 건지…종일 더위에 시달린 사람들은 갈팡질팡하는 한전과 기상청슈퍼컴퓨터에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유례없는 더위’, ‘역사적인 더위’, ‘사상 최악의 더위’… 이런 표현들을 매일 접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올해 여름이 정말 최악인가? 이것보다 더 더운 적은 없었나? 있었다면, 지금도 이 지경(…)인데 그때는 도대체 어땠을까?

1. 2003년 유럽

2003년, 유럽의 바닷가(...)

2003년 여름, 유럽은 말 그대로 불지옥이었다. 7월 말부터 8월까지의 한 달 동안 유럽에서만 7만 5천 명이 더위 때문에 죽었다. 숨쉬기도 힘든 40도 이상의 고온이 십 수일씩 지속되고 여기저기서 대형산불까지 터지면서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중에서도 최고기온 44.1도를 기록한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는데, 한 달 동안 무려 1만 5천명이 사망했다. 밀려드는 사망자로 프랑스 곳곳에서 영안실 부족 사태가 발생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식당 냉동고와 냉동 트럭을 빌려 시신을 임시 안치해야 했다.

대부분의 희생자는 홀로 살던 빈곤층 노인이었다. 냉방기 등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던 허약한 노인들이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나간 것. 프랑스 내에서는 약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정부와 복지부를 규탄하고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여론이 일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시라크는 이 참사에도 아랑곳없이 캐나다에서 3주간의 휴가를 편안하게 마치고 돌아와 공분을 샀다.

2. 2010년 러시아

2010년 5월-7월은 러시아에서 ‘1000년 역사상 최악의 여름’으로 불린다. 이 해 러시아에서는 5만 5천여 명이 폭염으로 사망했고, 러시아 내 16개 지역에서는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이 해의 모스크바 최고 기온은 38.2도. 40도를 훌쩍 넘는 나라도 있는데 이 정도가 무슨 폭염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본디 모스크바의 한여름 평균 기온이 22도 언저리라는 걸 감안하면 러시아 국민들에게는 핵폭탄급 재난이었다.

산불 연기로 뒤덮인 모스크바

이 해 러시아에서는 열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이외에도 익사자와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했다. 전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시민들이 강과 바다로 구름처럼 몰려갔던 탓이고, 후자는 폭염에 동반된 가뭄으로 모스크바 근처에 대형산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때 발생한 산불은 진화에만 3주가 걸렸는데, 500만 헥타르(그린피스는 피해규모를 500만 헥타르로 추산하고 있으나, 러시아 재해본부는 100만 헥타르 남짓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발표해 피해규모를 축소한다는 의혹을 샀다)에 달하는 임야가 전소된 것은 물론 불이 번지는 내내 모스크바 전역이 매캐한 연기와 그을음으로 가득 차 시야가 흐릴 정도였다고 한다.

3. 인도

연도를 굳이 특정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인도는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을 넘어선 혹서가 빈발하는 지역이다. 인도의 더위는 건기가 절정에 이른 5월경에 가장 기승을 부리는데, 이 때는 45도를 넘는 고온이 수주씩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이 더위 때문에 1998년에는 2500여명이 숨졌고, 2015년에는 2000여 명이 숨졌다.

올해도 어김없이, 무시무시한 더위가 인도를 덮쳤다. 올 5월, 북서부 한 지역의 수은주는 인도 관측사상 최고 기온인 51도까지 치솟았다. 50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이 얼마나 끔찍한지 잘 감이 오지 않는다면 아래 동영상을 보자.

기온이 워낙 높은 탓도 있지만, 인도의 폭염 피해가 유독 더 큰 건 물이 귀하거나 냉방시설이 충분치 않은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여름 인도 북부의 한 마을에서는 불가촉천민 청년 다섯 명이 버려진 우물을 고쳐 이용하기 위해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그 안에 가득 찬 유독가스를 마시고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카스트 안에도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은 말 그대로 어떤 것에도 닿아서는 안 되는 최하층 천민 계급으로, 이들이 손을 댄 물건이나 먹은 음식은 모두 부정을 탄 것으로 여겨져 이들은 대개 다른 카스트들과 같은 호수, 우물 등을 사용할 수 없다. 숨진 청년들도 근처 마을의 우물이나 호수를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버려진 우물을 고쳐 쓰려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가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더위 탓이라고 하기에는 슬픈 사고다.

