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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사퇴가 무책임한 이유

  • 입력 2016.07.02 15:38
  • 수정 2016.07.02 15:45
  • 기자명 비더슈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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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


지난
29, 국민의당 회의장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안철수 대표가 자신의 거취 문제를 다루겠다고 말한 최고위원회의가 9시에 예정되어 있었다. 회의는 한 시간 미뤄져 10시에 시작됐다. 회의가 열리자마자 안철수 대표는 비공개를 선언했다.
회의장 안에선 격론이 오갔다. “그러시면 당이 와해됩니다라는 김영환 사무총장의 발언이 문 밖으로 새어 나왔다. 결국 몇몇 최고위원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긴장감이 고조됐다. 잠시 후 회의장 문이 열렸고, 안철수, 천정배 두 공동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곧 박지원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사퇴 이유는 명확했다. 리베이트 의혹이었다. 김수민 의원으로부터 시작된 리베이트 의혹으로 왕주현 사무부총장이 구속되고, 안철수 대표의 최측근인 박선숙 의원이 부패 혐의를 받는 상황이 발생했다. ‘새정치를 외치며 당을 만들었던 안철수 대표로선 치명적인 일이었다.



ⓒMBC


안철수 대표는 이번 리베이트 의혹에 대해 네 차례나 사과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김수민 의원을 고발한 뒤에 첫 사과를 했고, 자체 진상조사 결과 발표가 나온 뒤에 두 번째 사과를 했다. 박선숙 의원이 검찰에 소환되자 세 번째 사과를 했고, 왕주현 사무부총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네 번째 사과를 했다.

부정부패 사건으로 검찰에 기소되기만 해도 당원권을 정지하겠다.

무죄추정의 원칙 위반과 검찰의 정치개입 가능성이라는 비판을 뿌리치고 안철수 대표가 관철시킨 당헌·당규의 내용이다. 하지만 당헌·당규의 엄중한 적용과, 당대표의 사과만으론 부족했던 모양이다. 안철수 대표는 결국 대표직을 내려놓고 평의원 신분으로 돌아갔다. 사퇴하는 안철수 대표가 제시한 가치는 분명했다. 책임. 안철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일에 관한 정치적 책임은 전적으로 제가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내려놓겠다.

안철수 대표는 무슨 책임을 진 걸까. 또 안철수 대표는 사퇴를 통해 대표로서의 책임을 진 걸까. 당대표라는 지위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안철수 대표는 이번 리베이트 의혹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았다. 고발 주체인 선관위도, 수사를 하고 있는 검찰도 안철수 대표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안철수 대표가 지겠다는 책임은 피의자로서의 책임은 아니다. 그가 지겠다는 책임은 당대표로서의 책임이다.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당을 잘 관리하지 못했다는 책임과, 당에 소속된 사람들을 잘 이끌지 못했다는 책임, 그리고 당의 부정부패를 잘 감시하지 못했다는 책임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안철수 대표는 그 정도의 책임감을 느꼈어야 했으며, 실제로 아주 적절한 수준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책임을 지는 방식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사퇴였다. 그는 국민의당 대표직을 내려놓는 방식으로 책임을 졌다.
여기에 대해서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책임을 지는 시점에 대한 문제다.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은 말 그대로 아직 의혹이다. 언급했듯 당의 사무부총장은 구속됐고, 당에 소속된 두 의원이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고 있긴 하지만 현시점에서 이들이 부정부패를 저질렀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검찰은 사건을 계속 수사하고 있으며 이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은 아직 없다. 고로 재판을 받은 사람도 없다. 유죄를 선고 받은 사람도 당연히 없다. 이것은 안철수 대표가 자주 무시하는 헌법정신에 대한 문제다. 모든 사람은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 받기 전까지 무죄라고 추정된다. 고로 김수민 의원도, 왕주현 사무부총장도, 박선숙 의원도 아직 무죄다. 그들이 구속되었거나, 얼마만큼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는지는 유·무죄 여부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만일 이 사건으로 누군가가 유죄 선고를 받았다면 안철수 대표는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어쨌든 당 안에서 범죄가 발생한 것이고, 그 당을 이끌던 리더는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지금인가. 아직 모두가 무죄인 상황에서, 안철수 대표는 무엇에 대해 책임을 진 것인가.
물론 법적 책임과 도의적 책임의 영역은 다를 수 있다.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이 없더라도 도의적 책임을 질 수는 있다. 하지만 도의적 책임은 도의적 영역에서 져야 한다. 당에 소속된 사람이 부패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당대표직을 내려놓는 건 도의적 영역을 넘어선다. 이렇게 도의적 책임을 공적 영역에서 지는 건 잘못됐다.
정치적 관행이 이런 방식으로 형성되면 대단히 위험하다. 만약 최종적으로 누구도 유죄 선고를 받지 않는다면 안철수 대표는 누구를 위한 책임을 진 것일까. 그때는 오히려 검찰의 수사에 놀아났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기소됐다는 사실만으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면 사법부는 필요 없다. 책임은 누군가가 유죄 선고를 받았을 때 져도 늦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가 가장 적절한 시점이다. 이런 식으로 검찰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주는 일은 안철수 대표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그렇다면 안철수 대표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고민해봐야 할 두 번째 지점이다. 설령 누군가 유죄 선고를 받았더라도, 당대표직을 사퇴하는 방식으로 책임지는 행위는 적절한가.
그는 국민의당 대표다. 당을 이끄는 사람이다. 만약 당에 소속된 사람이 부정부패에 연루됐다면, 당대표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이것은 안철수 대표의 리더십 철학과도 이어지는 것으로, 잠재적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그에게는 특히 중요한 문제다.



