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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교는 여성 인권이 후진 나라에만 존재한다

  • 입력 2016.05.28 10:19
  • 기자명 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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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애교는 여성 인권이 후진 나라에만 존재한다
한국,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에선 여자들이 애교를 피우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13살짜리 클로이 모레츠가 TV 토크쇼에 나와도 우리가 생각하는 애교는 피우지 않는다. 한국 여성들이 사회적 약자인 것에 대해 나는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다. ‘여성들의 애교는 여성 인권이 후진 나라에만 있는 문화다’라는 주장을 하나의 가설로 둔다면 그와 관련하여 살펴볼 만한 현상들이 있다. 이 글은 그 현상들을 다룬다.


애교는 약자의 언어다
흥미로운 것은 애교가 주로 남성들로 구성되어 있는 군대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계급이 낮은 남성들은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남성에게 원하는 게 있을 때 약자의 제스처로서 애교를 피운다. 일반적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애교를 피우진 않는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명령, 지시, 제안을 할 뿐이다. 애교는 약자의 언어다.


애교는 특정 국가에만 있는 개념인가?
일본은 귀여움을 뜻하는 '모에'나 '카와이'라는 말이 있고 한국에는 '귀여움'이란 말이 있다. 영어의 'cute'는 우리나라말로 해석할 때 '귀여움'으로 해석되기는 하지만, 그 귀여움이 그 귀여움이 아니다. 오히려 'cute'는 '잘생겼다'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그리고 일본은 '모에'라는 단어를 ‘모에화’로 응용해 쓰기도 한다. 아래를 보자.

모에화된 바퀴벌레(...)


모에화된 우크라이나 검찰총장 빠콘스켈


일본과 한국에선 귀여움을 컨셉으로 한 여성 그룹들이 있다. 여자 아이돌은 귀여운 척(이하 귀척)을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권 여성 아티스트 중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거의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없다. 볼에 손가락을 꽂는다던가, 귀엽게 보이려고 춤을 춘다든가 하는 게 없다. 미국의 경우 데스티니스 차일드 이후로 여자 아이돌 자체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SNL Korea>에선 걸스데이를 불러놓고 <애교반상회>라는 꽁트에서 애교를 시키기도 했다. 혜리가 지상파 군대미화프로젝트의 일환인 <진짜사나이>에서 조교에게 애교를 피운 것이 이슈가 된 것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해당 프로에 나오지도 않은 민아가 혜리와 쌍으로 애교를 피운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진짜사나이> 때문에 <애교반상회>가 차려진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흥미로운 것은 남성 아이돌을 불렀을 때는 애교를 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걔네한테는 몸개그를 시켰다)


<SNL KOREA>의 <애교 반상회>


한국 여아이돌의 컨셉: 섹시하거나, 귀엽거나
한국의 여성 아이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1. 섹시한 컨셉으로 노래를 부르는 여성 아이돌

2. 귀여운 컨셉으로 노래를 부르는 여성 아이돌

물론 이 외의 컨셉을 따르는 여성 아이돌도 있긴 하다. 하지만 대체로 이 두 컨셉이다.
반도 아이돌들의 특징은 서로 구별되는 개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여성 아이돌은 자기만의 개성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기업들의 기획된 상품인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유행에 따라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바꾼다. 대표적인 게 티아라인데, 어떤 때는 섹시함으로 승부를 보다가도 어떤 때는 손에 고양이 손을 꼽고 귀척을 한다. 티아라가 부른 노래는 레인보우가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고, 걸스데이가 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반도의 팝시장에서 흥하는 건 얼마나 컨셉을 잘 잡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족-아이돌은 기획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적응할 수 있는 훈련된 프로들이다. 자신만의 예술적 지문(fingerprint)이 없다는 점에서 예술가로도 안 보이고 자신만의 노래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수로 보이지도 않지만 말이다. 같은 지점에서 <도리화가>의 주인공(음악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역할)에 Miss A 수지가 배정된 건 웃긴 일이며, 영화의 캐스팅이 불러온 부조화 때문에 영화는 보기 좋게 망했다.)



