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입니다. 새누리당에서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지역주의 타파 등 통합의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애쓰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가족분들께도 깊은 애도를 표한다."는 후한 논평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을 말할 때면 울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련한 추억이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난 지 7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합니다. 무슨 이유에설까요?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의 개혁과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의 118억원과 노무현의 12억원

여기 2002년 10월 29일 같은 날 찍은 사진이 두 장 있습니다. 한 장은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 후보의, 다른 한 장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선 후보의 대선자금 모금 행사 장면입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선자금 모금식은 서울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당원 8천 명과 김각중 전경련 회장, 김재철 무역협회 회장,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조남홍 경영자총 연합회 부회장 등 경제 5단체 지도자를 비롯한 여러 정계, 재계 인사들이 참석했습니다. 노무현 후보의 모금 전달식은 새천년민주당 당사 앞에서 조촐하게 열렸습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선자금 모금액은 118억7천만원이었고, 노무현 후보의 대선자금 모금액은 12억3천8백만원이었습니다. 이회창 후보의 대선자금 모금액은 10월 29일 하루 만에 모금된 돈이고, 노무현 후보의 대선자금 모금액은 2주 동안 모금된 돈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이 이례적으로 모금액을 발표했던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세는 이회창이라는 사실을 기업가들에게 은연중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자금력이 선거 당락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모금행사만 봐도 이회창 후보의 승리가 확실하다는 무언의 압력이었습니다. 게다가 모금액의 상당 부분을 전경련 등 재계 거물급 인사들이 내놓았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칼 빼든 검찰

그러다 2003년 서울중앙지검이 SK그룹의 분식회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대선자금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검찰수사가 진행되면서 불법대선자금 공방이 시작됐습니다.
2003년 7월 2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각 당의 대선후보가 확정된 시점 이후 사실상 대선에 쓰인 정치자금과 정당의 활동자금 모두를 포함해 공개해야 한다. 대선 자금 문제가 국민적 의혹으로 제기된 이상 투명하게 밝히고 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정치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길이 없다”며 “여당과 야당 모두, 16대 대선 자금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철저하게 검증을 받자”고 제안했습니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민주당 대선자금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조사하면 되는 것 아니냐, 왜 한나라당까지 문제 삼느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제안에 반대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공개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검찰의 수사결과 한나라당은 815억7천만원, 민주당은 78억68000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한나라당이 트럭을 이용해 LG그룹으로부터 150억 원의 불법대선자금을 ‘차떼기’로 넘겨받은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검찰의 대선불법자금 수사로 서청원, 최돈웅, 김영일, 서정우 등 한나라당 측 인사와 안희정, 최도술, 여택수, 정대철, 이상수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구속됐습니다. 좌희정이라고 불렸던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 씨와 청와대 실세 최도술 씨를 구속시킨 안대희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본부장을 권력을 향해 칼을 빼든 사람이라고 부르는 팬클럽까지 생겼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결과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옛날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일이 이번에는 문제가 됐다. 고통을 받고 있는 우리모두가 더 나은 내일로 한 발짝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 되었으면 한다. 진통과 아픔을 겪고 오늘과 다른 내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대통령이 검찰의 정당한 수사를 인정했고, 검찰 또한 살아있는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사했습니다. 혹자는 그 놈이 그 놈이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815억원과 78억원은 다릅니다. 100보나 10보나 같다고 하면 정치는 바뀌지 않습니다.

초선 의원도 가능해진 정치자금 모금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발표가 있기 전부터 대선자금 공개 제안과 함께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의 개정을 제안했습니다. 정기국회 시정연설에서도 “합법적 정치비용은 현실에 맞게 올리고 선거공영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정치신인도 합법적으로 자금을 모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득표율에 따라 전체 선거비용 혹은 그 일부를 보전해주는 정치관계법 개정은 참여정부 시절 이루어졌습니다. 개정 이전에는 중진 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이 몰렸지만 정치자금법 개정 이후에는 초선 의원의 정치자금 모금액이 법정 한도를 넘기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소액 후원의 힘…정의당 의원들 개인모금 1~3위”

“野 필리버스터 주역 후원금 성적 보니…평균 훌쩍 넘겨”

겨우 12억에 눈물 흘린 노무현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800억원이 넘는 돈을 냈습니다. 반면 노무현 후보에게는 10년 근속 메달을 보낸 노동자, 결혼반지를 보낸 부부, 생활비를 아껴 보낸 미국 유학생 부부, 비닐봉지에 꼬깃꼬깃한 돈을 모아서 보낸 시장 상인들, 용돈을 꼬박꼬박 모은 돼지저금통을 보낸 초등학생, 폐품수집으로 근근이 모은 10만원을 보낸 70대 할머니 같은 사람들이 돈을 냈습니다.

지금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소액의 후원금을 받는 정치자금 모금 방식이 당연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지지자들이 노무현 후보에게 보냈던 소액의 후원금은 그전까지의 대한민국 정치문화와 달랐으며,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를 발전시키는 크나큰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유시민 개혁국민정당 대변인은 ‘후보자가 유권자를 매수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가 후보를 매수하는 대중적 행동이 시작됐다. 대한민국 정치문화의 새장을 여는 것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돈이 깨끗하면 정치가 깨끗해지고, 정치가 깨끗해지면 그 정치가 국민들을 위한 정치가 될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는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돈을 깨끗하게 하고, 깨끗한 돈을 통해서 정치를 깨끗하게 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로 만들어 나가는 아주 중요한 개혁이다. 개혁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후보 희망돼지 전달식에서. 2002.10.29.

2주 동안 약 13억원을 모은 민주당의 자금력은 하루 만에 118억원을 모은 한나라의 자금력에 비해 모자랐습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후보는 막강한 한나라당의 자금력 앞에서도 ‘큰 소리’를 칠 수 있게 해준 국민들이 너무 고마웠을 것입니다. 엄청난 자신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노무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울컥하는 이유는 별 게 아닙니다. 정치인의 전유물이었던 대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국민대권시대’를 만들었고, 대통령선거가 왕를 뽑는 선거가 아닌 소신 있고 원칙 있는 사람을 뽑는 선거임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혼자 만든 세상은 없습니다. 노무현과 국민이 함께 만든 세상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난 날입니다. 그를 추억하면서 그와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세상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했으면 합니다. 어쩌면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하늘에서 국민과 함께 만들려고 했던 세상이 꼭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 일부에는 참여정부 백서, 노무현 사료관에 남아 있는 노무현 후보 인터넷선거특별본부 취재팀의 기사가 인용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