이상돈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 진상조사단장 ⓒMBC


우선 그런 일이 정말로 있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다
. 국민의당도 그렇게 했다.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고,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조사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진상조사위는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사건 당사자 세 명을 만나지 않았다. 다른 부분은 말할 것도 없다. 조사는 사흘 만에 종결됐다. 당대표가 제대로 진상을 파악하고 있었을 리가 없다.
자체적으로 확실한 조사를 마쳤다면, 사건을 수습하고 대응을 해야 한다. 유죄라는 판단을 내렸다면 절차에 따라 당내에서 내릴 수 있는 수준의 징계를 내려야 할 것이다. 무죄라고 판단했다면, 당 차원에서 검찰 수사에 대응하며 진실을 알렸어야 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무엇을 했는가? 안철수 대표는 대표로서 무엇을 했는가? 애초에 진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니 누구를 징계해야 하고 어떤 진실을 알려야 하는지도 몰랐다. 공식적인 당내 징계 절차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으며, 박지원 의원이 당사자에게 개인적으로 자진 출당을 권유했다가 거절당한 것이 전부였다.
대표로서 당 차원의 징계도 내리지 못했다. 검찰 수사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대표 두 명은 대표직 사퇴라는 결정을 내렸다. 사건 수습과 대응은 이제 꾸려질 비상대책위원회와 차기 대표진의 책임으로 넘겨졌다.
만약 안철수 대표에 대한 당의 신뢰가 무너졌다면 그는 자리를 떠나야 한다. 정통성 없는 리더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하지만 여전히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당의 정체성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이 당대표로 있을 때 벌어진 모든 일을 확실히 수습한 뒤에 사퇴했어야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서 사퇴라는 명분만 쌓는 것은, 그가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을 오히려 저버리는 일이다. 결국 국민의당에는 수습할 수 없는 혼란만 남았으며, 사건에 대한 대응은 완결되지 못했고, 아무도 무엇이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첫 번째 '철수 정치'로 꼽히는 2011년 서울시장 후보 사퇴 ⓒYTN


안철수 대표의 정치에는 언제나
철수 정치라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명확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고 늘 자리를 떠나는 식의철수(撤收)’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야말로철수 정치의 민낯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표로서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누구의 유죄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이 강도 높은 수사를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가 직접 만든 정당임에도 안철수 대표의 행동에선 어떠한 책임감도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부정부패라는 불리한 이미지를 빨리 떼어내고 싶어서 그랬을까. 안철수 대표 개인의 지지율도, 국민의당의 지지율도 사건이 벌어지는 내내 폭락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치란 그런 숫자 놀음이 아니다. 누가 위기 상황을 더 잘 관리할 수 있고, 누가 헌법정신을 존중하고 있으며, 누가 정확한 시점에 제대로 된 책임을 질 수 있는가는 지금 당장 숫자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 대표는 명실상부한 차기 대권 주자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리더십이, 대한민국을 총괄하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적합한지는 의문이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검찰이 측근 한 사람을 수사한다고 해서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리더로서의 책임은 후퇴보다는 전진으로 져야 하는 법이다. 안철수 대표는 이번에도 본인의 치명적인 약점 하나를 노출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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