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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꼭 아프리카여야 했던 대통령의 사정

  • 입력 2016.06.02 11:41
  • 수정 2016.06.02 11:43
  • 기자명 북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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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아프리카 3개국 순방을 떠났을 때, 일본에서는 G7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번 G7의 의제가 북핵 문제의 해법 논의였다는 점과 박 대통령이 옵서버로 참여할 수도 있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대통령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아프리카에 새마을 운동의 정신을 전파하는게 북∙중∙일 외교문제보다 더 중요한 걸까. 심지어 조선일보마저 박 대통령의 이번 아프리카 순방을 ‘외교 라인의 중대한 판단 착오'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G7정상회의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지역 및 국제사회의 평화,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안겨주고 있다”며 “이를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비난한다”는 선언과 함께 5월 27일 막을 내렸다. 또한 이들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의 상황을 우려하며, 평화적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내용의, 중국을 겨냥한 정상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에 반발한 중국은 베이징 주재 일본 대사를 불러 항의하고, 나머지 6개국의 고위 외교관에게도 항의의 뜻을 전달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북한도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베이징으로 보냈고 그는 곧 시진핑 주석과 면담을 할 예정이다. 이처럼 긴박한 순간에 박 대통령은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호랑이는 스스로 호랑이임을 밝히지 않는다. 단지 덮칠 뿐이다”라는 칭송(?)을 즐기고 있다. 정말 위대한 외교 성과다.


카를 마르크스는 그의 저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하지만 마르크스가 말했던 ‘또 한 번’이 희극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는 서구 열강이 노골적으로 힘을 과시했다면, 현대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제국주의를 답습하고 있다. 일본 또한 이번 G7정상회의에서 센카쿠 문제로 중국을 자극했다.
우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국제정세를 잠자코 바라만 봐야 하는 걸까. 지금과 같은 신제국주의 시대에는 어쩌면 ‘아날로지(analogy)’가 반드시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날로지란 ‘유추(類推)’를 말하는데, 특정 개념으로부터 다른 개념을 추론하는 인지과정을 뜻한다. 일본의 대표 논객 사토 마사루는 최근 발간된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에서 아날로지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지의 사건과 맞닥뜨렸을 때도 ‘이 상황은 과거에 경험했던 그때 그 상황과 흡사하다’라는 판단과 함께 대상을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1992년, 미국 정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역사의 종말>에서 민주주의와 자유경제주의의 최종 승리를 드높이 선언했다. 후쿠야마가 말한 대로라면, 전 세계 모든 국가는 민주국가가 되고, 평화롭고 아늑한 시대가 찾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소련 붕괴 후 10년이 지난 뒤인 2001년 9월 11일의 동시다발 테러, 2003년 이라크 전쟁, 시리아 내전, 우크라이나 위기, IS의 위협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한순간도 분쟁에 휘말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아날로지로 독해해보자. 사토 마사루는 그의 책에서, 제국주의 시대에는 자본주의가 세계화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빈곤과 격차 확대라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부와 권력의 편재가 초래하는 사회불안과 정신의 공동화는 사회적인 유대를 해체하고, 모래알처럼 분리된 개인을 고립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는 내셔널리즘을 통해 국민들의 통합을 꾀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제국 내의 소수민족은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민족 자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국민국가의 위기를 지역과 영토를 초월한 이념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바로 종교적인 이념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기독교에서나 이슬람교에서도 사회 위기에 복고주의∙원리주의적인 운동이 일어나 지역과 영토를 초월해 확산된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내셔널리즘, 종교’의 요소와 거시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힘을 기르면 현대가 어떠한 시대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아날로지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박 대통령의 이번 아프리카 3개국 순방의 대외적인 목적은 ‘북한의 외교 고립’이다. 에티오피아, 우간다가 북한의 오랜 우방인데, 청와대의 한 참모는 “전통적으로 북한과 우호관계를 가져온 나라들이 우리와 전략적 관계를 맺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북한을 압박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압박은 커녕 박 대통령이 떠나자 북한과 외교단절은 없다는 우간다 정부의 공식발표가 나왔다.


과연 청와대 참모의 말처럼 아프리카 순방 목적이 북한의 외교 고립뿐일까.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수교가 이뤄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우간다의 무세베니 대통령은 30년 넘게 장기 독재를 이어가고 있고, 박정희를 존경한다는 인물이다. 3개국 모두 ‘코리아에이드’라는 변종 새마을 운동을 도입할 예정이다. 그렇다. 박 대통령의 이번 순방은 아버지의 추억을 좇는 여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그 속내가 너무 빤히 보여서 굳이 아날로지 할 것도 없다).
게다가 마지막 순방국인 프랑스에서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그르노블을 방문한다니, 행복을 만끽하길 바라며 부채춤이라도 춰야 하는 걸까. 하지만 어쩌나. 성남공항에 내려서는 순간, 북한과 중국의 회담 결과에 따라 국제적인 호구가 될게 뻔한데.

이 세상 안에서 생을 부여받은 사람을 한 명이라도 제외한다면 역사는 성립되지 않는다. 타인의 마음이 되어 생각하는 것, 타인을 추체험하는 것을 얼마나 거듭했느냐에 따라 역사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달라진다.

- 후지시로 다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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