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셧다운제 완화 정책이 헛발질인 이유

  • 입력 2016.07.28 10:28
  • 기자명 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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셧다운제 완화 정책은 딱히 셧다운제를 완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의 키워드는 <넛지>다. <넛지>는 이명박 정부 때 유명해진 책인데, 이명박은 <넛지>의 'ㄴ'도 이해하지 못한 양반이다.(<무소유>를 읽고 법정에게 난을 선물한 양반한테 뭘 기대하겠냐만은)

해당 책을 쓴 캐스 선스타인은 <넛지>를 통해 오바마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고, 오바마 행정부의 규제행정국의 수장으로서 <넛지>를 실행에 옮겼다. 일단 <넛지>가 무엇인지 설명을 한 뒤, 셧다운제 완화 정책이 왜 의미 없는 행정인지 썰을 풀겠다.

넛지(Nudge) : 행동 유도

nudge란 '(특히 팔꿈치로) 슬쩍 옆구리 찌르기'라는 뜻이다. 옆구리를 슬쩍 찔러서 행동에 변화를 유도하는 걸 넛지라고 한다. 당신이 마트에서 장을 마치고 계산을 할 때 껌이나 초콜릿 같은 값싼 요깃거리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도 그것을 구매하게끔 만드는 넛지이고, 우측통행을 가이드하기 위해 화살표 스티커를 바닥에 붙이는 것도 일종의 넛지고,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에 파리를 그려 넣어서 더 정확한 요격을 유도해 주위에 튀지 않게 만드는 것도 넛지의 일종이다. 그리고 이런 넛지의 도구로 자주 활용되는 게 디폴트인데, 디폴트는 꽤나 강력한 수단으로써 넛지를 성공으로 이끈다.

디폴트(Default) : 기본 설정 값

디폴트란 초기 상태를 일컫는다. 마침 내가 이 글을 쓸 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알송>을 켰는데 디폴트를 설명하기 위한 훌륭한 교보재가 떴다.

업데이트를 하겠냐는 물음에 ㅇㅋ하고 넘어가니 다음과 같은 창이 떴다. 이게 디폴트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묻는다면 이 글을 읽으시고, "이걸 모르는 사람도 있냐"라고 하실 분들은 이 부분을 넘겨도 좋다.

창을 보면 ‘체크 표시’가 되어있는 항목들이 보인다. 그리고 체크 표시가 되어있지 않은 항목도 보인다. 지금 저 창의 어떤 버튼도 나는 손을 대지 않았다. 지금의 상태가 최초의 상태, 디폴트 상태다.

그러면 여기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왜 어떤 항목에는 체크가 되어있는데 어떤 항목에는 체크가 되어 있지 않나? 체크된 항목들과 체크되지 않은 항목들을 보면 이것은 명백해진다.

체크된 항목

업데이트 완료 후 제품 실행하기

제품 실행 아이콘 만들기(바탕화면에 실행 아이콘 만들기, 시작 메뉴에 실행 아이콘 만들기 등)

티몬 - TMON 제휴 서비스 추가

zum을 홈페이지로

체크되지 않은 항목

7일 동안 안 보기

많은 사람들이 디폴트 상태에서 딱히 변화를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체크된 항목들은 체크된 대로 설치되고 체크되지 않은 항목도 마찬가지로 기능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알툴즈는 티몬을 제휴 서비스로 추가하고 zum을 홈페이지로 하는 항목이 디폴트로 체크가 되어있게끔 설정한 것이다.

반면에 체크되지 않은 항목은 ‘기왕이면 체크하지 말아라’라는 뜻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알툴즈는 광고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싶은데 사용자가 ‘7일 동안 안 보기’를 선택하면 알툴즈는 광고를 보여줄 수 없고, 사용자는 광고에 노출되지 않게 된다. 이쯤 되면 디폴트가 얼마나 의도적으로 구성되는지는 충분히 설명이 되었을까? 그렇다면 아래의 캡쳐 사진들을 보고 각 회사의 의도를 파악해보시라. 아래의 설정 값들은 모두 디폴트 상태다.

체크되어 있는 항목은 ‘옵트아웃(Option-out, opt-out)’된 것이다. 사용자는 zum을 홈페이지로 만들기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할 필요가 없다. 즉 zum을 홈페이지로 만드는 것은 옵션에서 아웃되어 있는, 사전 동의가 된 상태다.

만약 디폴트 상태에서 zum을 홈페이지로 만드는 체크박스에 체크가 되어있지 않았다면 이는 ‘옵트인(Option-in, opt-in)’된 것이다. zum을 홈페이지로 만들 것인지는 사용자가 선택하면 되는 부분으로 사전 동의가 되지 않았다.

