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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쾌거'라니...부끄럽지 않으세요?

  • 입력 2016.06.09 11:32
  • 수정 2016.06.09 11:33
  • 기자명 20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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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수상 다음날, 뉴스 첫 화면은 '한국 문학의 쾌거' 같은 말로 가득 찼다. 평소에는 문학을 그렇게 등한시하는 사회가 '한강의 수상'을 '한국의 쾌거'로 이렇게 쉽게 바꿔버리다니. 스포츠, 문학, 기초과학 등의 영역에서 늘상 발견할 수 있는 민족주의적 치환이지만, 바로 그 '한국'을 지키는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가는 버스에서 뉴스를 본 그 날은 이 대사가 유독 얄밉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한강 작가의 수상소감을 읽어보았다.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드린다. ‘채식주의자’를 쓸 때 나는 인간에 대해 질문하고자 했다. 집필 과정에서 이러한 질문은 인간의 폭력성에서 인간의 존엄성으로 옮겨갔다. (책을 쓰는 것은) 내게는 질문하는 방법이고,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가능한 한 계속해서 질문 안에 머물고자 노력했다. 때로는 고통스러웠고, 힘들기도 했다. (독자들이) 나의 질문을 함께 공유해준 것에 감사하다. 이 기쁨을 가족과 친구와 나누고 싶다.


ⓒ The Man Booker Prize

'깊이 잠든 한국'이라고?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룩한 나라, 출근은 당기고 퇴근은 늦추고 잠을 줄이고 건강을 해쳐서라도 오직 발전하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나라가 한국인데 말이다.
그런 한국을 왜 그녀는 ‘깊이 잠들어 있다’라고 표현했을까? 물론 수상 발표 시각이 한국 기준으로 새벽이기도 했고 어쩌면 그저 문학적인 수사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 한 마디를 천천히 곱씹을수록 여러 결의 의미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늘 그랬다.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작품을 방학 내내 읽은 적이 있다. 교수님이며 선배들과 함께 온 방학을 투자해서 읽어도, 그녀가 세상에 던지는 질문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답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 권의 작품을 기본만 이해하는 데 두 달이 걸렸다. 그렇게 소설을 읽는 일, 나아가 쓰고 사유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래퍼는 이 작품에 대한 이해와 감상을 정규음반 한 장에 통째로 녹여내기도 한다
ⓒ VMC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도 마찬가지다. 수상소감에서도 밝혔듯이, 그녀는 이 책에서 인간의 폭력에 관해 아주 집요하고 끈질기게 질문을 던져댄다. 굶어 죽더라도 끝내 육식을 하지 않는 주인공 영혜를, '실용적인 것’만 찾아 헤매는 눈으로는 조금도 이해할 수 없을 터다.
이제 눈을 돌려 한국의 현실을 보자. 대학에서는 학과 통폐합 사업이 연일 화제다. 길고 복잡한 문서와 증명들이 오고가는 이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당장 돈이 되지 않는 학과는 합치거나 없애는 것”이다.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이라는 목표 아래 당겨지는 화살의 끝은, 결국 취업률이 낮은 철학과, 역사학과, 문학과 등으로 향한다.
격변의 시대에 빨리 대응하는 것, 신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일임은 안다. 하지만 글을 읽고 쓰는 일, 역사와 철학을 탐구하며 인간과 사회에 끝없는 질문을 던지는 일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실용주의적 논리가 침범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속도, 발전, 성장’ 따위의 키워드로 똘똘 뭉친 우리 사회는 실용적이지 않은 것, 느린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무시하고 외면한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가 어쨌고 조선이 어쨌고 하는, 천천히 끈질기게 해 봐야 하는 고민들은 우리 사회에서 간단하게 처리된다. “그거 하면 돈 돼?”라는 자본주의적 잣대를 들이대며 꺾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개인이 어찌어찌 만들어낸 성과와 영예가 생겨나면 그를 ‘한국’의 쾌거로 바꿔 읽으며 미친 듯이 환영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PSY에게 관심을 주지 않다가 별안간 쏟아주게 된 딱 그 모습처럼.

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의 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으면서 반짝이는 노벨상만 좇는 우리나라의 두 눈에는, 최소한의 생계해결도 되지 않는 작가들의 고난한 삶과, '작가'를 꿈꾸는 것조차 사치인 후속 세대들이 마주한 척박한 환경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의 '위대한 조국'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다만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몽상하며, 영원히 깨어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깊게 잠들어 있었을 뿐이다.
존경하는 한강 소설가님의 수상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이 모든 영광을 그간 옆에서 지켜봐 주었던 가족 및 친구들과 온전히 나누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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