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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축제, 그 이상과 현실

  • 입력 2016.05.26 13:59
  • 수정 2016.05.26 14:06
  • 기자명 20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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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PLAY


이상 안녕? 난 이상이라고 해. 혹시 ‘대학 축제가 원래는 이랬지’ 아니면 ‘이래야 대학축제지’ 하는 기분에 잠시나마 젖고 싶니? 그렇다면 ‘이상’의 이야기를 같이 읽어보면 어떨까? 밝고 유쾌한 대학 축제의 로망을 예쁘게 그려보았으니, 마음껏 즐겨 줘!
현실 안녕? 난 현실(現實)이야. 혹시 ‘결국 대학 축제란 이 모양이지’ 아니면 ‘대학 축제 솔직히 이렇잖아?’ 하는 생각을 바꿀 수가 없니? 자책하지 마. 네 기분 충분히 이해해. 널 위해 ‘현실’의 이야기를 준비했어. 아마 너도 공감할 거야.



1. 모두의 장터 vs 대기업 배불리기

이상
오늘은 학교가 달라 보인다. 광장이며 건물 틈 곳곳에 작고 아기자기한 부스가 펼쳐져 있다. 캔들, 꽃다발, 팔찌, 목걸이, 잼, 과일청… 학생들이 직접 만든 갖가지 것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뽐낸다. 깨끗하게 쓴 교재와 문제집, 입지 않는 옷과 신발을 내놓은 사람도 있다.
파는 사람은 실력을 뽐내면서 용돈을 벌고, 사는 사람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물품들을 비교적 저렴한 값에 살 수 있는 유용한 행사다. 이상은 미술 동아리 부스를 찾아가 작은 헤나를 받았다. 손목에 새긴 별의 값은 젊은 예술가들의 전시회 개최를 위해 쓰일 것이라고 했다.


현실
커다란 트럭 앞에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다. 대체 뭔가 싶어 가까이 가 보니 한 화장품 업체에서 '돌려돌려 돌림판' 어쩌구 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중. 샘플을 증정한다기에 냉큼 줄을 섰는데 그걸 받으려면 업체 페이스북 ‘좋아요’를 누르고 직원에게 확인을 받아야 했다. 뭐..덕분에 새로 나온 화장품이 뭔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학교 밖을 나가지 않고도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건 분명 편리했지만, 학교 축제의 공간까지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씁쓸했다. 하지만 대기업의 협찬이 없으면 축제 자금 마련이 어렵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연예인을 부르려면 거금이 필요하니까.


2. 먹방 대잔치 vs 호구 : 뜻밖의 연금술

이상 수업을 듣고 나오다 깜짝 놀랐다.
여기저기서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칵테일이며 아이스크림 와플 등을 손에 든 사람들로 캠퍼스가 북적거렸다. 평소 밖에서 사 먹자면 밥 한 끼 값 들일 각오는 해야 했던 먹거리들을 교내 부스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에 쉽게 살 수 있었다. 정신을 놓은 이상은 친구들과 함께 이것저것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먹방을 시작했다.


현실
3시간짜리 전공과목 2개를 연달아 듣는 바람에 끼니를 챙겨 먹지 못했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9시간을 버틴 뒤에야 마주할 수 있게 된 저녁의 캠퍼스는 곳곳에 주점이 펼쳐져 야시장을 방불케 했다. 조금 들뜬 현실은 배도 채우고 술도 마실 겸 친구들과 함께 학과 주점을 찾았다. 후배가 계란말이를 태워서 신나게 말아먹는 광경을 목격했지만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한참 뒤 나온 음식은 연금술에 실패한 뒤 남겨진 부산물처럼 보였다. 겉보기에만 그럴까 싶어 입에 넣어보았지만, 맛도 그랬다. 6,000원짜리 계란말이에선 달걀 껍데기가 씹혔고 8,000원짜리 골뱅이 무침에는 골뱅이만 없었다. 이럴 바엔 집에서 치킨이나 시켜먹을 걸 그랬다. 눈치 없는 과대는 선배 핑계를 대며 술 한 병 더 팔아달란다.