티아라, 섹시하거나



티아라, 귀엽거나(섹시도 동시에 추구한 듯 보인다)


섹시를 컨셉으로 하는 그룹들은 “난 널 사랑하는데 왜 내 마음을 모르니?", "바람 피지마 개객끼야", "바람 폈네 시바?", "헤어져", "너가 나에게 반하지 않고 베길 수 있을까? 내가 이런 몸매를 가지고 있는데? 내 다리 안 보임?" 등의 이야기를 한다. 사랑을 고백하거나, 남자를 까거나, 이별을 고하거나, 이별을 고한 남자를 까거나, 눈치가 있으면 알아서 나에게 쳐 오라는 소극적인 구애를 한다. 소극적인 구애의 핵심은 '너 아니어도 나 좋다는 남자는 쌔고 쌨다'다. 이게 귀여움을 컨셉으로 하는 그룹들의 노래와 다른 점이다.
귀여움을 컨셉으로 하는 그룹들의 노래들은 대체로 "날 사랑해줘", "사랑하고 싶다", "한 번만 안아줘" 등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일종의 구애다. 남성에게 사랑을 구애하는 것. 귀척 아이돌은 '너 아니면 안돼'라고 한다.


섹시 아이돌과 귀척 아이돌 간의 시장성은 차이가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지금은 보아가 <걸스온탑>을 부르며 남자 백댄서 등짝에 올라타서 '나를 따르라 미천한 것들아!'라고 하던 때와 시장 판도가 다르다. 그땐 여성주의적인 곡이 통했는데 지금 한국의 아이돌 트렌드는 섹시 아니면 귀척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짬밥 찰 대로 차서 귀척하기 힘든 보아는 앞으로도 한국 시장에서 재미를 못 볼 거라고 본다.

섹시도 그냥 섹시를 해서는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조선에선 섹시하되 '나에게 섹스를 해줄 듯한 인상을 풍기는 섹시'가 통한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비욘세 느낌의 섹시는 전혀 흥할 수 없다. 비욘세 식의 섹시는 조선이 감당하기엔 너무 쎈 여성상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 볼 만한 여성 아이돌이 레인보우다. 레인보우를 내가 주목하는 이유는 이 아이돌은 귀척을 하지 않고, 섹시 컨셉을 추구해도 뭔가 쎈 이미지를 고수하는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레인보우는 단 한 번도 묵직하게 인기를 끈 적이 없는데(애도), 나는 그것이 한국 시장이 여성들에게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컨셉을 레인보우가 따르지 않아서라고 본다.(의도한 건 아니라고 본다. 그냥 판을 못 읽는 듯.)


레인보우


레인보우가 불렀던 <A>, <마하>는 전혀 귀엽지 않고, 레인보우 블랙은 시스루룩을 입고 컨셉을 섹시에 몰빵하며 유닛 활동을 하였으나,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나마 그들이 인지도 있는 아이돌로 버티고 있는 이유는 재경, 고우리, 조현영의 미모 덕분일거다. 참고로 주로 섹시코드를 잡은 여성 아이돌은 멤버들의 운동 영상을 활용해 인지도를 쌓기도 한다.


레인보우의 조현영


멤버의 몸매로 그룹을 홍보하는 아이돌은 레인보우와 시스타가 대표적이다. 레인보우는 조현영으로, 시스타는 소유를 통해서 그들의 몸매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어필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요즘 아이돌은 한 컨셉만을 밀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 아이돌이 운동 사진•영상을 뿌린다. 걸스데이의 유라, 티아라의 은정 등등. 하지만 짬밥 찰 대로 찬 소녀시대는 그런 거 안 찍는다. 그런 거 없어도 인기 많거든.
레인보우가 러블리한 컨셉을 도입한 적이 있긴 하다. 콘텐츠 시장은 워낙 많은 변수들이 성패를 좌우하기에 귀척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다만, 섹시 컨셉을 잡는 것보단 리스크가 적긴 할 것 같다. 레인보우는 레인보우 픽시라는 유닛으로 귀척 컨셉을 밀어부쳤으나, 보기 좋게 망한 바 있다. 일단 노래가 별로였다. 그냥 이 친구들 유닛은 망하는 운명인가 싶기도 하다.(물론 유닛만 망하는 건 아니다. 애도)
섹시계에서 운동 영상을 뿌린다면, 귀척계에선 애교 영상을 뿌린다. 여기서도 각각 담당들이 있다. 카라의 한승연, 걸스데이의 민아•혜리•유라, EXID의 하니 등등.