4. 1994년 한국

북한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맞물려 ‘김일성의 저주’라는 별칭까지 얻었던,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악의 여름. 이 해 여름은 짧은 장마와 이상고온이 겹쳐 기온으로도, 폭염 지속 일수로도 기록을 여러 개 갈아치웠다. 당시 서울의 최고 기온은 38.4도. 이 온도는 아직도 서울시의 역대 최고 기온으로 남아 있다.

당시 열대야 현상을 기록한 보도 ⓒ동아일보(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94년 여름 한국에서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은 총 3384명으로, 이 숫자는 한국의 역대 기상재해 사망자 수 통계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살인 폭염’이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인정사정 없는 더위였지만, 에어컨 등의 냉방시설이 보편적이지 않던 시절이라 대다수의 국민들은 선풍기 몇 대와 부채 몇 개로 찜통 같은 날씨를 견뎌야 했다. 당시 한강변은 밤마다 잠 못 이루고 집을 뛰쳐나온 돗자리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도 더위를 못 이긴 하숙집 식구들이 모조리 집 앞 골목에 이불을 깔고 노숙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 그랬다.

5. 2012년 베트남

2012년 5월, 베트남은 때이른 폭염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중북부 지역은 연일 40도를 웃도는 고온이 지속되고 있었는데, 평균 기온이 높은 나라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례적인 더위여서 온열질환자가 급증했고, 기온을 낮추기 위해 살수차가 긴급 동원되어 도로 곳곳에 물을 뿌려야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중부 지역의 한 마을에서, 베트남전 당시 버려졌던 불발탄이 43도에 달하는 기온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한 것. 이 충격으로 근처에 있던 다른 불발탄 2발이 함께 폭발하면서 산불이 발생했다. 소방관이 출동했으나, 몇 발의 불발탄이 더 파묻혀 있을지 모르는 산은 그야말로 불붙은 화약고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주변 나무들을 제거하며 간신히 화재 진압에 나서야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도 빠른 진압 덕에 사망자나 부상자 없이 5헥타르 가량의 산림이 불타는 정도로 마무리되긴 했으나, 폭염이 계속되는 동안 수많은 베트남 국민들은 불발탄 폭발의 공포를 안고 살아야 했다.

6. 2016년 여름

지역을 특정하지 않은 건 3번과 같은 이유다. 어느 나라를 집을 것 없이 거의 전 세계가 불타고 있어서... 4-5월 동남아와 인도 지역을 휩쓸기 시작한 폭염은 7월에 들어서 동아시아 전역과 중동, 유럽, 아메리카까지 퍼져 맹위를 떨쳤다. 자고 일어나면 어느 지역의 최고 기온이 경신됐다는 소식이 쏟아졌고, 40도를 넘어 50도에 육박하는 지역도 적지 않았다. NASA는 올 7월을 ‘역사상 가장 더웠던 달’로 기록했다.

세계 곳곳에서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산불과 가뭄 등의 2차 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상고온이 긴 시간 지속되다 보니 이전에 보지 못한 기상천외한 사고들도 터졌다. 인도의 도로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는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깨졌다.

이번 폭염의 가장 무서운 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갈팡질팡하는 기상청은 일단 이번주말까지 더위가 지속될 거라고 밝혔지만 이들이 지난주에도 같은 말을 했었다는 걸 떠올려 보면, 앞으로 더위가 얼마나 더 길어질지는 알 수 없다…

비바람 몰아치고 산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좀 더운 게 얼마나 무섭겠냐~하지만 폭염이 이렇게 무섭다. 더 무서운 건, 어쩌면 이게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환경학자들은 온난화 등으로 지구의 평균 기온이 점차 오를 것이라 분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쟁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이상고온으로 인한 기록적 폭염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여기서 더 더워지면 어떻게 되냐고? 앞으로 어느 지역이 얼마나 더 더워질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지금 현재 지구에서 가장 더운 지역을 보면 온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질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대강 상상할 수 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지역으로 기록된 곳은 이란의 투르 사막이다. 이 사막은 2005년 여름 섭씨 70.6도라는 경이로운 온도를 기록했다. 이게 어느 정도인가 하면…이 사막에서는 생우유를 땡볕 아래 내다 놓고 일주일이 지나도 상하지 않는다. 박테리아도 더워서 못 살기 때문이다(…)


사람은 당연히 못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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