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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서 패배한 한국 선수들은 왜 항상 죄송해 할까?

  • 입력 2016.08.10 11:37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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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구한 위대한 영웅과 국민에 실망감을 안긴 죄인, 그 극단적 위치를 오가야 하는 대한민국 스포츠 선수들이 올림픽과 같은 국제 경기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은 어쩌면 우리의 비뚤어진 스포츠 의식이 만들어 낸 자화상은 아닐까?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한창이다. 하지만 다른 올림픽에 비해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뉴스를 통해 관련 소식을 간헐적으로 접한다. '누가 메달을 획득했다', '누가 탈락했다' 정도를 듬성듬성 알 뿐이다. 언젠가부터 그랬다. 올림픽을 비롯한 여러 국가 단위의 스포츠 축제에 관심이 덜 간 지는. 과도한 국가주의에 대해 불편해서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방송 3사가 한꺼번에 나서 중계를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올림픽 중계가 전체적으로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걸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비단 혼자만은 아닌 듯하다.

ⓒSBS

죄송합니다.

지난 7일이었다. 어김없이 포털 사이트에는 올림픽 기사들이 기세등등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페이지를 이리저리 넘기다 지나칠 수 없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진종오 선수가 남긴 "죄송합니다". 10m 공기 권총에 출전한 진 선수는 최종 5위로 경기를 마쳤다. 그리고 언론과의 인터뷰를 사양한 채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준비했던 노력만큼의 결과를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일까. 뉴스 영상을 찾아봤다. 그는 경기 내내 계속해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경기가 끝난 후 진종오 선수는 모여있던 기자들과 카메라를 향해 "죄송합니다"라는 사과를 건네고 사라졌다. 그는 무엇이 죄송했던 것일까?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였을까, 아니면 국민이 기대했던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에 대한 것이었을까. 그리고 올림픽은 계속됐다. 누군가는 금메달을 땄지만, 거기엔 시선이 가지 않았다. 탈락, 패배, 고배라는 단어와 함께 언급된 이름만 기억에 남았다.

ⓒ연합뉴스

지난 9일 양국 남자 세계 1위 김우진 선수는 32강에서 인도네시아의 리아우 에가 아가타 선수에게 패배했다. 유도 남자 73kg급 세계 1위인 안창림 선수도 16강에서 벨기에의 디르크 판 티헬트 선수에게 져 탈락했다. 여자 유도 57kg급에 출전한 김잔디 선수도 16강에서 브라질 하파엘라 실바 선수에게 무너졌다. 두 선수는 진종오와 마찬가지로 "죄송합니다"만 남기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를 떠났다.

어째서 그들의 첫마디가 “(개인적으로) 아쉽다”가 아니라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여야만 하는 걸까.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들은 패배 앞에 마치 죄인이 된 듯한 모습이다. 물론 외국 선수들도 패배가 쓰긴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 그들은 “죄송하다”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개인적 패배에 안타까움을 표현할 뿐이다. 대한민국 선수들의 반응은 승리욕의 범위에서 설명하기 어렵다.

한편, 금메달을 기대했던 선수들의 잇따른 조기 탈락을 두고 언론은 "금메달 10개를 따내서 4회 연속 10위권에 드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빨간 불이 켜졌다"고 써낸다. 올림픽에서 국가의 목표를 설정하고 선수들의 개인적 성취를 국가의 것으로 귀속시키는 이와 같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여전히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올림픽의 순위를 국가의 경쟁력 순위쯤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목숨을 거는 행태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 정윤수 ‘스포츠칼럼니스트는 스포츠 국가주의와 가족주의’라는 칼럼에서 "우리나라의 스포츠를 주도하는 정념은 국가주의와 가족주의"라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김연아 선수를 '대한민국의 딸' 혹은 '우리 연아'라고 호명할 때, 국가주의와 가족주의는 한 몸"이라 설명했다. 올림픽을 국력 대결의 장으로 여긴다거나 민족(국가)의 우수성을 과시하려는 용도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세계의 여러 나라도 해왔던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 가족주의까지 결합한 양태는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흥미로운 것은 금메달을 획득하면 그때부터 대한민국의 아들, 딸로 호명되며 추앙받지만, 패배하는 순간 그들은 버려진 사생아(?)쯤으로 취급된다는 점이다. 나라를 구한 위대한 영웅과 국민에 실망감을 안긴 죄인 그 극단적 위치를 오가야 하는 대한민국 스포츠 선수들이 올림픽과 같은 국가 제전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은 어쩌면 우리의 비뚤어진 스포츠 의식이 만들어 낸 자화상은 아닐까? 그래서 진종오의 "죄송합니다"가 안창림과 김잔디의 "죄송합니다"가 송곳처럼 가슴을 후벼 판다.

마진찬 사회비평가는 '올림픽 시상식의 국기게양, 난 반댈세!'에서 "올림픽 시상식에서 국기게양을 반대"한다며 "국가를 대표하여 출전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시상식에서 국기를 게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승은 국가를 대표하여 출전한 '선수'가 한 것이지 해당 국가가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현 가능성은 요원하지만,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부디, 대한민국을 비롯한 모든 선수가 국가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고 즐겁고 신나게 승부에 몰입하고 승패를 즐기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부터 그들의 어깨에서 내려와야 한다. 유도 남자 66kg급 결승에서 이탈리아의 파비오 바실레 선수에게 패배해 은메달을 획득한 안바울 선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했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져서 속상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다. 올림픽은 축제이지 않나. 즐기려고 마음먹었다.

얼마나 보기 좋은가. 그의 패배는 지금 이 순간의 패배일 뿐, 인생의 패배도 아니고, 더군다나 국가의 패배도 아니다. 더 이상 패배를 직면한 선수들이 국민 앞에 사죄하는 일이 없기 바란다. 그들이 해야 할 말은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아쉽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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