걸스데이의 유라


애교를 강요하는 남성들
한국이나 일본의 영상 콘텐츠에선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애교를 보여달라고 하는 장면들이 꽤 많이 연출된다. TV프로의 MC들은 다짜고짜 여성들에게 "애교가 그렇게 많다고 하시는데 애교 좀 보여주세요."라며 애교를 요구한다. 동일한 진행자들은 남성 아이돌에겐 애교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1. 김구라가 카라의 강지영에게 애교를 강요했고, 강지영은 울음을 터뜨린다.


2. 이휘재가 시상식에서 전지현에게 애교를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다른 남자배우에겐 애교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휘재에게도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너 시상식에서 남자들한테도 애교부려달라 하냐?" 애초에 영화시상식과 애교를 보여주는 것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도 한국의 영화시상식은 어디 보여주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물론 여성들이 이런 대우를 받는 건 비단 한국이나 일본만의 상황은 아니다. 그저 한국이나 일본의 정도가 더 심할 뿐이다. 서양권에도 여성들에게만 외모에 대해서 질문을 하거나, 어떤 옷차림을 요구하거나 하는 식의 문화가 있다.

상황 1.
미국 시상식에서 한 기자가 여자 배우에게 "드레스는 어디서 하셨냐?"하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왜 저 배우(남성)한테는 연기에 대해 묻고 나에게는 드레스에 대해 묻니?(xx새끼야)"

상황 2.
카메라맨이 케이트 블란쳇을 아래부터 훑자 그녀가 그것을 보곤 이렇게 말한다. "저 남자애들한테도 그러냐?"


상황 3.
매니큐어 칠 한 것을 보여달라는 요청을 받자, 여자 배우가 중지를 꺼내 든다.


상황 4.
칸 영화제에서 하이힐을 신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장이 거부되자, 다음 해에 맨발로 칸에 등장한 줄리아 로버츠



애교 요구를 거부했던 김윤아

한 때 자우림의 김윤아가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나왔을 때 윤도현이 김윤아에게 애교가 있으신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김윤아는 남편에게는 가끔씩 한다고 했다. 윤도현은 그 애교를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그때 김윤아가 이렇게 답했다. "남편한테 하는 건데 여기서 왜 해요?"(정확한 워딩은 아니다) 그리고 김윤아는 결국 애교를 보여주지 않았다.


애교부리는 여성을 원하는 시대
대다수의 남성들은 여성을 자신의 아래에 두고 싶어한다. 남성이라는 건 일종의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이러한 '선호'는 한국의 콘텐츠계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게 현실이고, 여성 아이돌의 귀척과 그에 따른 성공도 이러한 수요를 방증해 준다.


바야흐로 귀척의 시대가 왔다
섹시는 앞으로도 여자 아이돌이 택하는 주류 컨셉으로 자리를 잡겠지만, <걸스 온탑>같은 식의 섹시는 이제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힘들게 될 듯하다. 비욘세가 <Run the world(girls)>를 미국에서 부를 수 있는 있는 건 그녀가 그만큼 '된 사람'이어서긴 하지만, 동시에 시장이 그런 노래를 받아줄 수 있을 정도로 진보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삶이 각박해지면 배려심이 적어지고, '나'의 삶을 더 살만하게 만들기 위한 제물을 찾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한국 남성들은 그 타겟을 여성으로 정했다. 한국의 여성혐오가 전보다 더 심해진 건 한국이 헬조선이란 별명을 가지게 된 것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여성의 위치는 예전보다 더욱 배타적이고 후진적으로 변했으며, 지금은 공격의 대상까지 되어가고 있다. 최근 강남에서 무작위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가 발생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한국에서 여성 아티스트, 여성 아이돌이 남성이 원하는 방식의 여성상을 보여주지 않고도 흥할 수 있을까? 쎈 여성상, 아니 남성에게 잘 보이는 듯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어떤 여성상을 택하는 여성 아이돌이 흥하는 날이 올까? 다수의 여성들조차도 이런 문제에 있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에 나는 앞으로도 이런 문화는 당분간 계속되리라 생각한다.


비욘세의 <Run the world> 공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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