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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외부세력이다

  • 입력 2016.08.01 10:47
  • 수정 2016.08.01 11:56
  • 기자명 비더슈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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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에 방문했다 군민들로부터 계란 세례를 받고 피신하는 황교안 총리 ⓒ민중의소리

세상은 요즘 딱 두 군데만 뜨거운 듯 보인다. 성주와 종편.

지난 13일, 사드(THAAD)의 배치 지역이 최종 공개됐다. 성주군이었다. 국방부는 설명단을 파견했지만 군민들의 저항은 거셌다. 국무총리가 직접 내려가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더 큰 반발만 불러일으켰다. 총리는 6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이같은 저항이 이어지는 사이, 종편은 성주에 ‘외부세력’이 침투해 있다는 투의 보도를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민주시민언론연합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7월 15일에서 21일까지 TV조선은 시사토크쇼와 뉴스 프로그램의 66.7%를 사드 관련 내용에 할애했다. 같은 기간 채널A는 79.2%를 할애했다. 거의 대부분의 방송이 사드 관련 내용으로 채워졌다고 보면 된다.

그 중에서도 이들은 주로 사드 반대 집회의 ‘외부세력 개입’ 여부에 집중했다. 소위 ‘전문 시위꾼’이 사드 관련 집회에 개입하고 있고, 이들의 주도로 폭력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성주 군민들의 상경 집회에 관해서는 “서울로 올라오시는 순간 여러분들의 순수성은 자칫 잘못하면 이용당하기 십상”이라며 섣부른 걱정을 섞기도 했다.

오보도 상당 부분 섞여 있었다. TV조선 <박종진 라이브>는 외부세력 개입을 말하며 화면에 문규현 신부의 얼굴을 띄웠다. 화면 아래에는 “문규현 신부 등 일행, 또 시민단체 시위 주도?”라는 자막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당일 문규현 신부는 서울 ‘평화통일을 여는 사람들’ 사무실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채널A <김승련의 뉴스 TOP10>에서는 이 외부세력을 '직업적 혁명투사'로 묘사하며, “(그 중) 과거 세월호 사건이라든가 광우병 사건 때 극렬시위를 해서 경찰병력들 죽이고 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 하지만 세월호 시위와 광우병 시위 과정에서 사망한 경찰은 한 명도 없었다. 명백한 허위사실이다.

손솔 민중연합당 공동대표가 성주에서 목격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손 대표는 당시 서울의 당사에 머물러 있었다. 이 또한 오보였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없이 채널A는 “친중, 친북적 부분에서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라는 전형적인 종북몰이를 이어갔다.

이처럼 오보까지 남발하며 시위 뒤에 특정한 목적을 가진 배후단체가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도 큰 문제지만, 이들 언론이 전제로 깔고 있는, '시위에 이해 당사자가 아닌 외부세력이 끼어드는 것은 위험하다'는 주장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생각해 보자. 지금껏 우리나라를 뒤덮었던 수많은 이슈들 가운데, 우리가 ‘외부세력’이 아니었던 경우는 얼마나 되는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사람 중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해당 역사교과서로 공부를 해야 할 학생들이나 국정 역사교과서에 등장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면 이 문제의 당사자라고 하기는 힘들 터다.

또 밀양 송전탑 논란 때는 어땠나. 송전탑이 건설되든 무산되든 그 부근에 살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은 별다른 고충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밀양 송전탑 건설에 대해 찬성 혹은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은 어땠을까. '당사자'라 할 만한 통합진보당 당원은 10만 정도였다. 하지만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을 얹었다. 당시 누구보다 통합진보당 해산을 강력히 추동했던 사람들은, 지금 성주의 '외부세력'을 경계하는 그 종편의 패널들이었다.

어떤 이슈에서 누가 외부세력인가를 찾는 논쟁은 대단히 소모적이다. 우리는 내 문제가 아닌 대부분의 문제에서 외부세력이다. 당사자만 참여하는 논의가 바람직하다면, 이 나라는 다른 사람의 일에 공감하지 못하고 연대하지 못하는 사람만 존재해야 하길 바라는가.

내게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이었다. 내가 아는 그 누구도 세월호에서 사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이 참사는 끔찍한 비극이었으며, 나아가 모두가 추모하고 슬퍼해야 할 일이었다. 수습의 과정에서 나타난 무능에 함께 분노해야 할 일이었다.

연대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다른 사람의 일을 나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 다른 사람의 일에 함께 공감하고 분노하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가치다.

우리는 모두 외부세력이다. 동시에 우리는 모두 외부세력이 아니기도 하다. 이 모든 것들은 당장 내 일이 아닐지라도, 곧 우리의 일이 된다. 우리가 직접 국정 역사교과서로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그 역사교과서로 공부한 아이들이 사회의 중추가 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날은 반드시 온다.

당장은 송전탑 피해 지역에 살지 않더라도, 언젠가 내가 그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 제대로 된 설득과 보상 없이 무작정 토건 사업만을 추진하려고 할 때 누구도 저항하지 않는 선례를 만든다면 그 다음 피해는 바로 우리의 몫이다.

통합진보당 당원이 아니었더라도, 정부의 주도로 어떤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쉽고 강력하게 위협할 수 있다. 당 지도부 몇 사람의 행위로 당 전체를 해산할 수 있는 판례를 만들었을 때, 과연 우리가 지지하는 다른 정당이 앞으로도 무사하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세월호에서 죽은 것은 내가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바다에서 구조되지 못한 채 죽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었고, 될 수 있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할 권리를 방기한다면, 그 배에 타고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그 피해자다.

사드 배치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드가 아무런 합의와 대화 없이 성주에 배치되었을 때, 다음번에는 우리의 집 앞에 그것이 놓일 가능성을 누가 배제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모두 사드의 피해자들이다. 그리고 설령 사드의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그들과 연대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이건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단순한 원리다.

설령 ‘전문 시위꾼’이 등장했다고 해도 이는 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허용한다. 어떤 시민이 현장마다 찾아다니며 집회에 참여한다고 해서, 그가 어떤 범법 행위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치인이 어떤 방법으로 정치를 하든 그것이 도덕적인 선을 넘지 않는 범위라면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네팔에 가든 안철수 전 대표가 사퇴를 하든 관여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직업이 있습니다. 시위전문가라는 직업입니다.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에서 진행자 김광일 씨가 한 말이다. 직업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종사하는 일을 말한다. 집회에 갔던 사람들이 어떤 대가를 받았는가. 무슨 이익을 취했는가.

시위를 업으로 삼고 대가를 받는 것이 ‘전문 시위꾼’이라면 일당 2만원의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그에 가까울 것이지, 성주에 모인 시민들은 아니다. 그들이 시위를 통해 금전적인 이익을 취했다는 증거가 드러나기 전엔 분명 그렇다.

외부세력이라는 이유로 시위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모두 이 사회에 대해 일정 정도의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다. 그 책임감과 의무감이 ‘집회와 결사’라는, 헌법이 보장하는 방식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동시에 우리는 모두 당사자들이다. 같은 국가와 사회의 틀 안에서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당사자들이다. 광장으로 나서는 건 연대인 동시에 곧 우리의 권리를 위함이다.

그러니 연대와 공감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 현장에 나가는 시민들을 단순히 ‘외부 세력’과 ‘전문 시위꾼’이라는 말로 매도할 수는 없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연대의식, 그리고 그들이 누리고 있는 집회와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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