디폴트의 강력한 힘

디폴트, 이미 정해진 상태는 생각보다 굉장히 강력하게 기능한다. 리더스북 출판사에서 나온 <넛지>의 일부를 아래에 인용해보겠다.

"우리는 에릭 존슨과 댄 골드스타인이 수행한 중요한 실험을 통해 이러한 영역에서 디폴트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들은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장기기증 의향이 있는지 여부를 물었다. 명시적 승인 조건에서는, 장기를 기증하지 않는 것이 디폴트 옵션으로 설정된 주로 막 이주했으며 이러한 상태를 승인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는 상황이 주어졌고, 승인 추정 조건에서는 다른 것은 모두 동일하되 장기를 기증하는 것이 디폴트 옵션으로 설정된 상황이 주어졌다. 마지막으로 중립적인 조건에서는 디폴트 옵션이 언급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해야 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세 조건 모두에서 말 그대로 한 번의 클릭만으로 의사를 표시할 수 있게 했다.

이제 당신도 예상할 수 있겠지만, 결정적인 변수는 바로 디폴트였다. 옵트인으로 장기기증 여부를 선택하게 한 경우 장기기증에 동의한 사람은 42%에 불과했지만, 옵트아웃을 적용한 경우에는 82%가 장기를 기증하는 데 동의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중립적인 조건에서도 거의 동수의 사람들(79%)이 장기기증에 동의했다는 사실이다."

"법이 승인율에 미치는 효과는 엄청난 것으로 드러났다. 비슷한 두 국가, 즉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승인율을 비교해보면 디폴트 법칙의 위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옵트인 시스템을 사용하는 독일의 경우 장기기증에 동의한 국민은 12%에 불과했던 반면, 오스트리아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99%)이 동의했다."

<넛지>, 281p.

글이 쉬우므로 굳이 부연하지 않겠다. 인용문을 읽어보면 디폴트가 정해지면 많은 이들이 디폴트된 상태를 딱히 바꾸지 않고, 디폴트된 환경을 따라간다는 걸 알 수 있다. 장기기증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디폴트는 인류가 있는 어느 곳에서 건 강력하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매달 몇천 원씩 지불하게끔 하는 휴대폰 서비스도 디폴트다. 많은 이들은 얼마든지 그럴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정해진 상태를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휴대폰을 개통할 때 계약했던 서비스를 해지하지 않고, 그 소비자들의 '게으름' 덕에 통신사는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넛지>는 행동심리학을 베이스로 삼는데, 행동심리학은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이 '합리적인 인간'을 전제로 삼는 것과 달리 '비합리적인 인간'을 전제로 삼는다. 그리고 비합리적인 인간은 쓰지도 않는 서비스를 위해 매달 금액을 지불한다.(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에버노트가 프리미엄 결제가 자동으로 갱신되게끔 하는 것, 애플이 아이클라우드 갱신이 자동으로 되게끔 하는 것도 다 같은 이유다. 매달 일일이 갱신되게끔 해 놓으면 사람들이 안 한다. 그래서 한편으론 디폴트가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시켜주기도 하지만, 소비자의 편의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셧다운제 완화의 의미

셧다운제는 특정 나이 때의 사람들이 특정 시간에 인터넷 게임을 하지 못하게 셔터를 닫는 제도다. 이는 청소년 보호법 제26조(심야시간대의 인터넷 게임 제공시간 제한)에 명문화되어 있다.

청소년 보호법 제26조(심야시간대의 인터넷 게임 제공시간 제한)

① 인터넷 게임의 제공자는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 게임을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

문화와 체육과 관광을 담당하는 해괴망측한 조직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과 가족을 위한다지만 딱히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습은 여성과 가족을 위하지 않으며 최근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까지 질 나쁜 거짓말(링크)을 친 여성가족부는 게임을 진흥하겠다면서 셧다운제를 완화시키겠다고 했다. 지금의 강제적 셧다운제를 부모선택제(선택적 셧다운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정작 셧다운제의 당사자인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이 셧다운제에 관여할 수 없다는 문제는 이 글에서 지적하지 않겠다. 이 글은 인권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단, 얼마나 문체부와 여성부의 셧다운제 ‘완화’가 전시행정이라는 점을 밝히는 글이니까. 내 입장을 밝히자면 나는 셧다운제가 청소년에 대한 인권침해라 여기며 셧다운제를 완전히 폐기 처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택적 셧다운제 하의 디폴트

A안: 문체부, 여가부의 선택적 셧다운제, 셧다운제가 옵트아웃 Opt-out인 상황

선택적 셧다운제 하에서 디폴트는 셧다운제로 인해 이미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당신이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의 부모라면, 이렇다 할 선택을 하지 않아도 당신 자식은 셧다운제 하에 놓여있다. 즉 셧다운은 옵트아웃 상태다. 당신의 자식을 셧다운제 하에 놓기 위해 해야 될 건 아무것도 없다. 셧다운제를 지지하는 부모들은 이 안을 좋아할 것이다.(강제적 셧다운제를 더 좋아할 테지만)

