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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대교에 세금으로 자이언티 동상을 짓는다면

  • 입력 2016.06.27 10:46
  • 수정 2016.06.27 10:47
  • 기자명 20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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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대교에 택시 탄 Zion T.동상을 세운다면


일단은 당연히 웃자고 하는 얘기다. 하지만 100% 농담은 아니다. 지금 삼성역 코엑스 앞에 진짜로 '강남스타일 동상'이 세워졌다는 걸 감안한다면. 심지어 그 동상보다는 Zion T. 동상을 세우는 편이 좀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는 걸 생각하면. 강남스타일 동상은 (그것이 별로 예쁘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하나의 거대한 코미디다. 커다란 손 두 개가 겹쳐진 이 기괴한 동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너무나 많은 질문을 동시에 던지게 한다.

대체 왜, 지금, 이곳에, 이 동상이 필요한가.

강남스타일의 성공은 냉정히 말하자면 우연의 산물이다. 물론 강남스타일은 흥겨운 노래고 그 뮤직비디오는 싸이 본연의 느낌으로 충만하게 잘 만들어졌다. 그러나 강남스타일이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바이럴'을 타게 된 것은 싸이가 노력한 결과도 아니고, K-POP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강남스타일의 성공은 사실상 유튜브(Youtube)의 성공이다. 유튜브라는 매체 안에서 시선을 끄는 것의 영향이 현실세계로 얼마나 이어지는지를 보여준 것뿐이다. 안타깝게도 싸이가 강남스타일 이후로 세계적인 히트곡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 역시 같은 것을 증명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조금 거리를 두어 차갑게 말하자. 강남스타일의 성공은 말하자면 야구의 번트 2루타나 삼중살 같은 것이다. 이슈는 될 수 있을지언정 나서서 자랑하거나 동상을 세워 기념할 만한 것은 못 된다는 얘기다. 싸이가 사비를 들여서 세운다면 모를까, 적어도 강남구청이 세금을 들여가며 세울만한 건 아니었다. 그게 구분이 안 되면 지나친 '국뽕'이 되는 거다.
과연 서울 시민 중 삼성역 한복판의 '강남스타일 동상'을 순수하게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이 춤이 대표하는 삶을 자신의 모습이라 말할 수 있는 강남 사람, 아니 우리나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싸이의 반어적인 농담들을 제하고 나면, '강남스타일'에 담긴 우리의 '스타일'은 그저 클럽에서 화끈하게 노는 모습뿐이다. 유흥, 밤 문화, 클럽 같은.


그래. 백번 양보해 이 동상에 우리의 화끈함이 담겨 있다면(정말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동상은 업무지구이자 무역센터가 있는 삼성역이 아니라 클럽이 많은 강남역 뒤쪽 쯤에 세워졌어야 했다. 뉴욕증권거래소 앞의 황소 동상이 유명하고 의미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황소 동상은 사실 어디에나 있지만 그 황소 동상은 세계 최대 금융시장인 뉴욕 월스트리트에 위치했다는 점, 그리고 주식 시장에서 황소가 적극적인 주식 매수를 은유하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거기 있을 이유가 있다.
그런데 이 동상은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의 촬영 일부가 삼성역에서 이루어졌다는 점 말고는 하필 그 자리, 코엑스 동문 앞에 위치해야 할 이유가 딱히 없다. 주변 지역과 그곳 주민의 문화의 특성을 잘 담아내느냐를 생각해봐도, 삼성역 한복판에 위치한 이 강남스타일 상징 조형물은 지독히 못났다.
이제 남는 것은 두 가지뿐이겠다. 강남스타일이 유명하다는 점, 그리고 관광객들이 코엑스에 많이 온다는 점. 이 두 가지를 연결하면 강남스타일 동상의 핵심이 나온다. 외국인들이 얼핏 봤을 때에 지금 잠깐 유명한 것을 어떻게든 최대한 많이 팔아 뽕을 뽑아보겠다는 거다. 뭐 아주 실패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실제로 지켜보니, 외국인들이 와서 웃으며 말춤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긴 찍는다. 가끔, 아주 가끔.


여기서부터는 해석과 가치 판단의 문제다. 누군가는 이것을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일'이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근시안적 사고의 저열한 상업주의'라고 할 것이다. 확실한 건 이 동상이 이 자리에 버티고 서 있을 만한 '우리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강남스타일'의 성공은 온전한 우리의 성취가 아니고, 우리를 대표하거나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강남스타일 동상에서 어찌할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지고, 동상을 들여다보는 극히 일부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짓는 웃음 중 20% 정도는 비웃음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거다.


차라리(...)


그래서 생각해 본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Zion T.가 택시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조각해 세우는 게 낫지 않을까. 삶의 고단함, 가족에 대한 헌신, 그리고 그저 아프지 말자는,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닌 그저 아프지만 말고 행복하자는 그 사랑과 소박한 소망. 거기에 Zion T.의 그루브한 R&B 보컬과 어우러지는 미묘한 '뽕끼'까지. 현대적인 동시에 한국적인 감성을 정확하게 구현해내는 곡이다.
그만의 한국적 감성은 해외의 'K-POP' 팬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니 Zion T.를 기념하는 동상을 양화대교 가운데 세우면, 모르긴 몰라도 매년 몇억 몇조 원의 관광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양화대교에 Zion T. 동상 세우자는 얘기조차 꽤나 그럴싸해 보이지 않는가?


물론 전부 농담이다. 별 재미도 없을 황당한 농담.

다만 삼성역과 봉은사역의 정확히 중간 지점에 자리잡은 거대한 '강남스타일' 동상을 만들 때, 오만가지 긍정적인 해석과 가치 부여 과정을 거쳐 결재 도장을 찍었던 높은 분들은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했을 테고 그 때는 저런 이야기들이 결코 농담이 아니었겠지만.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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