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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전 힐스버러, 그리고 세월호

  • 입력 2016.05.04 11:30
  • 수정 2016.05.04 11:33
  • 기자명 이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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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스버러 참사 당시 몰려드는 인파를 피해보려는 사람들


25년 전의 4월 15일


영국 축구 역사에서 가장 아픈 날로 기억될 날이었다. 1989년 4월 15일,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의 FA컵 준결승전이 열린 힐스버러 스타디움. 경기장 인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탓에 팬들은 경기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경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팬들은 경기장 입구로 몰려들었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몰랐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은.
1,600명이 정원인 입식 관중석에 3,000명에 가까운 이들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경기장 측의 명백한 과실이었다. 그러나 현장 진행요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관중들을 계속해 들여보냈고, 관중들이 필드에 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진 철망에 사람들이 몰렸다. 철망은 경기가 시작한 지 채 5분도 안 되어 무너져 내렸고, 경기는 중단됐다.
그 결과 96명이 목숨을 잃었다. 764명이 부상을 당했다. 무너지고, 깔리고, 놀라고. 이 잔혹한 과정은,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생중계되었다.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구단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워했다. 관객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영국 국민들의 트라우마로 아주 오랫동안 남은 장면이었다.
팬들과 유가족이 경기장 측의 책임을 따져 묻자, 경찰과 일부 언론은 그 책임을 관중에게 돌렸다. <더 선>은 리버풀 훌리건들이 사망자들의 물건을 훔치고, 노상방뇨를 했으며, 경찰을 폭행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은 분노했지만, 마가렛 대처는 경찰을 감쌌고 진실은 아주 오랫동안 밝혀지지 못했다. 리버풀 팬들을 향한 조롱과 모욕은 유가족의 몫이었다.

25년 후의 4월 16일

일어나선 안 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2014년 4월 16일, 각자의 여행을 떠나던 이들이 탔던 배가 침몰했다. 누군가는 일 때문에 배를 탔고, 누군가는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배에 탑승했다. 그 여객선의 이름은 세월호.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이름이었다. 비극의 이름으로 말이다.


팽목항 ⓒ민중의소리

만들어 진지 20년이 넘은 배를 들여와 수명을 연장했고, 초기비용을 수거하기 위해 탑승객과 화물을 무리하게 더 받았다. 이토록 낡은 배에 117명의 정원이 늘어났고, 선박의 톤수가 239톤이나 증가했다. 결국, 배는 침몰했다. 승객들을 향한 선원의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이 팽목항을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즐거웠던 여행도 그렇게 중단되었다.

그 결과 295명이 목숨을 잃었다. 9명은 아직 실종자라는 이름으로 배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배가 침몰하는 이 잔혹한 과정은,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생중계되었다. 해경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정부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워했다. 그동안 승객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이 끔찍한 생중계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트라우마로 깊게 자리했다.
유가족들이 경찰과 정부의 책임을 따져 묻자, 여당과 일부 언론은 유가족과 승객을 탓하기 시작했다. 몇 언론은 유가족이 빨갱이라고 했다. 자식 목숨을 팔아 돈을 번다고도 했다. 폭력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피해자와 가족은 아파했지만, 여당과 보수언론은 경찰을 감쌌고 진실은 아직도 저 바닷속에 숨겨져 있다.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을 향한 조롱도 여전했다.

세월호의 4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6년 4월 26일 마침내 진실이 밝혀졌다. 힐스버러 참사가 일어난 지 27년 만의 일이었다. <가디언>은 2년간의 사인 심의회 끝에 배심원단이, 사망한 96명의 희생자가 경찰에 의해 죽음을 강제당했다고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조사내용 14개 모두 경찰의 과실로 인정된 것이다. 유가족과 팬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 온 결과였다.
영국 정부가 회피했던 책임은 관객이 아니라 경찰과 정부에 있었다. 2012년에 공개된 힐스버러 참사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것은 팬들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예견된 인재였다. 응급 요원들의 대응 미숙은 사망자 수를 늘렸고, 경찰은 자신들의 책임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 하지만 진실은 드러났고, 결국 영국 정부는 자신들이 부정하던 책임을 받아들이고 사죄해야 했다.
4월이 지나갔다. 5월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5월은 세월호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5월은 여전히 4월이다. 2016년은 여전히 2014년이다.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여전히 우리는 2014년 4월을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리버풀은 힐스버러 참사로부터 5월을 맡기까지 26년이 걸렸다. 세월호는 그렇게 오래 걸려선 안 된다.


리버풀의 홈구장 안필드의 생클리 게이트(Shankly Gates)


세월호 유가족들은 5월, 힐스버러 참사의 유가족과 변호사를 만나 진상규명과 치유와 회복을 위한 추모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리버풀 내의 추모시설을 방문할 계획이다. 그리고 아마 'You’ll Never Walk Alone'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에요. 리버풀의 아주 오래된 응원가이다.

폭풍우 속을 걸어야 할 때 고개를 높이 들어요. 어둠을 두려워 말아요. 바람을 헤치고 걸어요. 비를 뚫고 걸어요. 당신의 꿈이 상처 입고 흔들릴지라도 가슴 속에 희망을 품고 계속 걸어요.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에요.

맞다. 당신들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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