B안: 다른 방식의 선택적 셧다운제, 셧다운제가 옵트인 Opt-in인 상황

반대로 디폴트를 셧다운제에 의해 제재받지 않는 상태로 한다면, "내 자식은 셧다운제를 받게 하겠다"라는 선택을 해야 당신의 자식이 셧다운제의 당사자가 되게 된다. 즉, 당신의 자식을 선택적 셧다운제에 놓이게 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셧다운제를 지지하는 부모들은 이 안을 싫어할 것이다. 할 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많은 이들은 디폴트 상황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셧다운제는 그다지 완화되지 않을 거다. 그 점에서 문체부와 여가부의 안은 ‘뻥구라’다.

의사표현 절차의 복잡성

현재 문체부와 여가부안에 따르면 부모가 "내 자식은 셧다운제 필요 없다"라고 의사를 표시해야 청소년이 셧다운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다시 아래 사진을 보자.

사용자가 티몬을 제휴서비스에 추가하고 싶지 않다면 그저 간단하게 클릭을 한 번만 하면 된다. 이는 굉장히 단순하고 편리한 시스템이다. 이런 편리한 시스템이 구축되어있을 때, 의사표시를 하는 자의 의사가 정확하게 현실에 반영될 수 있다.

아직 어떤 식으로 선택적 셧다운제가 디자인될지는 정부 당국이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 여기서 알 수 없는 건 부모가 어떤 식으로 "내 자식은 셧다운제 필요 없다"라고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지다.

부모 선택제가 간단치 않은 이유는 여기에 꽤나 많은 당사자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일단 부모와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 그리고 게임사가 엮여 있다. 관련 서류를 행정부가 떼어주므로 행정부도 여기에 엮이게 된다. 즉 선택적 셧다운제에는 4개의 당사자들이 엮여 있다.

일단 부모는 자신이 해당 학생의 부모라는 걸 입증해 보여야 하므로 가족관계증명서 등으로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1). 여기서부터 일단 짜증이 치솟는다. 티몬 제휴 서비스를 거부하는 건 클릭 한 번이면 되는데, 가족관계증명서를 인터넷에서 얻으려면 오직 Internet Explorer를 통해 ActiveX를 비롯해 온갖 것들을 설치해야 되고, 인쇄를 하거나 다운로드할 때도, 온갖 해괴한 프로그램들을 설치해야 한다. 아, 리눅스랑 맥으론 또 안 된다.(심지어 오프라인으로 발급받으려면 1,000원도 내야 한다.)

고난의 행군을 거쳐 가족관계증명서를 얻어내면 이것을 게임사에 전달해야 한다(2). 서류를 게임사의 이메일로 전달하거나, 게임사가 구축해놓은 시스템을 통해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하게 될 테다. 그리고 다른 게임사에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자식을 셧다운제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게다(3).

한편, 부모가 게임사를 거치지 않는 방식도 가능하다. 부모는 정부에 "내 자식은 셧다운제 필요 없다"라는 의사표현을 한다. 물론 이 의사표현을 위해서도 가족관계를 증명해야 될 테고(1) 이를 위해 앞서 언급한 온갖 뻘짓을 다 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부모의 의사를 파악해내면, 이를 게임사 등에 전달한다. 이런 디자인은 차라리 부모에게 편하다. 각각의 게임사에게 일일이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절차가 간소화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런 식으로 의사표시를 할 수밖에 없으니까 문체부나 여가부가 셧다운제를 완화한다고 해 봐야 딱히 이렇다 할 실효가 있을 리 만무하다. 너무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디폴트가 강력하게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티몬과 제휴하지 않기 위해선 클릭 한 번만 하면 되는데, 자식을 셧다운제로부터 해방시켜주기 위해선 셀 수 없이 많은 클릭들을 해야 한다. 부모들이 그 절차를 성공적으로 뚫을 수 있을지부터 의심이 든다.

게임을 진흥하려면 게임 소비자의 시각으로 사안을 봐야 한다

게임을 진흥한다고 했으면 게임 소비자의 시각에서 사안을 바라봐야 하는데, 꼰대의 마인드로 게임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 허접한 전시행정을 하는 거다. 애초에 게임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셧다운제를 ‘완화’할 게 아니라 철폐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딴 식으로 게임하는 사람들의 선택권을 제약해버리면 게임이 무슨 수로 진흥할 수 있겠나? 야밤에 게임을 하는 건 유저들의 선택에 맡겨놔야 하고, 설사 부모가 제약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이는 가정의 일로 두어야지 정부가 간섭할 일이 아니었다.

부모들이여 걱정 마시라. 셧다운제는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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