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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왜 '위안부 진실 알리기' 예산을 깎았을까?

  • 입력 2016.06.27 17:35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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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정부가 어떤 사업에 예산을 배정했다는 건, 그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목표를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정부가 어떤 사업의 예산을 삭감한다는 건, 그 일에서 '발을 빼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따라서 정부의 예산안을 꼼꼼히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국민의당 박주선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2017년 예산안에는 의심스러운 예산 삭감 내역이 눈에 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 및 기념사업' 예산 41억 6,500만원 → 28억 6,600만원
'민간단체 국제공조활동 및 기념사업 지원' 예산 6억 5,000만원 → 3억 5천만원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 추진' 예산 4억 4,000만원 → 0원
'교육콘텐츠 제작' 예산 2억원 → 0원
'국제학술심포지엄' 예산 1억원 → 0원
'일본군 위안부 국외자료 조사' 예산 3억원 → 0원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 및 기념사업' 예산을 41억 6,500만원에서 28억 6,600만 원으로 삭감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 예산은 늘리는 것이 마땅한데, 오히려 예산을 삭감하다니 의아하기만 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건만, 정부는 왜 관련 예산을 줄이기로 결정한 것일까?
특히 '민간단체 국제공조활동 및 기념사업 지원' 예산 대폭 삭감을 비롯해서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 추진' 예산, '교육 콘텐츠 제작' 예산, '국제학술심포지엄' 예산, '일본군 위안부 국외자료 조사' 예산 등을 전액 삭감한 내역이 눈길을 끈다. 지금 나열한 예산 삭감 내역을 하나의 테마로 묶어보면, '위안부 진실 알리기' 정도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놓아버린 걸까?
박주선 의원은 "위안부 관련 예산이 줄줄이 삭감됨에 따라,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문제를 알리려는 노력이 차질을 빚게 됐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또 "정부가 지난해 말 한·일 위안부 합의와 무관하게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던 말이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며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대답을 들어보자. 강은희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장관은 "유네스코 기록물 등재는 민간에서 추진하는 게 기본 정신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더 이상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간에서 추진하는 게 기본 정신이라는 강은희 장관의 발언은 지금까지 여가부가 취해왔던 태도와 180도 다르다.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여가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왔던 사업이었다.



여성가족부의 태도가 달라졌다. ⓒJTBC


2015년에 여가부가 국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에는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에 기여한다"는 목표와 함께 “2017년 등재 목표”라는 구체적 시한까지 기재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발표했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위안부 문제 합의의 영향은 아닐까?



ⓒKBS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 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합의 내용은 '더 이상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말자'는 표현을 에둘러 한 것이나 다름없다. 또, 당시 기시다 외무상은 회담을 마친 직후 일본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에 합류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12·28 한일 합의 발표 뒤 여가부의 행동이 달라졌다. 그 변화를 실질적으로 경험했을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는 이렇게 지적했다.

정부가 12월 28일 합의 이후 사무국에서 유네스코 사업 추진단도 빼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여가부는 "한 · 일 합의와는 상관없는 결정"이라는 해명을 내놓고 있지만, 12·28 한일 합의 이후 여가부의 행동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박주민 의원 페이스북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일본 중의원 회의 속기록을 입수했으며, 거기에는 "일본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 중에 '우리 정부가 위안부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등재를 지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정부가 위안부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태도를 바꾼 이유는 아주 쉽게 설명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이 진행하는 SNS방송 '원순씨의 X파일'에서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하지 않는다고 하니 서울시라도 나서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서울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육성 녹음, 영상 기록, 사료, 자료를 모두 수집해 정리하는 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것을 모아 정부가 하지 않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를 대신해서 서울시가 나서주겠다니 고마운 일이지만, 위안부와 관련된 사안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챙겨야 한다. 문제는 정부가 여전히 진실을 감추고,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해명을 늘어놓는 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그 해명도 거짓말일지 모른다. 국민과의 신뢰 관계가 무너진 정부에게 미래는 없다. 아니, 현재를 지탱할 힘조차 없다. 다시 한 번 물어야겠다.

대한민국 정부는 '위안부 진실 알리기'를 포기한 것인가?

정부가 이번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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