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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흔들렸으면, 그래서 달라졌으면

  • 입력 2016.07.25 13:35
  • 기자명 비더슈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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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집니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국민을 지켜내기 위해 해야 할 것은 최선을 다해 지켜낼 것입니다.”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안전보장회의 발언, 2016년 7월 21일

청와대는 요즘 안팎으로 시끄럽다. 내부의 분위기야 정확하게 파악하긴 무리지만, 이런 정국에 분위기가 좋을 수 없다.

우선 사드(THAAD) 문제가 있다. 갑작스럽게 발표된 사드 배치에 중국이 발끈했다. 사드 배치 지역 발표 후 성주 주민들이 화가 났다. 여러 차례 정상회담을 하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상당히 우호적이었던 중국, 지난 대선 박근혜 대통령에게 86%의 표를 몰아줬던 성주. 이 미묘한 관계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도 덮쳤다. 얼마 전 진경준 검사장은 게임 회사 넥슨과 연관된 뇌물 수수 비리로 구속 수감됐다. 우 수석도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는 중이다. 단순한 비리를 넘어, 정부 권력기관 곳곳에 ‘우병우 사단’이 포진해 있어 문제가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내의 갈등도 빼놓을 수 없다. 친박 핵심 인사였던 윤상현, 최경환 의원이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었다는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공개됐다. 친박계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다. 다가오는 전당대회에선 비박계의 낙승이 예견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계산도 복잡해졌다.

앞서 소개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상황에서 등장했다.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 흔들릴 것 같은 상황에서, 흔들려야 마땅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흔들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경향신문

정말 그럴까?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지는 걸까?

대통령은 민주적 절차로 국민 다수에게 선택된 사람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51.6%라는 지지율을 등에 업고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 선출 당시, 투표율이 반등해 75%를 넘겼다.

유권자의 4분의 3이 투표한 선거에서 절반 이상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게 현재의 박근혜 대통령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부정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전임 대통령과 비교해 보면 훨씬 명확해진다. 대통령직선제 시행 이래 과반수 득표로 당선된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하다. 노태우 대통령은 36%라는 초라한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위와의 격차를 20% 넘게 벌렸지만, 투표율은 60% 선에 그쳤다. 박근혜 대통령은 투표율과 지지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당선자다.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끌어갈 국정을 신뢰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본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국정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설령 반대 의견에 부딪히더라도 소신껏 국가를 이끌어나갈 권리가 있다. 탄핵 소추나 국민투표처럼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제한되지 않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51.6%의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로 그 권한을 주었다.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이다.

분명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국민도 있을 거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고 사드를 배치하고 큰 역할을 못 하다 결국 “고심 끝에 해체”하는 방식에 동의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또한, 잦은 해외 순방이, 국회를 무시하는 태도가 불편할 수도 있다. 이럴 때 국민은 얼마든지 비판을 할 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필요할 땐 집회도 할 수 있다. 국민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리도 크다. 법률이 제한하는 범위 안에서 원하는 방식대로 국가를 이끌어나갈 권리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선을 넘지 않는 한, 자유로이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을 지닌다. 따라서 사드 배치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다. 대통령은 행정 각부에 대한 통솔권을 지닌다. 따라서 특정 조직을 해체하고 개편할 수 있다.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이다. 따라서 교과서의 발행 체제를 개편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한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해외 순방을 할 수 있다. 대통령은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국회에서 제출한 법을 폐기할 수 있다. 단, 국회가 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헌법에 규정된 바에 따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 이를 무력화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임의로 박탈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한 표의 가치가 소중하고 유권자의 책임이 중대하다.

다시 앞선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려 보자.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집니다.” 대통령의 말처럼 대통령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때로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의 뜻을 표해도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에서 오는 규제가 아니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소신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 정당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의견이 대통령을 함부로 흔들면 원칙이 설 땅이 사라진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자리가 무거운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자리가 무거운 것은 꼭 그 자리가 가지고 있는 권리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은 그 권리만큼이나 막중한 의무를 지고 있다.