3. 즐길 줄 아는 챔피언 vs 속 터지고 돈 터지고

이상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가수가 눈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뛰어난 성량과 매력적인 음색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고, 빵빵하게 울리는 음향에 가슴이 덩달아 쿵쾅거렸다. 분위기를 보니 자신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가수는 적극적인 호응에 기분이 좋았던지 앙코르를 세 곡이나 열창했다. 미니콘서트 수준의 공연을 본 뒤에도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맛에 축제에 오는구나 싶다.


현실
차라리 이게 꿈이었으면. 연예인이 왔다기에 얼굴이나 볼까 해서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군중의 한복판에 끼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군가 끊임없이 현실의 발을 밟았고 뒤에서는 그를 계속 앞으로 밀어냈다. 저 멀리 콩알만한 사람의 형상이 보이긴 했지만 커다란 스피커에서 웅웅 울리는 소리로는 대체 누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뻥 소리가 나더니 폭죽이 터졌다. 현실이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사이 공연이 절정에 이른 모양이었다. 현실의 머릿속엔 자연스레 “여러분의 등록금이 터지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스쳤다.


4. 설레는 만남 vs 동물의 왕국

이상
이상은 목을 축이기 위해 주점으로 향했다. 공연의 열기가 식지 않은 터라 모두가 조금씩 상기돼 있었다. 이상과 친구는 방금의 공연이 얼마나 환상적이었는지를 떠들어댔다. 그때 옆 테이블에 앉은 여성이 합석을 제안했다. 그녀 역시 그 가수를 좋아한다고 했다. 옆에는 다른 여성이 환히 웃고 있었다. 한 테이블에 앉은 네 사람은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처음 본 것 같지 않게 통하는 데가 많다.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현실
피곤한 하루를 보냈더니 술이 고팠다. 그는 끔찍했던 학과 주점 대신 다른 곳을 찾았다. 신입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독특한 의상을 입고 술을 나르고 있었다. 치파오, 바니걸, 간호사복 등등... 복장의 컨셉은 다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모두 엄청나게 짧고 타이트하다는 것. 남학생이 서빙하는 곳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여학생들이 지나갈 때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도 따라 움직였고, 수많은 눈길은 일제히 특정 신체 부위로 향했다.
현실은 노골적인 그 시선들이 불편했다. 하지만 옆에서 작게 휘파람 부는 친구와 싸우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친구는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의 치마가 얼마나 짧은지를 이야기하며 함께 술을 마시자고 보챘다. 현실은 내키지 않았지만 분위기를 깨기 싫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는 서빙 중인 학생에게 옆 테이블을 가리키며 넌지시 귓속말을 건넸다.


5. 지식의 상아탑 vs 쓰레기 하치장

이상
축제가 끝난 뒤 학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신나게 놀고 취했던 어제는 없었던 일 인양 캠퍼스는 깨끗하고 조용했다. 하긴, 새벽에 부스를 철수하면서 쓰레기도 함께 치웠으니. 과제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갔더니 햇볕이 잘 드는 좋은 자리엔 이미 다른 학생들이 공부 중이었다. 이상은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책을 꺼냈다.


현실
현실은 어제의 여파로 거의 폐인이 돼 있었다. 정신없이 마셔댄 소주, 맥주, 막걸리는 끔찍한 숙취로 돌아와 현실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아침의 캠퍼스에는 만취한 학우들이 여기저기 좀비처럼 쓰러져 있다. 눈을 감았다 뜨니 수업이 끝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들도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들고 있다.

주점이 있던 자리는 그만큼의 쓰레기가 쌓여 있고 잔디밭엔 취객들의 토사물이 부침개처럼 널려 있다. 그걸 정신없이 쪼아 먹는 비둘기들을 보자 경악과 동시에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현실과 친구들은 너나할 것 없이 숙취해소 음료를 들이켰다. 그래도 두통이 가시지 않는다. 오늘은 아무래도 오후 수업을 빼먹고 친구들과 해장이나 하러 가야 할 각이다.



결론



꿈도 희망도 없으니 다 망했으면 좋겠다...



원문 : 20's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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