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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넷플릭스, 게이 커플을 지워버리다

  • 입력 2016.08.19 14:03
  • 수정 2016.08.19 14:07
  • 기자명 임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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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게이 커플을 지워버리다

경향신문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게이 커플’이 ‘성공회 교우’?.. 넷플릭스 오역 논란, 경향신문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SF 드라마 <닥터 후>. (3대 천왕 가리기 좋아하는 한민족은) <스타워즈>, <스타트렉> 등과 함께 3대 SF 영상물로 꼽을 정도로 인기 있는 드라마다. ‘시간의 제왕(Time Lord)’이라고 불릴 정도로 선진적인 시공간 이동 기술을 보유한 등장인물 ‘닥터’가 동료들과 함께 과거와 미래,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아득히 먼 미래, 아득히 먼 우주의 이야기이니만큼 성 정체성에 대한 개념도 지구와는 많이 다르다. 호모섹슈얼(동성애)이나 헤테로섹슈얼(이성애), 바이섹슈얼(양성애)을 넘어, 아예 성별 개념을 완전히 초월한 팬섹슈얼(범성애)이나 종족이고 뭐고 죄다 초월한 옴니섹슈얼(…)같은 개념들이 필요할 정도.

기사는 닥터 후의 뉴 시리즈 6~7화, “선한 이가 전장에 나서다(A Good Man Goes to War)” 편의 도입부를 다룬다. 두 사람의 군복 입은 남성이 등장하는데, “난 홀쭉이(thin one)고, 이쪽은 내 남편 뚱뚱이(fat one)”라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이에 상대가 “이름은 없냐”고 묻자, “우린 홀쭉이에 뚱뚱이, 게이인 데다가, 결혼한 성공회 해병들이다. 무슨 이름이 필요하겠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여기에서 그들의 성 정체성을 묘사하는 부분을 모두 빼버렸다. 홀쭉이가 뚱뚱이를 “내 남편”이라 소개하는 부분을 “내 친구”로 수정했고, “게이인 데다가 결혼했다”고 소개하는 부분은 “교우이며 단짝”으로 수정했다.

흥미로울 일이다. 한국은 현실에서는 물론, 영상 작품에서조차 성소수자 캐릭터를 지워버린 셈이다.

어떻게 성소수자는 사회에서 지워지는가, 이 블로그

넷플릭스가 지워버릴 <닥터 후>의 성소수자 캐릭터들

<닥터 후>는 상상력의 보고다. 처음 보면 말도 안 되는 설정에 유치한 전개가 사람을 맥빠지게 하는데, 온갖 설정과 상상력으로 시청자를 매료한다. 수많은 외계 종족이나 인간의 진화상, 미래의 문화 등.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인간관계 또한 그 묘미 중 하나다. 그런 재미를 번역 자막 때문에 놓친다니 무척 아쉬운 일. 넷플릭스가 지워버릴 <닥터 후> 속의 성 소수자들을 미리 만나보자.

캡틴 잭 하크니스

최초 등장: 뉴 시리즈 1~9화, ‘속이 빈 아이(The Empty Child)’

<닥터 후>의 등장인물이며 스핀오프 ‘토치우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수 천년 후 미래에서 온 인물로, 수많은 외계인들을 만나며 자각한 그의 성 정체성은 범성애, 그것도 성별은 물론 외계 종족을 불문하고 누구나 꼬실 수 있다는 옴니섹슈얼이다. 사실 이쯤 되면 더이상 성 정체성 따위는 의미 없는 시대일지도.

<닥터 후> 팬들에게 가장 유명한 성소수자(?)로 처음에는 닥터의 여성 동료 로즈에게 추파를 던지는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이후 닥터와 키스하기도 한다. 아예 19금 드라마인 ‘토치우드’에서는 또 다른 남성 등장인물과 애절한 로맨스를 연출한다. 이 역할을 맡은 배우 존 배로먼은 실제로 동성애자이며 기혼자이다.

한편, 같은 이야기에서는 몰래 동성 관계를 맺던 남자가 그 사실 때문에 협박받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먼 미래의 ‘뉴 지구’인들

등장: 뉴 시리즈 3-3화, ‘교통 정체(Gridlock)’

서기 50억 53년, 인류의 새로운 고향 행성 ‘뉴 지구’의 ‘뉴 뉴 뉴 뉴 뉴 뉴 뉴 뉴 뉴 뉴 뉴 뉴 뉴 뉴 뉴 뉴욕’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 고양이 얼굴을 한 수인 ‘브래니건’과 현대 인류와 같은 외모를 한 여성 인간 ‘발레리’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기도 한다. 아이들의 외모는 그냥 새끼 고양이다. 귀여워!

