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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 퀴어다! 그래서 그게 뭐?

  • 입력 2016.06.12 14:10
  • 수정 2016.06.12 14:15
  • 기자명 페미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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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6월 10일 쓰인 글입니다.)

There’s nowt so queer as folk

웨일스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 오래된 속담은 간단한 문장이지만, 생소해 보이는 표현입니다. nowt는 20세기 초반 사용된 영어 표현으로, nothing의 과거형인 nought의 방언입니다.queer는 잘 아시다시피 ‘이상한’, ‘기묘한’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고요. 그러므로 이 표현을 현대 영어로 바꾸면 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There’s nothing as queer as people can be

사람들만큼 ‘이상한’ 건 없다

옛 웨일스 사람들이 지적했듯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금쯤 이상한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고 기묘한 것 전반을 뜻했던 단어인 queer는 어떻게 성소수자의 ‘퀴어’함을 가리키는 표현이 되었을까요? 보통은 19~20세기 영어권 문화에서 (특히 남성간의) 동성애를 queer라고 부르던 것이 현재 개념의 유래라고 봅니다. 처음엔 성소수자를 경멸할 의도로 사용되었던 표현이라고 합니다. 단지 사회가 강요하는 방식과는 다른 방법으로 자유롭게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성소수자들은 “너희들은 이상해, 기묘해, 괴상한 존재야”라는 타자화와 몰이해, 차별과 혐오, 폭력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겁니다.
하지만 그토록 힘들고 아픈 시기에도 성소수자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을 아프게 하는 이성애 편향 사회에 대항할, 통쾌하고 재치 있으면서도 매우 강력한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래, 난 퀴어다! Queer I am!” 라고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퀴어의 자긍심을 선언함으로써 강자에게 빼앗겼던 언어(queer)를 되찾아오고,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들었던 흉기를 우리의 강력한 보호구로 삼아 아주 멋지게 한 방 되돌려준 셈입니다. 핍박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내는 게 가능했을까요? 왜냐하면, 결국엔 사랑이 이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기 때문입니다. 유사 이래로 퀴어들이 투쟁하여 지켜낸 퀴어의 자긍심은 20세기의 스톤월을 거쳐 21세기의 서울광장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현재 퀴어 라는 말에는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존엄과 프라이드가 녹아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작년의 서울광장을 기억하시나요? 혐오 세력의 북소리에 리듬을 타는 모습, 보지풀빵과 음료수를 사 먹는 모습, 잔디밭에 앉아 연인과 키스를 나누는 모습, 행진 중에 서로에게 박수를 쳐주는 모습도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스타일의 옷을 입거나, 혹은 옷을 전부 벗어버린 모습들은 전부 퀴어 하되 이상하거나 괴상하지 않았습니다. 21세기의 시공간에서 퀴어는 더 이상 ‘이상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에는 이상할 것이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오히려 신의 이름을 들이대며 ‘사랑’이라는 단어를 남을 혐오하고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데 사용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제 눈에는 정말 괴상하고 기묘해 보입니다. 올해도 광장 옆에서 진을 치고 혐오의 북소리를 둥둥 울리리라고 예고한 그분들께, 저는 똑똑히 말하고 싶습니다. 여긴 2016년이고 “니네 이상해!“라는 외침은 더 이상 퀴어를, 우리를, 나를 억압하지 못한다는 걸. 우리는 행진하고 나아가며 승리하고 사랑할 거라는 걸 말입니다.
그러니까 신의 자녀 여러분, 이제 “너 이상해!“라는 혐오로 광장을 어지럽히는 대신 성소수자 자매 형제들의 나 “퀴어야!” 라는 자긍심 선언이 광장을 울릴 수 있도록 함께 하는 게 어떨까요? 언제나 그러했듯 결국엔 사랑이 이길 테니까요. 혐오의 북 대신 연대와 사랑의 북을 치러 오세요. 같이 놀고 같이 춤춰요. 모두 11일 서울광장에서 만나요!

글쓴이: 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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