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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3 아이템 줍기에서 배우는 사용자 경험(UX)

  • 입력 2016.08.19 19:17
  • 수정 2016.08.20 12:11
  • 기자명 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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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 유저들이 콘텐츠를 얼마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가

UX는 User Experience의 줄임말이다. 이를 설명하는 여러 말들이 있지만, 간단히 말해서 어떤 서비스를 접할 때 겪는 경험 총체를 UX라고 하면 될 듯하다. UX라는 개념은 어디에나 적용이 가능하다. 흔히 IT서비스에 UX라는 개념을 적용하긴 하지만, 굳이 IT서비스에 한정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한 식당에 들어가서 겪는 소비자의 편의나 불편도 UX로 설명하는 게 가능하다. 그건 그거 나름대로 설명하는 용어가 있기야 하겠지만.

UX는 기본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자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목표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그럼 여기에서 당연한 질문이 던져진다. "어떻게 하면 이용자가 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하나?" 내가 이 때 주로 들이대는 잣대는 "몇 번이나 눌러야하는가"다. 당신이 집 안 화장실의 불을 키기 위해선 스위치를 1번만 누르면 된다. 그리고 불을 끄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1번만 스위치를 누르면 된다. 다른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공공화장실은 센서를 통해 사람이 들어오면 불이 켜지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불이 꺼진다. 센서가 없는 경우라도 사람들이 계속 드나들기에 불을 켜놓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이용자가 스위치를 누를 일이 없다. 스위치를 0번 눌렀다고 볼 수 있다.

탭 카운터(Tap Counter)

애플에는 '탭카운터'라는 직업이 있다고 들었다. 특정 서비스를 이용할 때 몇 번이나 탭을 해야하는 지를 파악하는 자를 탭카운터라고 부른다. 탭카운터는 집안의 화장실의 불을 켜기 위해선 1번의 탭이 필요하다고 분석할 것이고, 공공화장실의 불을 켜기 위해선 0번의 탭이 필요하다고 진단을 내릴 것이다. 민원24에서 서류를 한장 뽑으려하면 몇번의 탭이 필요할까? 음, 상상만하자. 벌써부터 빡이치니까.

이제 디아블로3의 '아이템 줍기'를 보자

<디아블로3>에는 보물 고블린이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보물 고블린 중에서도 물렁아비라는 놈은 유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보물 고블린인데, 이놈을 처치하면 물렁자식이란 놈들이 여럿 튀어나와서 그놈들까지 사랑(?)으로 잡아주면 아이템들을 여럿 드롭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화면은 물렁 아비와 물렁자식을 줄였을 때 드랍된 아이템들을 캡쳐한 것이다.

아이템들을 보면 색깔과 이름이 모두 동일한 아이템들이 보일 것이다. '죽음의 숨결'이라는 아이템은 초록색 글씨로 이루어져 있고, 여러개가 떨어져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죽음의 숨결이 여러 개가 떨어져 있음에도 '죽음의 숨결(2)'로 표시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1개씩 드랍되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게이머가 이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넣기 위해선 몇 번을 클릭해야 될까? 이때 게임 기획자에겐 여러 선택지가 있다. 동일한 아이템일지라도 서로 다른 위치에서 드랍되었으므로 1개씩 클릭하게 하는 옵션1. 동일한 아이템이므로 한 번만 클릭해도 모두 인벤토리에 들어오게끔 하는 옵션2. 블리자드의 <디아블로3>팀은 옵션2를 채택한다. 참고로 <디아블로2>는 옵션1을 채택했다. 옵션2는 생각도 못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옵션2를 이해하기 위해서 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죽음의 숨결 아이템은 인벤토리에서 1칸만을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1번의 클릭으로 다량의 아이템을 주워도 인벤토리에 크게 지장이 없다. 인벤토리에 이미 죽음의 숨결이 있고 땅에 떨어진 것을 주을 때 총합(인벤에 있는 것+드랍된 것)이 1,000개가 되지 않는다면 인벤토리가 꽉찬다던가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인벤토리에 죽음의 숨결이 없다고 해도 1칸만이 찰 뿐이기에 게이머에게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다.

