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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단지 여성혐오 범죄였을까

  • 입력 2016.05.23 12:25
  • 수정 2016.05.23 13:11
  • 기자명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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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에 붙은 피해자 추모 포스트잇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 공개된 정보가 한정적이지만, 많은 사람이 벌써 상황 판단을 내렸거나 너무 많은 의견을 낸 상태라 생각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본 사건은 살인범의 정신병력이 드러나고 여성을 특정했다 이야기하지만, 이것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신병력의 문제인지,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범죄인지에 대해선 보다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인범의 동기가 여성혐오 때문이라면 여성혐오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해결방안일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건을 둘러싼 우리의 해석은 더욱 끔찍한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여성혐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이는 사회 전반에서 노력해야 할 지점이다. 그러나 내가 이 사건에서 주목하는 점은 경찰이 발표한 내용 중 피의자가 '2008년 여름부터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이래 2008년 수원 모 병원에서 1개월, 2011년 경기 부천 모 병원에서 6개월, 2013년 충남 조치원 모 병원에서 6개월, 지난해 8월부터 올 1월까지 서울 모 병원 6개월 등 4번 입원치료'를 했다는 점이다.

총 입원 4번의 횟수와 19개월의 기간. 너무 잦고 길다. 그리고 반복되는 거주지 이전. 불안정한 거주지가 이상한 것은 나뿐인가? 기본적으로 정신병원 입원은 2개월로 하고 있다. 치료 목적으로 한 입원도 3개월을 초과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피의자는 3차례나 6개월 입원치료를 받았다. 이 정도라면 그는 심각한 중증 정신분열증환자라는 것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물론, 입원 최대기간은 법적으로 6개월이지만, 최근 법 개정을 통해 3개월로 제한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은 병원은 감금죄로 처벌하기로 했다. 이유는 인신구속이나 마찬가지인 폐쇄병동 입원이 가족이나 친인척 등 사적인 과정에서 결정되고, 이의제기 장치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지자체 심판 위원회가 치료내용에 그다지 관여하지 않으면서 6개월마다 기계적으로 퇴원이냐 연장이냐를 심사만한다. 이마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퇴원 신청자의 5%만이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정신분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정신분열은 사이코패스와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기본적으로 망상장애가 병행되는데 이중 피해망상이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 때문에 살인범이 자백한 대로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은 확실한 범행 동기로 추측할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 살인범은 3월 말 가출하면서 임의로 치료를 중단한 상태라는 점에서 나는 정신분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정신분열증환자는 감정을 느낀다. 그 말은 즉 죄의식 또한 느끼는데 내 생각에는 살인범이 벌써 죄의식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면 살인범은 경찰에게 여성을 혐오했음을 말했음에도 기자의 질문에는 일체의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 물론 이 살인범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킬 논리 또한 궁리하고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정신병과 달리 정신분열은 완치 가능한 병이 아니다. 환자가 지속해서 치료를 받는다면 일상생활에 아무 지장 없어 보이지만, 재발 가능성만은 확실한 병이다. 투약을 중단할 경우 1년 후 재발률은 약 70%에 육박하고 지속적인 항정신성약물을 투여할 때도 30~ 40%의 재발률을 보인다. 하지만 25~30년의 치료 추적기간 동안의 조사에 따르면 환자의 1/3만이 회복하거나 증상이 소실된 병이고, 그 밖에는 주증상이 지속되거나 여전히 입원치료를 하고 있는 병. 때문에 정신분열증은 보통 333룰로 대변되는데 전체 환자의 3분의 1은 약물과 상담 치료만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다른 3분의 1은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병원을 주기적으로 들러야만 하며, 나머지 3분의 1은 약조차 듣지 않아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고 심하면 입원조치를 반복해야 한다.
신경정신학계에서 이 원인에 대해 선천적, 후천적으로 규명하고 있음에도 정확한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때문에 지금의 정신분열 약들은 치료 목적이라기보단 신체적, 정신적 동기를 떨어트리는 효과를 주는, 일종의 사회적 감옥에 넣는 수준이라 말해도 과한 비유가 아니다. 현재 정신분열증은 정부에서 희귀성, 난치질환으로 등록해 특별관리대상으로 두고 있다.
이택광 선생님이 언급한 것처럼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조승희도 "여자가 나를 무시했다"며 범행 동기를 밝혔지만, 희생자엔 남녀가 따로 없었다(정신상담을 받아본 적 없는 조승희에 대해 신경정신학자들은 편집증적 정신분열일 것이라 의견을 모았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살인범이 칼 대신 총을 들고 있었다면 조승희와 마찬가지로 힘없는 여성 한 명을 살해할 것이 아니라 무차별 살인을 벌였을지 모른다.
때문에 현재 공개된 정보만으론 '여성혐오만으로' 범행동기를 단정 짓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정신분열증환자가 피해망상을 보이며, "링컨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고 중얼거리는 것을 보고 환자의 정신분열이 링컨을 말미암아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존파가 부자들을 원망하며 살인을 하고 인육을 먹었을 때 부자들은 밤길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또한, 이런 정상적이지 않은 분노표출을 하려는 사람들이 사회적 불만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격리하지 않았고, 이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할 방법을 전 사회적으로 고민했다. 이외에도 정신분열은 재발 1~2주 전에는 재발징후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경찰수사과정 이외에도 신경정신학자가 이 부분에 대해 심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혐오 범죄로만 보기 어려운 불편한 공백들이 있다.

어제 세월호, 위안부 문제 등 한국과 일본 사회에 관심이 많고 직접 조직을 구성 중인 독일 친구와 이야기를 했다. 그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오로만 보기 어려운 불편한 공백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인즉슨, 피해의식과 피해망상, 분노를 절제하지 못한 것이 동기가 된 사건들은 급격히 압축 성장한 나라에서 두드러진다는 것. 일본은 80~90년대부터 겪고 있으며 아직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홍콩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으며 한국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이제 그런 일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의 개인주의적인 사회와 달리 집단주의적인 사회다. 이 사회가 행하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 폭력. 한국의 집단주의 사회가 개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있다. 자존감을 잃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 극단적으로 이번 살인사건처럼 타인을 향한 잘못된 분노를 터트리는 비극이 되고 또 다른 극단으로는 일개 연예인에게 역사적 사실을 몰랐다며 대마초를 피웠다며 연애를 숨겼다며 타인을 배려하지 않았다며 어떤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질타하고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1년 365일 집단주의의 광기, 분노의 카니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타인의 잘못을 찾아 광장에 매달고 비난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누구의 책임인지를 강박적으로, 한편으로는 도착증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살인범의 동기 여부가 무엇이건 이번 일은 한국사회의 일상적인 여성혐오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를 분노의 카니발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현실을 인지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계기가 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단순히 전시되는 것만으로는 바뀌지 않기에 사람들에게 변화의 동기가 주어지고 함께 사는 공동체라는 인식이 생기길 바란다. 범죄, 차별, 혐오에 대한 이 분노가 대립 항을 만들거나 방향을 잃지 않길. (아직 나는 그녀가 겪었을 극한의 공포를 생각하면 손발이 떨리고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본 글은 경찰의 피의자 심리분석 발표가 나오기 전 작성되었습니다.

[영상]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 심리분석 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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