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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서만 할 수 있는 '포켓몬 고', 불편하시죠?

  • 입력 2016.07.19 11:40
  • 수정 2016.07.19 11:51
  • 기자명 20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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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지방에 대포켓몬 시대가 열렸다며?

어린 시절, 내게 포켓몬은 단순한 만화가 아닌 생활이었다. 불꽃이 꺼지면 죽고 마는 파이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우의 모습은 스무살이 훌쩍 넘은 지금도 아직도 추억 한 켠에 찡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누구나 가슴에 포켓몬 한 마리쯤 품고 있던 우리들에게, 스마트폰과 어플만 있으면 트레이너가 될 수 있는 시절이 왔다.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하지만 지도 공개 문제로 한국에서는 포켓몬GO가 정식 서비스 되지 않는다는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모든 트레이너 유망주들이 좌절하던 그 순간, 북한과 함께 'NR15-ALPHA-12' 구역으로 묶인 속초 등지의 관동지역에는 포켓몬이 출몰한다는 소식이 추가로 들려왔다. 바야흐로 '속초마을'의 탄생이었다.

속초마을 개장과 함께 매진된 고속버스들

속초와 같은 이유로 서비스 지역에 포함된 울릉도에도 포켓몬이 서비스됐다. 꼬부기로 울릉도 체육관을 점령한 포켓몬GO 유저는 "울릉도가 이리 문화의 혜택을 받은 건 섬이 생긴 이후 처음"이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포켓몬으로 하나된 우리는 모두 관동지방을 부러워하면서, 어서 이 게임이 자기 지역에도 서비스되길 바라고 있었다. '서울'을 동경하던 학창 시절의 내 모습처럼.

소녀시대를 동성로에서 볼 수 없다는 것

고등학생 시절, 고향에서 ‘금발이 너무해’라는 뮤지컬을 관람한 적이 있다. 기말고사도 며칠 남지 않았을 때였고, 10만원에 가까운 관람료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몇 주치 용돈을 모아 기어코 표를 샀다. 무려 소녀시대의 제시카가 출연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절박하게 했던 것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라는 생각이었다.

광역시 급의 도시였음에도 유명 가수를 보는 것은 흔한 기회가 아니었다. TV 광고 속의 그 수많은 축제와 내한 가수의 공연은 모두 서울에서만 열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생해서 본 ‘금발이 너무해’는, 아쉽게도 매우 별로였다. 애초에 다양한 선택지에서 원하는 작품을 고른 것이 아니므로 그럴 수밖에.

그래도 제시카는 예뻤다. 누나 여전히 사랑해요...

대학생이 된 후 그렇게 바라던 서울에 왔다. 그동안의 한을 푸는데 한 학기를 쏟았다. 대학로에 가서 소문으로만 듣던 연극을 관람했고, 홍대에서 수시로 열리는 버스킹을 즐겼다. 지하철로 20분 거리에 있는 예술의 전당에서 첼리스트의 내한 공연을 관람했다. 요요마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내가 뉴스에 나오던 공간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조금 시간이 지났다. 지난 학기 학교 강당에는 어쿠스틱 콜라보라는, 평소 즐겨 듣던 가수가 왔었다. 하지만 다음날 있는 퀴즈 공부를 위해 그들의 음악을 들으러 가지 않았다. 언젠가 서울의 다른 곳에서 또 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컸다. 고향에서라면 아마 기말고사를 제쳐두고라도 공연에 참가했을 텐데. 어느새 ‘문화생활’은 내 삶에서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잡고 있었다.

한 도시도 아니고 한 지역에 이렇게나 많은 문화시설이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더군다나 굳이 내가 찾아갈 것도 없었다. 축제에는 김창완 밴드가 왔고, 학과에서는 황동규 시인을 초청했다. 나는 그냥 편의점 도시락을 고르는 마음으로 가기만 하면 됐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큰 돈과 시간,정성을 들여야 겨우 볼 수 있던 문화컨텐츠가, 이미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었던 것이다.

포켓몬을 원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것처럼

0과 1로 이루어진 가상 이미지인 포켓몬을 잡기 위해 휴가까지 내고 속초로 달려가는 회사원을 보면서, 그렇게나 좋아하던 매점 라면을 포기하고 ‘금발이 너무해’를 보러 갔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참고로 그 즈음 연예가중계에서는 소녀시대 홍대 게릴라데이트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

대구 동성로에도 소녀시대가 올까? ⓒKBS '연예가중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문화 격차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연을 못 보고, 음악을 못 듣는 것이 당장 굶어죽는 일도 아닌데 웬 유난이냐고 말한다. 정 억울하면 서울에 오면 될 일이 아니냐는 말도 서슴없이 날아온다. 너무도 당연한 문화생활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쉽게 접근하기 힘든 특별하고 절박한 일임을 몰라서 하는 말일 것이다.

앞으로도 속초에서만 포켓몬을 잡을 수 있고, 파이리는 낙산 해수욕장에서만 나타난다고 상상해보자. 포켓몬을 사랑하는 전국의 트레이너들에게 재앙같은 소식과도 같을 것이다. 그런 심정을 지방의 어떤 누군가는 언제나 현재진형형으로 느끼고 있다. 아주 가끔씩 돌아오는 전국 순회공연을 기다려면서, 조금만 더 자주 질 좋은 문화 콘텐츠가 방문해주시길 간곡히 기다리면서.

원문 : 20's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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