색깔은 같지만 이름이 다른 아이템들도 보인다. '입술모양 에메랄드', '황실 루비', '황실 토파즈' 등은 색깔은 하늘색으로 같지만 이름은 다르다. '입술모양 자수정(2)'라는 아이템이 보이는데, 이것이 입술모양 자수정 2개로 표시되지 않고 이렇게 표시되는 이유는 2개가 한 몹에 의해 한번에 드랍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도 게임 기획자에겐 여러 선택지가 있다. 각각을 모두 클릭해서 줍게 하는 옵션3. 죽음의 숨결처럼 이름이 같은 것들만 줍게끔 하는 옵션4. 모두 보석으로 분류되는 아이템이므로 한 번의 클릭으로 한 번의 클릭으로 모두 줍게끔 하는 옵션5. <디아블로3>는 옵션5를 채택했다.

죽음의 숨결을 주울 때처럼 일관성을 가지려면 옵션4를 채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디아블로3>는 옵션5를 채택했다. 나는 <디아블로3>팀이 꽤나 현명한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 <디아블로>의 시리즈의 모든 보석은 인벤토리에서 한 칸만을 차지한다. 그리고 드랍된 보석들을 모두 줍는다고 해도 인벤토리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이 부분이 중요한데, 입술모양 에메랄드를 주으려는 이가 황실 루비를 줍지 않을 개연성은 극히 낮다. 입술모양 에메랄드만을 원하는 게이머는 옵션5를 좋아할 리가 없다. 자신이 원치 않는 보석까지 인벤토리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아블로3>의 기획자는 그런 게이머가 별로 많지 않을 거라 판단한 듯 보인다. 결과적으로 옵션5로 인해 게이머는 다양한 종류의 보석들을 한 번의 클릭으로 주울 수 있다.

색깔은 같지만 이름이 다른 또다른 아이템들이 보인다. 노란색 아이템들이 그것이다. 노란색 아이템들은 휘귀 아이템으로서 보석류와 달리 서로 종류가 다른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휘귀 아이템 중에는 무기도 있고, 방어구도 있다. 무기나 방어구는 두 칸을 차지하고, 반지나 목걸이는 한 칸을 차지한다.

여기에서도 <디아블로3> 기획자에겐 다양한 옵션이 있다. 하나하나를 모두 각각 클릭해야 주울 수 있게 하는 옵션6, 무기류를 클릭하면 무기류만 한꺼번에 인벤토리에 들어오게하는, 종류별 줍기(?) 옵션7, 노란색 아이템을 클릭하면 필드에 있는 모든 노란색 아이템을 줍게 해주는 방식의 옵션8. 블리자드는 이 경우엔 옵션8을 선택하지 않고 옵션6을 채택했다.

그런데 딱히 반전도 아닌 것이, 앞에서 사례를 든 죽음의 숨결이나 보석류들은 인벤토리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 아이템이다. 필드에 있는 것들 다 주워봐야 인벤토리에서 10칸 이상을 차지하지도 않는다. 죽음의 숨결은 같은 아이템들끼리 중복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1,000개 이하라면 한 칸만을 차지할 뿐이고, 보석들 역시 서로 종류가 같다면 한 칸만을 차지하고, 서로 종류가 다르더라도 인벤에 무리를 주지 않을 정도로만 인벤에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데 노란색 아이템들은 경우가 다르다. 노란색 아이템들은 99.9%의 확률로 서로 다르다. 그렇기에 각각의 아이템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공간을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옵션8을 채택하면 인벤토리는 한순간에 포화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아래를 통해 <디아블로3>의 아이템 줍기 시스템을 좀 더 쉽게 이해해 보자.

현상금 사냥을 돈 뒤, 큐브를 까니 위와 같이 아이템들이 드랍됐다. 다양한 종류의 아이템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보석류인 입술모양 다이아몬드를 클릭하면?

보석류의 아이템들이 모두 인벤토리에 들어온다. 한 번만 클릭하면 되기에 꽤나 편리하다.

'미지의 수정'이라는 재료 아이템을 클릭하면 어떨까? 이 아이템은 앞에서 설명은 못한 종류의 아이템인데, 제련에 쓰이는 재료 아이템이며 1칸만을 차지한다. 보석류처럼 1,000개 이하일 경우 1칸만을 차지한다. 화면 상에는 꽤나 많은 미지의 수정이 있다. '미지의 수정(4)', '미지의 수정(15)' 등등이 보인다. 클릭하면 아래처럼 된다.

