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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나미의 짝사랑이 슬프다

  • 입력 2016.05.04 13:51
  • 기자명 20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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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과 함께 2: 최고의 사랑]에 커플로 출연 중인 허경환과 오나미 ⓒJTBC


JTBC의 예능프로그램 [님과 함께 2: 최고의 사랑]에 출연하고 있는 허경환과 오나미 커플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허경환을 짝사랑하여 쫓아다니는 오나미와 그녀로부터 이리저리 도망치는 허경환의 센스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방송 후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클립 영상의 좋아요 수가 몇천 개가 넘는 것을 보아, 많은 사람들이 ‘쫓아다니는 오나미-도망치는 허경환’ 구도를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그 와중에 나만 눈치없이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기분이다.
또래의 여자아이를 짝사랑했던 적이 있다. 그 아이는 모난 구석이 없고, 사람들을 대할 때 늘 기분 좋은 미소를 띠었다. 조금이라도 남을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고, 삶의 작고 사소한 순간들을 사랑하는 그 친구가 좋았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고, 함께 산책을 했다. 그러나 그녀를 좋아한다는 말은 끝내 할 수 없었다.

키가 10cm만 더 컸으면, 코가 조금만 더 높았으면, 피부가 더 좋고, 몸이 더 좋았으면. 옷을 잘 입는다면. 노래를 잘하거나, 악기를 잘 다룰 줄 안다면. 조금 더 외향적이고 자신감이 있었으면, 나는 당당히 그 아이의 남자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난 내가 그 아이의 남자친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게 없는 것들을 생각하며 우울해했고, 내 일상은 조금씩 망가졌다. 강의실 맨 뒷자리에 쥐죽은 듯 있다던지, 청승맞게 강변을 걷곤 했다던가 하는 것은 약과였다. 더 심각한 것이 찾아왔다.


바로 자기혐오였다. 사이가 안 좋아진 친구도 아니고 철천지원수도 아닌, 내가 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 속에는 180cm의 키, 오똑한 코, 잡티 하나 없는 피부 등을 갖춘 ‘멋진 남자’의 기준이 세워져 있었다.

지금은 까마득한 4년 전의 얘기지만, 그때는 TV 광고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나의 모습을 비교하다 상처받기를 반복하며 살았다. 나는 그 기준을 한 번도 넘을 수 없었기에.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남들보다 키가 많이 작아 슬퍼하는 군대 동기에게, 다크서클 때문에 고민하는 고등학교 친구에게 섣부른 희망의 말을 전할 수가 없다. 암묵적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스트레스, 그리고 그에 따른 자기혐오가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성형외과에 가서 턱뼈를 깎아내고 나사못을 박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회는 ‘아름다움’, ‘정상’, ‘훌륭함’의 기준을 은밀하게 배포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기준을 마음에 새기고, 충족하려 애쓴다. 그렇게 내면화된 기준에 자신의 모습이 부합하지 않을 때, 사람은 자연히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덕분에 이제는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단 한 사람도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를 싫어하게 될 뿐이다.
옳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꾸준히 배포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사회적 기준에 오나미는 들어맞지 않는다. 그녀가 수시로 ‘웃픈’ 모습으로 편집되는 이유다. 치사한 발상이지만, 만약 오나미 대신 수지, 아이유, 설현이 그 자리에 있다면 어땠을까? 그때는 상대적으로 사회 기준에 덜 들어맞는 허경환 쪽이 설설 기는 모습으로 나오지 않을까?


ⓒJTBC


허경환의 장난스러운 고백에 오나미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 눈물을 재료 삼아 웃음을 터뜨리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한없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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