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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법의 동성혼 인정 소송 각하에 부치는 글

  • 입력 2016.05.27 12:16
  • 수정 2016.05.27 13:46
  • 기자명 비더슈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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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014호파1842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의 요지는 간단하다. 지난 2013년 12월 11일, 부부의 인연을 맺은 두 남성 김조광수 씨와 김승환 씨가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를 했다. 하지만 서대문구청은 두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았다. 이에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은 처분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서부지법은 김조광수 부부가 낸 소송을 각하했다.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서부지법은 “이제까지 혼인 제도가 다양하게 변천을 겪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혼인이 남녀 간의 결합이라는 본질에는 언제나 변화가 없었다”며, “우리 헌법·민법은 모두 혼인을 이성 간의 결합으로 해석하고 있고, 국민들의 통념도 그러하다”고 각하의 이유를 밝혔다.
당초 김조광수 부부는 “헌법에 명시된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 추구권은 개인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성적 자기결정권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서부지법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성적 자기결정권’에 국가가 제약을 가할 수 있다”며 근친혼과 중혼의 사례를 들었다.
‘평등권’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다. 성별이 같다는 것과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혼인신고가 반려되어, 부부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는 지적이었다. 법원은 “개별적인 임신의 가능성과 출산의 가능성이 중요하지는 않고,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다고 해서 결혼제도 전부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동성 간의 결합을 이성 간의 결합과 동일시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밝혔다.
소수자의 권리 보호에 대한 대목도 있었다. 서부지법은 “사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며, “성적 소수자라고 하여 그 개인의 권리실현에 장애가 있거나 미흡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신청인들의 입장에 공감이 가고, 안타깝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부지법은 “우리 법체계가 예상하지 못했던 동성 간의 결합을 별도의 입법 없이 사법부에서 해석하는 것은 입법권에 대한 침해”라며, “사법은 개인적인 분야에선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사회 제도인 혼인제도 전반에 대해 권리를 인정해줄 수는 없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서부지법은 마지막으로 “시대적 상황 등이 다소 변경되기는 하였지만 별도의 입법조치가 없는 한 현행법 해석만을 통해 동성 간의 혼인이 허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입법적 결단을 통하여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이 판결이 나온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혔다.
긴급 기자회견에서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항고의 뜻을 밝히며, “법원이 귀를 열고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는 추가로 두 쌍의 동성 부부가 혼인신고를 받아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들은 “앞으로 한 커플이 각하 결정을 받을 때마다 2배수 이상으로 소송 당사자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이 자리에서 김조광수 씨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는데 왜 단지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제도 밖으로 내몰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이번 결정에서 법원은 법률적으로 동성 간의 혼인이 인정돼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면서, “한 발짝 나아간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동성 결혼 허용 국가 현황
붉은색은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국가
짙은 녹색은 일부 지역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국가
옅은 녹색은 동성결혼에 대한 약간의 보호제도가 있는 국가


서부지법의 판결문에도 나오지만, 최근 세계 곳곳에서는 동성 결혼 합법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현재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국가는 남아공, 네덜란드, 노르웨이, 뉴질랜드, 덴마크, 룩셈부르크, 미국, 벨기에, 브라질, 스웨덴, 스페인, 아르헨티나,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우루과이, 캐나다, 콜롬비아, 포르투갈, 프랑스, 핀란드 등 20개 국가다. 이외에도 멕시코와 영국은 일부 지역에서 동성 결혼을 허용하고 있으며, 아루바, 퀴라소, 신트마르턴, 몰타, 이스라엘의 경우엔 외국에서 행한 동성 결혼의 법적 지위를 국내에서 인정해주고 있다.

이외에도 ‘시민 결합’이라는 제도를 이용해서 결혼은 아니지만 결혼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해 주는 국가들도 있다. 총 23개 국가가 이를 허용하고 있으며, 4개 국가의 일부 지역에서도 이를 허용하고 있다.
사회에서 ‘혼인’이라는 행위가 가진 의미는 크다. 그것은 단순히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산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혼인이란, 두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관계임을 암시한다.
일단 혼인을 하고 나면 국가적으로 상대방에 대해 주어지는 권리가 상당하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밝힌 것만 해도 △동거나 부양을 요청할 권리 △일상가사대리권 △생활비용 공동부담요구권 △상속이나 유류분을 청구할 권리 △이혼시의 재산분할 청구권 △입원 수술에 대해 동의하고 사망시에 장례를 주관할 권리 △건강보험에서 가족으로 혜택을 받을 권리 △간호휴직이나 업무시간의 조정을 청구할 권리 △유족보상 혹은 유족연금을 받을 권리 △세법상의 가족공제청구권 등이 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국가는 서로 혼인한 부부에게 왜 이렇게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일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을,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으로 인정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일까?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국가의 입장에서 대단히 중요한 책무다. 아이를 낳지 못하면 국가가 존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다. 꼭 혼인에서 아이가 탄생하는 것은 아니며, 아이를 갖지 않는 혼인도 무수히 많다. 서부지법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자녀 출산 가능성은 혼인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밝혔다.

국가가 이들을 인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완전한 자유의지로 서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서로 생활을 함께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지는 가족으로서의 관계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회는 이들을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 인정하고, 그에 따라 다양한 권리를 제공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혼인이 꼭 남녀 간의 결합이어야 할 이유는 사라진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책임을 지기로 약속했다면, 이들의 관계가 이성 간의 결합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이것이 혼인 제도의 근본적인 붕괴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은 서부지법도 판결문을 통해 인정했다.
사회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동성애는 존재한다. 다양한 젠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얽혀 살아갈 것이며, 때로는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처럼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있다”는 2013년 14회 퀴어퍼레이드의 슬로건이었다.

성소수자들은 일반 이성애자들과 별로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 서로에게 책임을 지고,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를 아끼는 존재들이다. 그런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을 사회적 제도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는 곧 사회가 얼마나 유연한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사회 안으로 끌어들여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유연함은 그 사회가 얼마나 선진적인지 보여준다. 동성애든 이성애든 관계 없다. 사랑은 권리가 아니다. 사랑은 제도가 아니다.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우리가 있다”고 외치고 있는 이들을 보이지 않는 척 무시하고 지나칠 것인지 혹은 평등한 사랑과 함께 손잡고 나아갈 것인지는, 순전히 우리 사회의 선진성에 달려 있는 문제다.
법원은 대단히 보수적인 집단이다.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법원도 변하지 않는다. 사법의 발전은 시민의식의 발전을 뒤따라가는 정도가 대부분이며, 이것은 사법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다.
그렇다면 서부지법 판결이 암시하듯 입법의 형태로는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있다. 이미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나, 정의당 이정미 당선자가 동성 커플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성적 지향성에 대한 차별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조차 제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나라다. 입법을 통한 발전 역시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사회적 통념과 대중의 인식이다. 사법도 입법도 시민의 통념이 변하면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고로 우리 사회의 선진성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시민들의 의식이라는 원론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사랑하라, 저항하라!” 작년 16회 퀴어퍼레이드의 슬로건이었다.
“우리 존재 파이팅!” 올해 예정된 17회 퀴어퍼레이드의 슬로건이다.


17회 퀴어문화축제 슬로건

사랑하며 저항하며 서로를 응원하며 나아가는 것이, 사회를 앞으로 움직이는 가장 기초적인 원동력이다.
결국, 사랑이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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