미지의 수정들은 일일이 클릭하지 않아도 인벤토리에 모두 들어오고, 그렇게 들어온 미지의 수정들은 인벤토리에서 한 칸만을 차지한다. 이와는 다르지만 재료템으로서 동일한 성격을 같은 '신비한 가루'나 '아리앗 전쟁 태피스트리', '칼데움 밤그늘나비' 등의 재료 아이템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주워진다. 한 번 클릭하면 같은 이름을 가진 재료들은 모두 인벤에 들어오고, 한 칸만을 차지한다.

하지만 신비한 가루가 필요한 이에게 반드시 아리앗 전쟁 태피스트리가 필요하다고 보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신비한 가루를 줍는다고 해도 아리앗 전쟁 태피스트리가 자동적으로 주워지진 않는다. 보석류와 어떻게 다른지 알겠나?

이번에는 금화를 주워 보자

<디아블로2>의 경우 금화를 주으려면 떨어진 금화들을 일일이 클릭해야 했다. 즉, 위의 이미지와 같은 상황이 <디아블로2>에서 벌어졌다면 꽤나 많은 탭을 해야한다. 그런데 <디아블로3>에서 이는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그냥 금화 근처로 가기만 해도 금화는 인벤토리에 들어오게된다. 돈을 줍고 싶어하는 자들이 있을 순 있으며 그런 자들에게 이런 방식은 선택권 침해다. 하지만 <디아블로3> 기획팀은 그런 자들이 얼마 없을 거라 판단했기에 이런 변화를 주었을 것이다.

sosal.kr/744

보석류를 쉽게 줍게 해주는 것과 금화를 쉽게 줍게 해주는 것에는 관통하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있다. 쉽게 줍게 하되, 그것이 부담되지 않을 경우에만 그렇게 해주는 것. 보석류는 한꺼번에 많이 주워도 인벤에 무리가 가지 않으며, <디아블로3>에선 금화를 많이 주워도 딱히 게이머에게 손해될 것이 없다. 하지만 재료템을 제외한 노란 아이템은 그것들이 한꺼번에 인벤에 들어오면 게이머에게 부담이 되기에 지금과 같은 옵션을 제공한다.

이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디아블로2>에서 <디아블로3>로 넘어오면서 생긴 변화들을 더 자세히 봐야한다. 아래의 이미지를 보자.

blog.daum.net/6402825/1

<디아블로2>에선 인벤토리에 있는 금화와 창고에 있는 금화가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들고 있는 금화의 경우, 게이머가 데미지를 입고 죽으면 필드에 떨어지게끔 디자인되어 있다. 그런데 이는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디아블로3>에서는 죽어도 금화가 필드에 떨어지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굳이 인벤토리에 있는 금화와 창고에 있는 금화를 따로 구별할 필요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런 밑바탕이 있은 뒤에야 가능한 것이 앞서 언급한 <디아블로3>의 금화 줍기 시스템이다. 자동적으로 금화를 주워도 이는 게이머에게 딱히 부담이 되지 않기에 자동적으로 줍게끔 도와준다. <디아블로2>에서 금화를 자동적으로 줍게 했다면 물론 전보다 편한 상황이 연출되었겠지만, 이는 동시에 창고에 돈을 보관하러 갈 동기요인이 되고 이는 게임의 연속성을 끊는다. <디아블로3>는 이 동기요인을 제거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성공적인 UX를 구축한 듯 보인다.

블리자드의 게임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UX를 자랑하는데, 그 점에서 <히어로즈 오브 스톰>의 UX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UX를 압도한다. 그렇기에 <히오스>가 고급 레스토랑이라는 별명을 듣는 건 납득이 가능하다. 그런데 손님이 들어오고 말고는 다른 요인이 더욱 크게 작용하는 듯 하다.

내가 블리자드의 태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게이머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다루는 UX를 비롯하여 <오버워치> 패치를 할 때마다 '개발자 업데이트'를 통해 게이머들과 소통하려는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을 보다가 넥슨을 보면 역겨울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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