교통 정체에 갇힌 주인공을 돕기 위해 수인 ‘브래니건’은 ‘카시니 자매’를 찾는다. “잘 생긴 아가씨들, 자매분들”이라 그들을 부르자, ‘카시니 자매'(?)는 이렇게 따져 말한다. “이봐, 당신 벌써 알잖아, 우린 자매가 아니라 결혼한 사이라니까.” 이 말에 수인 ‘브래니건’이 보여주는 반응이 압권. “그런 현대적인 얘긴 하지 말아요, 난 구식 고양이란 말이야.”

알롱조 프레임

등장: 2008 크리스마스 스페셜, ‘저주받은 배의 항행(Voyage of the Damned)’

저주받은 우주선 ‘타이타닉’의 승무원. 끝까지 비극을 막기 위해 몸을 바쳤다. 닥터는 평소 말버릇인 “알롱지”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위기의 순간에 어쩐지 활기를 되찾고 세계를 구한다.

2009년 크리스마스 스페셜, ‘시간의 끝(The End of Time)’에서 다시 등장. 닥터가 침울해져 있는 캡틴 잭 하크니스에게 소개해준다(…)

로저 커비슬리

등장: 뉴 시리즈 4~7화, ‘유니콘과 말벌(The Unicorn and the Wasp)’

<아가사 크리스티 실종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에피소드. 아가사 크리스티를 포함해 여러 명사가 초대받은 파티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 로저 커비슬리는 파티를 연 에디슨 부인의 아들로,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도입부에서 하인과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얀토 존스

등장: 뉴 시리즈 4~12화, ‘도난당한 지구(The Stolen Earth)’

외계에서 유래한 초과학적인 기술을 탐구, 연구하고 이를 인류에 적용하며 외계인에 대응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일종의 특수 외계 대응 기관 ‘토치우드’의 멤버로 등장한다. 리더인 캡틴 잭 하크니스가 “바에서 군인을 한 사람 만났다”고 말하자 질투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캡틴 잭 하크니스는 일 때문이었다며 변명하기도.

멸망 위기가 닥치자 캡틴 잭 하크니스가 끌어안고 이마에 키스하기도 한다. 직접적인 애정 행각은 나오지 않지만, 연인 관계로 묘사된다. 대영제국 전연령 관람가 드라마의 위엄. 직접적인 애정 행각은 19금 스핀오프 드라마인 ‘토치우드’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미하일 케렌스키

등장: 2009년 11월 스페셜 에피소드, ‘화성의 물(The Water of Mars)’

동생 유리의 대사로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조지라는 남자와 동성 결혼한 인물. 동생 유리는 지구에 살고 있는 형 이야기를 하며, 그가 남편과 생일 선물을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생일 때 아무 것도 사지 않기로 합의하고서는 배우자의 신용카드로 최고급 차를 사버린 이야기. 이러면 생일 선물을 사준 게 아니라 그냥 차를 직접 산 셈이 된다나.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캔튼 에버렛 델라웨어 3세

등장: 뉴 시리즈 6-1, ‘불가능한 우주인(The Impossible Astronaut)’

전직 FBI 요원. FBI에서 쫓겨난 뒤 6주 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적인 요청으로 임무에 투입되고 닥터와 엮이게 된다. 그의 임무는 매일같이 대통령 집무실로 걸려오는 전화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 것. 이 과정에서 배후의 음모를 밝혀내고 전지구적 위기를 해결하는데 공헌하지만, 결국 당대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결혼을 원한 탓에 FBI에서 다시 떠나게 된다. 배우자가 흑인이냐며 그 정도는 관대히 받아들여줄 수 있다고 말하는 닉슨의 질문에 델라웨어가 아마 오바마 정도나 받아들일 수 있을 대답을 하는 장면이 압권.

한편, 닉슨은 닥터에게 “내가 역사에 기억될 것인가”를 질문하는데, 닥터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희망을 주는 대답을 하기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홀쭉이와 뚱뚱이

등장: 뉴 시리즈 6-7, ‘선한 이가 전장에 나서다(A Good Man Goes to War)’

위쪽 참고.

제니 플린트와 마담 바스트라

마담 바스트라(좌)와 제니 플린트(우)

등장: 뉴 시리즈 6-7, ‘선한 이가 전장에 나서다(A Good Man Goes to War)’

캡틴 잭 하크니스 이후 가장 비중있는 성소수자 캐릭터. 마담 바스트라는 고양이 수인에 이어 등장한 도마뱀 수인으로 정확히는 ‘실루리안’이란 종족. 범죄자 사냥꾼이다.

제니 플린트는 하녀 비스무레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미묘한 관계를 연출하다 이후에는 결혼한 사이로 등장한다. 뛰어난 무력과 더불어 추리력까지 갖고 있어 닥터 못지 않게 사태 해결에 일익하는 인물. 더불어 애정표현에도 숨김이 없다. 역시 전연령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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