민주주의적 절차에 따라 선임된 대통령은 민주주의적 원칙을 수호할 의무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장에서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언했으며, 그 헌법은 첫머리부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선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합의와 설득이다. 대화와 소통이다. 언급했듯 박근혜 대통령은 원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 때로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사안이라도 대통령의 권한 안에서 밀어붙일 힘이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과의 소통은 필수적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이 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몇 번이나 기자회견을 했는가? 기자들의 ‘자유로운’ 질문을 받은 것은 몇 번이나 되는가? 국민의 의견을 직접 듣겠다고 시도한 일은 있는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국민은 어떻게 대했는가? 공권력의 진압 과정에서 쓰러져 중태에 빠진 농민은 기억이나 하고 있는가? 국가의 부재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들어본 적 있는가? 소통과 합의의 기술이 없다면, 대통령은 차치하고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인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는 것 역시 대통령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헌법 66조는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밝힌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종종 헌법과 법률을 지키지 않는다. 개성공단 폐쇄가 대표적이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은 개성공단의 가동 중지를 위해서는 통일부 장관이 관계 행정기관장과 협의해서 결정해야 하고, 반드시 청문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가동 중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 심지어 청문도 하지 않았다.

지난 총선 때는 대구 등 각지에서 사실상 선거 지원 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7.30 재보궐 선거 당시 나경원 후보에게 “꼭 승리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선거법을 넘어 헌법 위반 사항이다. 탄핵까지 가능하다. 본인도 이 사안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소추한 바 있지 않았나.

국회를 무시하는 듯한 모습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국회의원은 헌법상 권리와 의무가 보장된 헌법기관이나 다름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행정권을 통솔하며, 국회가 통솔하고 있는 입법권과는 별개의 권력이다. 삼권분립의 원칙은 민주주의 국가 운영의 기초다. 대통령은 국회를 존중하고 협력하며 국가를 운영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기초적인 내용을 놓칠 때가 많다. 국회법 파동, 유승민 원내대표 축출, 직권상정을 위한 국회의장 압박, 꾸준한 국회 비판과 ‘세비 반납’ 요구까지. 어떨 때는 입법부에 대한 행동이 지나쳐 보인다.

‘문고리 권력’ 논란은 또 어떤가. 대통령은 본인과 함께 공적인 일을 담당하는 참모진을 투명하게 공개할 의무가 있다.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이력을 밟아 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알려야 한다. 장관이나 총리에 청문회가 괜히 열리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참모진 운용은 집권 초기부터 비판을 받았다. 직접 기초연금 공약을 설계한 진영 전 복지부 장관은 정부의 일방적인 공약 파기로 결국 사퇴해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왔다.

‘7인회 논란’이나 ‘정윤회 파문’,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 논란’ 등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참모진이 내각 위에 군림한다는 의혹이 임기 내내 이어졌다. 현재 문제가 되는 우병우 민정수석 역시 ‘문고리 권력’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합법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통해 선임되지 않은 이들이 국정 운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은 정부의 운영 메커니즘이 원칙과 국민의 신뢰와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주의 사회가 합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민주주의 사회가 합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의무 역시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반대하는 시민에게 차 벽으로 화답하는 정부, 소통의 의무는커녕 집회에 나선 국민을 억압하는 정부, 최소한의 헌법과 법률마저 어기는 정부, 그리고 삼권분립의 원칙조차 지키지 못하는 정부. 박근혜 대통령은 바로 이런 정부를 이끌고 있다.

의무 이행 없이 권리만을 주장하는 정부가 국민 앞에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권리에 정당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걸까?

그런 의미에서라면 오히려 대통령은 흔들려야 한다. 헌법과 법률을 눈치 봐야 한다. 정당한 절차를 고수해야 한다. 민주주의적 원칙을 수호해야 한다. 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무에 의해서 흔들려야 한다.

어느덧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3년 반 정도 흘렀다. 임기가 종료되는 2018년 2월 24일까지 1년 반 정도의 기간이 남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임덕이 바람이 불 것이고,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 사실상 대통령으로서 특정 사안을 추진하기 벅찰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사실상의 임기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리에 서 있다.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으로서, 박근혜 정부가 국가를 잘 꾸려가 주길 바라는 건 무리일까? 이제 남은 짧은 임기 동안이라도 의무와 권리를 함께 지길 바라는 것 말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고 말한다. 소신껏 운영한 국정이 이렇게 된 걸 보니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럴 바엔 차라리 흔들렸으면 어떨까, 흔들리면서 국민의 목소리에 의지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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